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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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기표 2022.2
Signifier of freedom 얼마 전에 머리를 잘랐다. 원래 자르던 곳이 있었는데, 거리가 좀 멀다 보니 귀찮아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가서 깎았다. 처음 가는 미장원은 늘 불안하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 이발사가 처음부터 줄곧 바리캉으로 머리를 밀어버린다. 원래 가던 곳의 이발사는 가위로 섬세하게 자르는데 말이지. 참 편리하게도 깎는구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도 머리를 맡겼으니 중간에 그만둘 수도 없고. 머리를 다 깎은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호섭이 스타일이다. 집에서 아내가 보더니 호섭이 머리라며 놀린다. 그러면서 아들한테 “아빠가 호섭이 머리 됐다”고 말한다. 아들의 반응은 “호섭이가 누구야?”다. 아들은 호섭이를 모르기 때문에 호섭이 머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아들의 반응..
2023.02.16 -
형태는 크기를 따른다 2022.1
Shape follows size 미국의 진화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내가 알고 있는 생물학자 중 건축과 디자인에 대해서 가장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쉽지 않은 생물학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종종 건축을 비유의 대상으로 끌어온다. 라는 그의 저서에 실린 21장 ‘크기와 형태’에 그런 비유가 등장한다. 크기와 형태는 마치 기능과 형태의 관계처럼 법칙이 있다. 크기가 작거나 크면 형태는 그 크기에 제약을 받아 변형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공상과학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인간이나 동물이 엄청난 크기로 확대되더라도 그 형태와 비례를 그대로 유지한 채 커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주 작은 생명체들을 보라. 개미나 모기, 파리 등의 다리를 보면 무척 가늘다. 하지만 개미는 자기..
2023.02.15 -
임시변통의 창조성 2021.12
Impromptu creativity 집 안에 있는 실내화가 늘 문제였다. 신지 않는 동안 실내화는 자기 자리를 잘 찾지 못한다. 거실 여기저기, 방안 여기저기에 굴러다니기 일쑤다. 시각적으로 보기 불편하다. 무엇보다 진공청소기를 돌릴 때 이놈의 실내화들이 늘 걸리적거린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실내화 걸이가 나타났다. 정식 걸이는 아니다. 아내가 옷걸이를 약간 변형해서 실내화 걸이로 용도를 변경한 것이다. 그걸 보니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 엄마 방에 있는 전등은 잡아당길 수 있는 얇은 끈이 켜고 끄는 기능을 담당했다. 그 끈은 일종의 공중에 매달린 스위치다. 끈의 길이는 일어나야 비로소 잡을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엄마는 다리가 아파서 일어나기가 몹시 불편했다. 그래서 그 스위치 끈의 끝에 기다..
2023.02.14 -
오징어 게임, 시선의 권력을 말하다 2021.11
Squid Game, talking about the Power of a Point View 의 게임 진행요원들을 보면서 영화 시리즈의 스톰트루퍼가 떠올랐다. 그들의 공통점은 제복을 입고 있고,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의 진행요원들이 마스크를 쓴 이유는 아무도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자신의 정보를 감추는 사람들은 두 가지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권력자이고, 또 하나는 악당이다. 그런데 그 둘은 하나로 통합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권력자는 곧 악당이 된다는 뜻이다. 얼굴 가리기, 목소리만 나오기(그 목소리조차 변조된 경우가 많다), 똑같은 제복으로 개별적인 특징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등은 모두 권력의 속성이자 동시에 악당의 속성이다. 자신의 정체를 가리는 것이..
2023.02.13 -
작은 화면 전성시대 2021.10
The good days of small screens 몇 달 전부터 넷플릭스에 가입해 영상을 보고 있다. 새로운 정보의 문이 열리면서 한동안은 넷플릭스에 푹 빠져 살았다.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 도 봤고, 이라는 감동적인 다큐멘터리도 보았다. 예전에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봤는데, 요즘에는 넷플릭스 앱을 먼저 실행할 때도 많다. 유튜브를 보든, 넷플릭스를 보든 커다란 컴퓨터 모니터나 TV로 보기보다는 조그마한 스마트폰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아니 왜 답답하게 굳이 그 조그만 디스플레이로 보려고 하는 걸까? 아마도 접근이 쉽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인의 몸에 거의 24시간 붙어있는 스마트폰을 켜는 것이 TV를 켜는 것보다 훨씬 손쉬운 일이다. 상품 가격은 싸지만 멀리 있는 마트..
2023.02.10 -
올림픽 픽토그램과 국가주의 2021.9
Olympic pictogram and nationalism 이번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픽토그램 쇼일 것이다. 픽토그램의 스틱맨(stickman)과 최대한 비슷하게 꾸민 사람이 무대에 나와 종목별 이미지를 몸짓으로 모방하는 쇼였다. 단순화된 픽토그램의 캐릭터를 사람이 직접 연기한다는 신선한 발상에 사람들이 높은 점수를 준 것 같다. 픽토그램이란 복잡한 사람의 모습을 추상화하여 간략화한 ‘그림문자’다. 중국의 상형문자처럼 대상을 단순화한 것이다. 하지만 상형문자와 픽토그램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기호다. 상형문자는 시간이 흐르면 추상화가 고도화돼 최초의 모방 대상을 알아볼 수 없게 된다. 뫼 산(山)을 비롯한 몇 개 글자만이 그 모방 대상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다. 하지만 현대인은 ‘..
2023.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