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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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의 나이 2022.7
The designer's age 송해가 95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 칼럼에서는 어떤 사람이든 존칭 없이 이름만 쓴다. 하지만 ‘송해가’라고 표현하는 것이 왠지 불경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그는 국민의 사랑을 받는 최고령 아나운서였다. 그것이 어떤 직업이건 90대에도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건 분명 축복이다. 포르투갈 영화감독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는 104세의 나이에 장편 영화를 연출했다. 영화 대본도 본인이 썼다.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 잔느 모로는 당시 84세였다. 이런 경우는 아주 희귀하다. 그렇더라도 사람들에게 자극을 준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나이와 일, 성취의 상관관계에 대해 무척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의 나이는 어떨까? 건축, 디자인계에서 노익장을 과시한 대표적인 인물은 프랭크 로이드..
2023.02.21 -
모더니즘과 엔트로피 2022.6
Modernism & Entropy 문학, 미술, 음악, 건축, 가구 등 어떤 장르를 막론하고 모더니즘의 보편적 특징은 새로움이다. 다른 장르와 마찬가지로 모던 건축과 모던 디자인 역시도 역사주의와 결별하고 완전히 새로운 것을 발표해서 사람들을 당혹하게 했다. 문학이나 미술, 음악은 그것을 감상하려면 특정한 공간으로 들어가 집중적으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따라서 그것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느낄 수 없다. 제임스 조이스가 아무리 낯선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소설을 썼다고 해도 그것을 읽지 않는 한 그 새로움을 체험할 수 없다. 피카소의 입체주의 그림이나 쇤베르크의 무조음악도 보거나 듣지 않으면 현대인의 삶과 별로 관계가 없다. 그러니 문학과 미술과 음악은 그 새로움이 피부에 와닿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실제..
2023.02.20 -
디자인은 미디어를 따른다 2022.5
Design follows the media 미디어는 우리의 사고체계를 바꾼다. 영상 미디어에 익숙한 사람은 문자 미디어에 익숙한 사람보다 덜 논리적인 대신 통합적인 사고를 한다고 미디어 학자인 마셜 맥루언은 말한다. 미디어는 사고체계뿐만 아니라 내용과 디자인도 결정한다. 맥루언은 그것을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표현했다. 유화와 수묵화 물을 많이 사용하는 동양의 수묵화와 기름을 많이 사용하는 서양의 유화는 그림의 형식도 다르지만, 화가가 선택하는 그림의 대상도 다르게 만든다. 번들거리는 특성을 갖는 유화는 모든 사물들을 반짝거리게 만들 수 있는 재능을 가졌다. 이에 따라 화가에게 그림을 의뢰하는 부유한 후원자는 자기가 소유한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것인지를 과시하는 도구로 유화를 활용했다. 17세기 네..
2023.02.19 -
미디어가 장악한 세상 2022.4
A world dominated by the media 현대인은 자신이 얼마나 미디어에 장악 당한 채 살아가고 있는지 느끼지 못한다. 현대인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미디어에 접속하고 잠이 들기 바로 전까지 그 접속 상태가 지속된다. 그리하여 미디어가 없는 세상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것을 보여주는 현상은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그중 하나는 과거를 재현하는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쉽게 찾을 수 있다. 세계적으로 흥행한 영화 를 보면, 로마 원로원의 위원들이 검투사 경기가 열린다는 홍보 전단지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고대에 종이가 얼마나 귀한 물건이었는지를 생각하면 이런 장면은 결코 연출될 수 없다. 물론 현대의 사극 영화들은 그러한 고증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무시해도 된다고 영화 제작..
2023.02.18 -
스텐실 글꼴의 통일성 2022.3
The unity of stencil font 사람의 손글씨를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하나 있다. 못 쓴 글씨나 잘 쓴 글씨나 모두 글씨의 꼴이 균질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통일성을 갖는다. 만약 한 사람의 글씨가 균질하지 않다면, 사건 현장에 남은 필적으로 범인을 찾아내는 그런 수사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또는 글씨체로 성격을 추론하는 그런 학문도 존재할 수 없다. 글씨를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균질한 글씨를 쓴다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인다. 사람이 글씨를 똑같은 모양으로 쓰는 것처럼 활자도 똑같은 모양으로 디자인된다. 영어로 A부터 Z까지, 한글로는 ㄱ부터 ㅎ까지 그 모양은 균질해야 한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며 당연하게 받아들이므로 나는 조금 다른 형식의 글자에서 그..
2023.02.17 -
책 살생부 쓰기 2023.2
Writing a book ‘Salsengbu(hit list)’ 해마다 연말, 연초가 되면 하는 이벤트가 있다. 책꽂이 정리다. 책은 꾸준히 늘어나는 데 반해 집안의 공간은 늘어나지 않는다. 책꽂이에 책을 꽂으면 약간의 남는 공간이 생긴다. 키가 비슷한 책들의 윗부분, 그리고 책을 밀어 넣은 뒤 남는 앞부분이다. 이 공간들마저 책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제 책을 빼내기도 쉽지 않다. 나중에 꽂힌 책들에 가린 뒤쪽 책들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책은 멀어진 책과 같은 신세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돼버리는 것이다.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서 심리적으로 멀어진 책은 읽힐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든다. 그리하여 나는 책을 대처분하기로 한다. 최소한 수백 권은 버..
2023.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