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9. 09:07ㆍ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Olympic pictogram and nationalism
이번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픽토그램 쇼일 것이다. 픽토그램의 스틱맨(stickman)과 최대한 비슷하게 꾸민 사람이 무대에 나와 종목별 이미지를 몸짓으로 모방하는 쇼였다.<사진 1> 단순화된 픽토그램의 캐릭터를 사람이 직접 연기한다는 신선한 발상에 사람들이 높은 점수를 준 것 같다.
픽토그램이란 복잡한 사람의 모습을 추상화하여 간략화한 ‘그림문자’다. 중국의 상형문자처럼 대상을 단순화한 것이다. 하지만 상형문자와 픽토그램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기호다. 상형문자는 시간이 흐르면 추상화가 고도화돼 최초의 모방 대상을 알아볼 수 없게 된다. 뫼 산(山)을 비롯한 몇 개 글자만이 그 모방 대상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다. 하지만 현대인은 ‘山’이라는 글자를 보면서도 산의 형상을 찾지 않고 곧바로 산을 연상한다. 즉 진짜 기호가 된 것이다.
기호는 ‘관습적’이라고 말한다. 그 생김새를 관찰하고 유추해서 그 의미를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익힌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익힌 기호에 대해서 사람들은 따지지 않는다. 평지에서 우뚝 솟아오르고 거대한 크기에 나무들로 빽빽한 그 산을 왜 굳이 ‘산’이라고 발음합니까? 그렇게 발음하는 게 정말 적절한가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다.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면 그 소임을 다한 말, 즉 기호에 대해서 불만을 갖지 않는다.
음성기호와 문자기호는 모두 사회적인 약속이고, 수 천 년 동안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기 때문에 보편적인 기호가 되었다. 이 보편성은 어찌 보면 절대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리하여 ‘산’은 정말 그 소리가 대상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 대상을 발음하는 다른 나라의 소리, 예를 들어 ‘마운틴(mountain)’을 듣는 순간 그것은 그야말로 멋대로 지어진 기호란 걸 깨닫게 된다. 스위스의 기호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는 이런 기호의 속성을 가리켜 ‘언어의 자의성’이라고 정의했다. 어떤 나라의 언어든 대상과 그것을 지시하는 기호 사이에는 필연적인 연관성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다른 나라 말을 이해하려면 열심히 배워야 한다. 즉 큰 ‘비용’이 드는 일이다.
반면에 그림기호는 그렇지 않다. 그림기호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 모습을 보고 유추하여 뜻을 알아낼 수 있다. 그림기호는 마치 보디랭귀지(body language)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언어가 다른 사람들도 몸짓으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처럼 그림기호는 사람이 가진 경험과 그 경험에 바탕한 유추로 짐작이 가능하다. 이런 그림기호를 미국의 기호학자 찰스 퍼스는 ‘도상적 기호(iconic sign)’라고 정의했다. 문자기호와 도상적 기호의 큰 차이 중 하나는 ‘배려’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도상적 기호는 문자를 모르는 사람 또는 문자 읽기를 어려워하는 노동자 계층을 위해 발전했다. 픽토그램과 같은 도상적 기호는 배우지 않고도 쉽게 알아낼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문자기호는 그 뜻에 대한 어떠한 단서도 주지 않으므로 좀 매정하다고 할 수 있다. 문자의 속성은 비밀스럽고 어려우며 따라서 배타적이다. 이는 문맹자가 절대적으로 많던 시절, 지배계층이 문자를 통해 세상을 지배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반면에 그림의 속성은 투명하고 쉬우며 따라서 포용적이다. 이는 15세기부터 목판화가 문맹자들의 성서 입문 역할을 했다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오스트리아의 사회학자인 오토 노이라트는 현대 그림문자의 선구자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어난 유럽 사회의 엄청난 변화를 고등교육을 받지 않는 사람들도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 변화는 통계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리하여 그는 각종 복잡한 통계들을 그림문자를 이용해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정보 전달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것을 아이소타이프(ISOTYPE: International System of Typographie Picture Education, 문자적 그림 교육의 국제 체계)라고 불렀다. ‘국제 체계’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사진 2> 이것은 특정 나라의 기호가 아니라 ‘보편적’ 언어임을 강조한 것이다. 노이라트와 협력한 디자이너 게르트 아른츠는 통계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추상화된 인물을 표현했다. 이것이 20세기 모던 픽토그램 속 ‘스틱맨’의 출발이다. 노이라트와 아른츠가 디자인한 픽토그램으로 표현한 통계자료는 현대 인포그래픽의 선구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문맹자 또는 문해력이 떨어지는 계층뿐만 아니라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도 환영받았다.
일본이 이번 올림픽 개막식에서 픽토그램 쇼를 보여준 이유는 그들이 올림픽에서 최초로 픽토그램을 개발했다는 자부심을 표현하고 싶어서다. 일본의 디자인 평론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카츠미 마사루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열리는 올림픽인 만큼 언어에 대해 민감하게 연구했다. 각 종목의 안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표현할 것인가? 그런 고민 끝에 어떤 나라 사람이든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역시 문자가 아니라 그림기호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카츠미 마사루의 감독 아래 여러 디자이너들이 협업하여 오늘날 아주 당연시되는 올림픽 픽토그램이 탄생했다.<사진 3>
1972년 뮌헨 올림픽의 픽토그램은 다시 한번 혁신적인 디자인을 탄생시켰다. 전후 서독은 과거 파시즘 국가의 오명에서 벗어나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음을 알리려는 강한 열망에 불타올랐다. 그런 열망에 따라 올림픽 디자인 총감독에 오틀 아이허를 앉힌 것은 적절했다. 오틀 아이허는 제3제국 시절 히틀러 청년단 입단을 거부할 만큼 나치를 싫어했던 사람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탈영까지 했다. 그는 바우하우스의 철학을 이은 울름조형대학의 설립 멤버이고 교수였다. 따라서 그는 철저한 모더니즘의 그래픽 언어를 구사했다. 그것은 어떠한 지역적 색채도 용납하지 않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국제적이고 중립적인 디자인 언어였다. 그가 디자인한 뮌헨 올림픽 픽토그램이 그것을 증명한다. 오로지 수직선과 수평선, 그리고 45도 각도의 선만으로 구성된 아주 기하학적인고 순수한 형태다.<사진 4> 순수한 형태란 기교를 배제한 만큼 지역성으로부터 탈피해 중립성과 객관성을 획득했다고 볼 수 있다. 도쿄 올림픽 픽토그램과 비교해보면 오틀 아이허의 픽토그램이 훨씬 더 간결하고 순수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뮌헨 올림픽 픽토그램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다음 대회인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은 이것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그 뒤 올림픽에서는 약간의 변형을 주는 정도였다. 이는 자국의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해서든지 새겨 넣으려는 로고와 마스코트 디자인과는 차별화된다. 왜냐하면 픽토그램이란 기본적으로 의사소통의 수단이므로 자국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정보 전달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픽토그램은 표현의 욕구보다 기능의 욕구에 복종한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픽토그램 역시 로고나 마스코트만큼이나 개성을 표현하려고 했다.<사진 5> 그렇더라도 국가 상징을 넣기는 여전히 쉽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은 하나의 전기를 마련했다. 픽토그램에도 국가적 상징성을 부여한 것이다. 호주의 디자이너들은 원주민들이 사냥할 때 사용하는 부메랑을 기본으로 픽토그램을 디자인했다.<사진 6> 그러자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는 더욱 적극적으로 자국의 문화를 반영했다.<사진 7> 인간의 형체는 고대 그리스 군도 키클라데스 문명의 조각에서 가져왔고, 오렌지색 바탕에 검은색 그림은 고대 그리스 꽃병의 그림 양식을 가져온 것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 전통의 도장 문자 형태를 빌려왔다.<사진 8>
이런 표현은 단지 시각적인 흥미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의사소통의 수단에도 기어코 국가주의 색채를 부여함으로써 자부심을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그 대가로 약간의 가독성 결여를 낳는다. 반면에 이번 도쿄 올림픽의 픽토그램은 어쩌면 과거 국제적 의사소통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된 것처럼 보인다. 표현의 절제가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이 역시 국가적 자부심의 일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020년 도쿄 올림픽 픽토그램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의 유산을 그대로 잇고 있다.<사진 9> 1964년 올림픽의 영광을 다시 재현하겠다는 의지를 당시 픽토그램의 부활로 표현한 것이다. 1964년 올림픽은 국제 사회에 일본의 긍지를 알린 결정적인 계기였다. 올림픽은 일종의 프레임이다. 그 프레임을 거치면 모든 표현물에 국가적 색채가 스멀스멀 밀려오는 걸 막을 수가 없나 보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 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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