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미디어를 따른다 2022.5

2023. 2. 19. 09:05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Design follows the media

 

미디어는 우리의 사고체계를 바꾼다. 영상 미디어에 익숙한 사람은 문자 미디어에 익숙한 사람보다 덜 논리적인 대신 통합적인 사고를 한다고 미디어 학자인 마셜 맥루언은 말한다. 미디어는 사고체계뿐만 아니라 내용과 디자인도 결정한다. 맥루언은 그것을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표현했다. 

유화와 수묵화 

물을 많이 사용하는 동양의 수묵화와 기름을 많이 사용하는 서양의 유화는 그림의 형식도 다르지만, 화가가 선택하는 그림의 대상도 다르게 만든다. 번들거리는 특성을 갖는 유화는 모든 사물들을 반짝거리게 만들 수 있는 재능을 가졌다. 이에 따라 화가에게 그림을 의뢰하는 부유한 후원자는 자기가 소유한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것인지를 과시하는 도구로 유화를 활용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정물화가 빌렘 칼프가 그린 정물화에는 번쩍거리는 도자기의 광택, 빛을 산란시키는 유리잔의 투명함, 정교한 금속 세공품, 화려한 색채의 직물들이 마치 컬러 사진처럼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사진 1> 프랑스의 인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물건의 소유자 입장에서나 심지어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다 같이 이렇게 탐욕스럽게 물건을 소유하려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서구 문명의 미술에서 가장 독보적이고 두드러진 특색 가운데 하나로 생각된다.” 소유의 욕망을 표현하는 데 유화만 한 미디어가 없다. 서양에서는 풍경화가 아주 늦게 태어났다. 풍경의 대상이 되는 자연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어서 풍경화를 요구하는 후원자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사진 1> <명나라 단지가 있는 정물>, 빌렘 칼프, 1669년


반면에 수묵화는 채색을 하더라도 물감이 종이(또는 비단) 속으로 스며들어 채색된 대상을 돋보이게 하는 데 한계가 있다. 유화처럼 대상의 세부와 질감을 정밀하게 묘사하여 대상의 덩어리감과 부피감, 촉감을 살리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수묵화에서는 질감보다는 윤곽선, 즉 선의 표현이 두드러지고, 그것은 정물보다는 먼 곳에서 바라본 산이나 강과 같은 자연을 대담한 생략 기법으로 표현하는 데 더 적합하다.<사진 2> 동양회화에서 정물화보다 자연을 관조하는 듯한 산수화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는 노장사상 같은 철학적인 배경도 있겠으나 수묵화라는 미디어가 더 좋아하는 소재가 따로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진 2> <계곡을 지나는 여행자>, 범관, 10세 기 말~11세기 초


목판 인쇄술과 활판 인쇄술 

중국은 목판 인쇄술을 1세기 무렵에 발명했고, 독일의 구텐베르크는 15세기 중반에 활판 인쇄술을 발명했다. 두 발명의 차이는 목판 인쇄술에서는 글자가 목판에 고정되어 있고, 활판 인쇄술에서는 글자가 독립되어 움직인다는 것이다. 목판 인쇄술에서는 글자를 쓰는 사람과, 그 글자를 바탕으로 목판을 조각하는 기술자가 서로 다르다. 글씨를 잘 쓰는 학자가 쓴 것을 목판 기술자가 그대로 베껴서 나무를 깎아 새기는 것이다. 따라서 목판 인쇄술에서는 손으로 쓴 듯한 글꼴이 대부분을 차지한다.<사진 3> 반면에 활판 인쇄술에서 독립된 활자를 디자인하는 사람은 학자가 아닌 인쇄소의 장인이다. 가라몬드(Garamond) 서체를 디자인한 프랑스의 클로드 가라몽이나 보도니(Bodoni) 서체를 디자인한 이탈리아의 지암바티스타 보도니는 학자가 아닌 인쇄 기술자이자 디자이너였다. 따라서 활판 인쇄술에서는 사람이 손으로 쓴 듯한 글꼴에서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즉 기계적인 글꼴로 진화한다.<사진 4> 20세기 모더니즘 시대에 들어오면, 세리프가 없고 모든 선이 수평선과 수직선으로 구성되며, 모든 곡선은 오직 정원의 선만으로 디자인한 기하학적 산세리프가 등장한다.<사진 5> 이 또한 활판 인쇄술이라는 미디어가 만들어낸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3> 손글씨를 바탕으로 만든 인쇄용 목판
<사진 4> 지암바티스타 보도니가 조각한 펀치(punch: 납활자를 만들기 위한 원형 금속)
<사진 5> 유니버설, 디자인: 헤르바르트 바이어, 1925년


회화와 사진 

사진이 태어나기 전, 서양의 회화는 대상을 정확히 재현하려는 속성을 지녔다. ‘그림처럼 닮았다’는 은유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그림이 대상의 정확한 모방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화가들은 원근법 같은 기법, 또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같은 광학 기술의 힘을 빌려 더욱 정확하게 대상을 재현하고자 애썼다. 하지만 사진이 등장하자 객관적인 재현에서 회화는 사진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때부터, 그러니까 사진이 태어난 1839년 이후부터 회화는 대상의 정밀한 재현의 의무로부터 해방된다. 마네의 파격적인 회화처럼 당시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성의 없이 대충 그린 그림, 인상파 그림처럼 주관적인 그림이 19세기 중반부터 폭발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결국 20세기가 되면 화가들은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는, 즉 자연의 대상을 모방하지 않는 추상화를 그리기에 이른다. 회화라는 미디어의 본질은 사진의 탄생과 함께 더욱 분명해졌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사진가들은 처음에는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대상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사진의 특징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게다가 작가가 그런 기계적 기록에 별로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점에 실망하고 오히려 회화를 모방하는 길을 갔다. 하지만 회화가 주관적, 추상적 재현의 길을 걷기 시작하자 사진가들은 결함으로 여겼던 기계적이고 객관적인 기록이 오히려 사진만이 갖는 고유한 특성임을 깨닫는다. 따라서 객관적 현실을 냉정하고 무심하게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이 회화가 따라올 수 없는 사진 미디어만의 독자적인 영역으로 발전해 왔다.  


흑백사진과 컬러사진 

흑백사진은 음영의 대비가 주는 미묘한 변화가 대단히 아름다운 미디어다. 특히 하이라이트부터 가장 어두운 부분까지 그 계조가 잘 살아난 사진을 볼 때 높은 예술성을 느낀다. 그러한 계조를 잘 표현한 대표적인 사진가로는 에드워드 웨스턴을 들 수 있다. 그의 대표작인 피망 사진은 계조의 풍부한 표현으로 인해 클로즈업된 피망이 마치 유기적인 조각 같은 인상을 준다.<사진 6> 웨스턴은 이렇게 아주 미묘하고 섬세한 계조가 잘 표현될 수 있는 대상, 즉 들어가고 나옴이 분명한 피망, 주름이 잡힌 양배추, 빛에 따라 추상적인 주름 패턴이 드러나는 사막 등을 주로 찍었다. 물론 꼭 그런 대상이 아닌 도시 또는 대자연을 찍은 사진에서도 그처럼 흑과 백의 대비, 그 사이의 미묘한 농도 변화가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각적 즐거움을 준다. 음악에서는 소리의 높낮이, 소리의 길이 변화가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한다. 그런 것처럼 색 정보가 없는 흑백 사진에서는 밝음과 어두움의 변화와 대비가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어떤 면에서 흑백사진은 회화적이다. 

<사진 6> <후추 30호>, 사진: 에드워드 웨스턴, 1930년


반면에 컬러사진에서는 밝기의 변화와 대비가 아니라 색채의 강렬함이나 구성이 그 역할을 대신하므로 계조의 풍부함이 시각적인 주도권을 행사하지 않는다. 에드워드 웨스턴은 늦은 나이에 컬러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가 찍은 컬러의 부두 사진과 흑백의 피망 사진을 비교해 보자.<사진 7> <부두>의 주제는 집 자체라기보다 집의 표면에 입혀진 색채들, 그 색채들의 구성에 있다. 붉은색, 파란색, 노란색이 연달아 있고, 그 색들이 물에 반사되어 있는 것까지 하나의 구성작품이다. 이 컬러사진은 피망 사진에 두드러졌던 입체감은 사라지고 평면화되었다. 기록사진가가 아닌 예술사진가 웨스턴에게 컬러사진이라는 미디어는 평면적인 대상이 더 적합한 피사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컬러사진은 다큐멘터리 사진에 더 어울린다. 컬러사진은 사람이 눈으로 본 세상과 더욱 닮아 있기 때문이다. 즉 컬러사진은 흑백사진보다 덜 회화적이다. 

<사진 7> <부두>, 사진: 에드워드 웨스턴, 1948년


이상에서 본 것과 같은 미디어의 차이뿐만 아니라 무성영화와 유성영화, 영화와 TV, TV와 유튜브 역시도 그 미디어가 내용과 메시지의 선택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면, 그 메시지와 가장 어울리는 미디어를 선택하는 게 더 현명한 판단일 것이다. 미디어를 결정한 순간 미디어는 작가의 의지를 넘어서며, 작가는 미디어가 이끄는 방향으로 쏠리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 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