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5. 09:07ㆍ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Very Good Bauhaus
8월 말에 건축과 디자인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가 두 편이나 개봉되었다. <바우하우스>와 <디터 람스>가 그것이다. 두 영화 중 먼저 <바우하우스>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바우하우스>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이 영화의 원래 독일어 제목은 <Vom Bauen der Zukunft – 100 Jahre Bauhaus>다. ‘미래를 건설하는 것으로부터 – 바우하우스 100년’이다. 제목을 보면 이 영화가 단지 바우하우스의 역사에 대한 영화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바우하우스는 100년의 역사를 가진 적이 없다. 1919년부터 1933년까지 불과 14년만 지속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100년을 지속했다고 볼 수도 있다. 아마도 이 영화는 그것을 증명하려고 한 듯하다.
영화 <바우하우스>의 첫 장면은 바우하우스가 폐쇄된 뒤 지어진 국제주의 양식 건물들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국제주의 양식은 바우하우스와 유럽 모더니즘의 산물이다. 그래서인지 첫 번째로 나오는 건물이 르 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한 마르세유의 유니테 다비타시옹이다. 이 집합주택은 1952년에 완공되었다. 다음에 나오는 건물은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디자인한 시카고의 레이크 쇼어 드라이브 아파트다. 그런데 첫 장면이 좀 이상하지 않는가? 바우하우스의 직접적인 작품이 아닌 그 이후의 영향을 다룬다고 하더라도 바우하우스의 마지막 교장인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디자인한 레이크 쇼어 드라이브 아파트가 먼저 나와야 하는 거 아닐까? 왜 바우하우스와 아무 관련이 없는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이 먼저 나왔을까? 르 코르뷔지에는 바우하우스가 추진한 모더니즘과 같은 노선에 있는 같은 시대의 건축사지만 바우하우스와 어떠한 인연도 맺은 적이 없다.
이 첫 장면은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현실의 괴리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한 마디로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이념을 사회주의적인 것, 공동체를 위한 것으로 진단한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진보적인 디자인, 유토피아를 실현하는 디자인, 바로 그런 위대한 디자인 이념을 바우하우스가 전파한 것으로 전제한다. 따라서 나치에 의해 폐교된 뒤에도 그 위대한 정신은 전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영화는 그러한 사례들을 지구 곳곳에서 찾아내 보여준다.
이런 주제의 영화이니 첫 장면은 그런 이상에 부응한 결과물, 그것도 바우하우스의 주요 멤버가 참여한 결과물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례가 별로 없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미스가 디자인한 레이크 쇼어 드라이브 아파트는 굉장히 절제된 형태라는 점에서 바우하우스의 유산임이 틀림 없다. 하지만 그것은 바우하우스의 형식적이고 미학적인 관점과 연결될 뿐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그 아파트는 당시 미국 최고 부자들의 럭셔리 하우스다.
그래서 영화는 첫 장면에 울며 겨자 먹기로 르 코르뷔지에의 집합 주택을 먼저 보여준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그 건물은 공동체적인 가치를 지향했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레이크 쇼어 드라이브 아파트는 그것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등장 인물들은 단지 화려하고 예쁜 디자인이 아니라 삶을 더 낫게 만드는 디자인을 빈번하게 강조한다. 바우하우스 교수들과 이 학교를 졸업한 건축사들이 전후에 미국에서 실질적으로 구현한 디자인은 그렇지 못했다. 그곳이 최강의 부자 나라인 미국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미국에서 받아들인 바우하우스는 미학적 형식과 합리주의다. 전후 미국의 거대 글로벌 기업들과 자본이 이제 막 세계를 점령할 것 같은 시기에 바우하우스의 합리주의와 그에 따른 절제되고 세련된 모던 형식은 그들의 막강한 경제력과 효율적인 시스템, 앞선 기술력을 과시하는 데 가장 적합한 것이었다.
이 영화는 전반부에 바우하우스의 역사적인 부분을 조금 보여준 뒤 주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건축 프로젝트, 그리고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같은 저개발 국가의 열악한 빈민촌에서 진행된 최근 건축 프로젝트를 보여준다. ‘어반팅크탱크’라는 건축회사가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달동네에 건설한 케이블카가 인상적이다. 그 프로젝트들은 바우하우스가 존재하지 않았어도 뜻있는 건축사들과 도시계획가들이 추진하지 않았을까? 바우하우스의 교수들이 사회적인 디자인을 하려고 했던 것은 당시 독일 사회가 경제적으로 매우 열악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디자인’이라는 바우하우스의 위대한 정신은 시대와 지역의 산물이다. 오늘날 그와 비슷한 정신이 요청되는 곳은 제3세계의 빈민촌들이다. 과연 그곳의 건축사들이 그런 정신을 100년 전에 설립된 바우하우스에서 배웠을까? 그것이 의문이다. 그래서 나는 저개발 지역들의 건축 프로젝트들을 바우하우스와 연결 짓는 것이 지나친 비약이라고 느꼈다.
오늘날의 건축사와 디자이너들이 바우하우스의 갸륵한 정신은 배운다는 것에는 아무런 의문이 없다. 그렇다고 오늘날 전세계에서 행해지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디자인이 모두 바우하우스 정신의 발현이라고 보는 건 좀 무리가 있다. 오늘날 바우하우스의 흔적은 너무나 강력하게 우리 생활 속에 각인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스타일이다. 모더니즘 양식이 그것이다. 반면에 바우하우스의 정신과 이념을 단 하나로 정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교장이 바뀔 때마다, 또 교수들마다 그들이 추구한 이상은 조금씩, 어떤 경우에는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치적 대혼란기와 정확히 일치하는 14년 동안 바우하우스는 요동치는 학교였다.
그에 반해 영화 제작자는 바우하우스의 정신을 단일한 것으로 환원한다. 왜냐하면 영화 제작자가 관객에게 전하려는 메시지가 너무 선명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건축사와 디자이너들은 부자들을 위해 장식미술가처럼 활동할 것이 아니라 뭔가 뜻 있는 일,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사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 나는 영화가 그런 메시지를 우직하게 전달하려고 바우하우스를 전용한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내가 알고 있는 바우하우스는 그렇게 단순하게 요약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바우하우스를 너무 착하게 묘사했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 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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