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이 과잉 구축된 국가대표 유니폼

2022. 12. 24. 09:05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National team uniform with excessive patriotism

 

요즘처럼 태극기를 쉽게 볼 수 있는 때도 없었던 거 같다. 한쪽에서는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빨갱이를 몰아내자며 태극기를 연신 흔들어대고 있다. 지하철을 타면 이들 애국 노인들이 태극기가 커다랗게 새겨진 모자를 쓰고 태극기가 새겨진 백팩을 등에 매고 거기에 작은 태극기를 꽂거나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애국과 멸공을 외치는 단체 중에는 아예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라는 단체조차 있다. 기업들은 애국 마케팅을 하며 광고에 태극기를 삽입하고 있다.

 

사진 1) 문재인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하고 있다.

이는 가까운 일본도 마찬가지다. 혐한 시위는 이번 한일갈등과 관계없이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혐한 시위에는 반 드시 일장기와 욱일승천기가 등장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각국의 무역전쟁은 물리적인 충돌이 없을 뿐이지 감정의 격앙 상태는 전쟁을 방불케 하고 있다. 어쩌면 오늘날의 무역전쟁은 과거의 전쟁이나 마찬가지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전쟁에서는 역시 심리전이 중요하다. 과거 1, 2차 세계대전 때 각 참전국들은 자국 국민을 대상으로 상대국에 대한 증오심을 극대화하고 애국심을 고취하고자 다양한 선전 포스터를 활용했다. 이때에도 국기는 가장 중요한 그래픽 모티프가 된다. 이런 선전 포스터에서 자국의 국기는 하늘 높이 휘날리고, 적국의 국기는 불태우거나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기 마련이다. 국기는 상징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사진 2) 제2차세계대전 때 미국의 전쟁 프로파간다 포스터. 진주만 공격으로 훼손된 자존심을 찢어진 성조기로 표현 해 국민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있다

상징으로서 국기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그것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시기는 스포츠 대회 기간이다. 올림픽을 비롯한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국기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니폼의 가슴에 달린 국기는 선수들에게 자긍심의 상징이 된다. 때로는 그 자긍심 고취의 과욕을 보기도 한다. 이번 광주세계수영 선수권대회의 한국 여자 수구 대표팀 유니폼이 그것이다. 보통은 왼쪽 가슴 부분에 작게 태극기가 들어간다. 수영복에는 국기를 넣지 않고 모자에 넣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그에 반해 한국 여자 수구 대표팀의 유니폼에는 태극기가 어떤 변형을 거치지 않고 그 모양 그대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바탕이 되는 검정색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전체가 검정색이었던 유니폼에 갑자기 누군가의 지시로 태극기를 두른 것 같다. 배경과 태극기가 서로 충돌하는 모습이다. 태극기는 겉돌고 있다.

 

사진 3) 여자 수구 대표팀 유니폼. 태극기가 지나치게 강조되었다.

유니폼 전체를 국기 모티프로 디자인하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예를 들어 유명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은 자국 국기를 표현한 것이다. 세로의 두꺼운 하늘색 스트라이프는 아르헨티나 국기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유럽 국가의 국기에 가 장 흔하게 나타나는 그래픽 모티프인 띠 패턴, 또는 십자 패턴은 그 자체가 매우 단순하기 때문에 그것을 거의 그대로 가져와도 아주 자연스러운 디자인이 된다.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잉글랜드와 프랑스, 스웨덴 같은 나라의 유니폼도 국기를 표현한 것이 다. 물론 약간의 변형을 거친다. 그 변형은 원래 국기가 가지고 있던 띠의 굵기를 선으로 바꾸는 식이다. 아무리 단순한 모양이라고 하더라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좀 과하다고 여긴 것이다. 세련됨이란 ‘환원주의’를 따 른다. 다시 말해 복잡한 것을 절제하 여 압축할 때 세련미를 얻을 수 있다. 

 

사진 4)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 유니폼.

 

사진 5) 아르헨티나 국기

 

반면에 태극기는 중앙에 태극 문양이 있고, 네 구석에 4괘의 문양이 덧붙여졌다. 그에 따라 다소 복잡한 모양이 되었다. 태극과 쾌는 서로 잘 어울리는 문양이라고 볼 수 없다. 그냥 전혀 다른 기운을 갖고 있는 독립된 모양이 하나의 화면 안에 배치되었다. 이에 따라 태극기는 복잡해졌고, 또한 추상성이 약화되었다. 추상성이 약화되었다는 것은 사람의 얼굴처럼 좀 세밀해지고 복잡해져서 구체적인 형태를 띠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에 반해 국기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인 삼색 문양이나 십자 문양을 보라. 그것은 단순한 추상적인 면과 띠의 구성이어서 색상만 이상하게 쓰지 않는 이상 잘 어우러진다. 이런 국기는 유니폼으로 그대로 가져와도 세련됨이 약화되지 않는다. 이에 반해 미국의 성조기 역시 복잡한 모양이어서 그것을 그대로 유니폼에 적용하면 이상해 진다. 따라서 미국 국가대표 유니폼에 성조기를 적용하려면 별과 스트라이프를 독립된 그래픽 요소 로 보고 다시 재구성을 해야 한다. 그러면 국가 정체성도 금방 드러내고 세련미도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다. 그래도 삼색기를 모티프로 디자인한 유니폼만큼 세련되지는 못하다. 그만큼 복잡한 국기의 디자인이 갖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사진 6) 미국 사이클링 대표팀 유니폼은 국기의 패턴을 최대한 이용하되 그 요소들을 독립시켜 변형했다

나는 국기 디자인의 우열을 가리고자 함이 아니다. 국기는 그냥 익숙해져서 그것 을 좋아하거나 어떤 역사적인 기억이 부여되면서 싫어하게 되는 것이지 어떤 디자인이 더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다른 물성에 적용하려 할 때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복잡한 국기를 대표팀 유니폼이나 의류, 또 어떤 상품에 적용할 때는 아주 신중하고 치밀하게 디자인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야말로 촌스러워지기 딱 좋다. 나는 성조기를 이용한 미국의 기념품에서 그런 촌스러움을 많이 발견한다. 기념품이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환원주의를 필요로 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재현하는 대표적인 장이다. 관광객에게 그 지역에 대한 기억을 심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념품들은 대개 억지스럽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 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