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17. 15:37ㆍ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Plagiarism, parody, creation : What are the differences?
얼마 전 방탄소년단의 새로운 앨범 화보집 사진이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프랑스의 유명한 사진작가 베르 나르 포콩이 방탄소년단 화보집의 특정 사진과 뮤직비디오의 특정 장면이 자신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것 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포콩은 방탄소년단을 좋아하기 때문에 소송을 할 생각은 없지만 저작권 침해를 인 정하고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다. 포콩이 주장하는 표절 사례는 소년들이 야외 식탁에 둘러 앉아 축배를 드 는 장면이다. 길다란 식탁, 소년들, 그리고 배경의 나무 뒤로 불타는 듯한 모습 등이 포콩이 1978년에 발표 한 <여름방학> 시리즈 중 ‘연회’와 그 구성 요소가 비슷하다. 구도나 연출이 다르지만 구성 요소가 비슷하 다. 전반적인 화면은 어떻게 보면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전혀 비슷하지 않다. 영감을 받았 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분명한 건 이 정도 갖고 소송을 걸어서 이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방탄소년단측으로부터 사과를 받거나 배상을 받진 못하겠지만, 포콩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중 스타에 대한 시비를 통해 작가의 인지도가 조금 올라가는 효과는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것이 목표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반면에 방탄소년단은 이 사건으로 손해를 보면 보았지 별다른 이익이 없다. 표절 시비가 된 뮤직 비 디오의 클릭 수를 조금 늘리는 데 도움이 되었을까? 워낙 인기 있는 밴드라 그 정도의 도움은 큰 의미가 없 을 듯하다. 그러니까 이번 표절 시비는 방탄소년단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니까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완전히 독창적인 어떤 것을 창조하기란 대단히 힘들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 입체적인 제품을 디 자인하든 광고나 화보 같은 평면적인 이미지를 디자인하든 그것은 결국 어떤 것을 닮기 마련이다. 우리는 뭘 보든지 금새 그것은 무엇과 닮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얼마 전 끝난 재스퍼 모리슨의 전시에 출품된 식기와 가구들을 보라. 그것들은 전통적으로 늘 써왔던 지극히 평범한 형태를 기본으로 디자인한 것이다. 그것을 누구도 표절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미지 역시 마찬가지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후 무수히 많은 이미지 재현 방법이 창안되었다. 그리하여 새롭게 뭔가를 하는 것은 사실 과거의 무엇을 다시 살려내는 일 로 귀결되기도 한다. 그리스 고전 양식은 긴 중세를 거쳐 15세기 르네상스 때 다시 되살아났고, 19세기에 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다시 유행했다. 오늘날 한국에서 유행하는 복고는 노골적으로 과거의 서체와 과거 의 이미지 재현 방식을 베끼지만, 아무도 표절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마치 포스트모던 시대에 폴라 셰어 가 19세기 러시아 구성주의 방식으로 음반 자켓을 디자인한 것과 같다.
어떤 스타일을 따르는 것은 표절이라고 하지 않는다. 복고풍 포스터는 일부러 더욱 복고스럽게 해서 그 포스터가 하나의 양식을 충실히 따른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따라서 특정 스타일을 따르는 것은 패러디와 그 태도가 비슷하다. 패러디는 모든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익숙한 어떤 것을 노골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재미를 준다. 어떤 식당의 복고풍 파사드가 사람들에게 그저 새로운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실패다. 이 복고풍 파사드는 7080세대에게 추억을 불러 일으켜 들어오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르려는 원본 의 높은 인지도는 스타일 모방과 패러디의 관건이다. 개그맨이 유명한 정치인이나 대중 스타를 흉내 낼 때 사람들은 웃지만, 그가 자기 아버지를 흉내 낸다면 아무도 웃지 않는다. 어떤 디자이너가 패러디 했 을 때 대중이 그 원본을 모른다면, 그것은 패러디가 아니라 표절이다. 그것을 피하려면 디자이너는 누구 나 알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아주 유명한 작품을 패러디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패 러디 되는 것은 더욱 더 빈번하게 패러디 되어 더욱 더 유명해진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비틀즈의 < 애비 로드> 같은 작품들이 그렇다. <맨해튼 레게 유니트>라는 앨범은 <애비 로드>의 패러디인데, 사람 을 사과로 대체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도 이것이 <애비 로드>의 패러디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패러디를 할 때는 원본과 노골적으로 비슷하게 해야 한다. 패러디는 관객이 반드시 원본을 알아야 흥미롭기 때문이다. 단지 패러디이기 때문에 흥미로운 작품들이 있다. 그것이 패러디가 아니라고 했 을 때는 별 감흥이 없는 그런 작품들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패러디는 관객이 원본을 반드시 떠올릴 수 있게 노골적으로 베끼는데 이것은 도덕적 흠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표절을 할 때는 원본과 다르 게 해야 한다. 어떤 작가가 다른 작가의 책에서 마음에 드는 대목을 표절할 때 그는 교묘하게 다른 단 어를 쓰거나 뜻은 같지만 문장을 다르게 하는 식으로 독자가 표절 사실을 모르게 한다. 방탄소년단 의 이미지를 만든 디자이너가 만약 베르나르 포콩의 작품을 보고 그것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했 다면, 그는 표절을 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는 마치 표절 작가가 단어와 문장을 바꿔 원본을 모르도록 한 것처럼 구성 요소들의 배치와 연출을 다르게 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디자이너가 포콩 의 작품을 모르고 그렇게 했다면, 그것은 우연의 일치다. 분명히 그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하 더라도 법적으로 표절이라는 판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그저 디자이너의 양심에 맡길 일이다. 들키 지 않게 표절하는 방법이 있다. 성대모사를 잘 하는 개그맨이 자기 아버지를 모방하면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는 것처럼 유명하지 않은 것을 훔치면 된다.
위대한 작가들도 표절을 한다. 가장 위대한 표절(?)은 피카소가 폴 세잔이 이룩한 성취를 훔친 것이 다. 폴 세잔은 서양 유화의 굳건한 전통인 원근법을 무시하고 다양한 시점에서 대상과 자연을 바라본 그림을 그렸다. 피카소는 그것을 더욱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아비뇽의 처녀들>이란 작품을 창조해 현대 회화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겉모습이 아니라 방법이나 태도를 훔치고 그것을 발전시키면 결 코 표절이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대한 창작으로 평가 받기도 하는 것이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 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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