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15. 09:28ㆍ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Products of the times, Bauhaus
올해는 바우하우스가 설립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그러다 보니 이 학교가 만들 어진 독일은 물론 한국에서도 이 학교의 의미를 되새기는 출판, 전시 등의 행사 가 준비중이다. 여러 잡지에서도 관련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반면에 2017년은 네덜란드의 신조형주의 운동인 데스틸이 설립 100주년을 맞은 해였지만, 한국에 서는 거의 주목받지 못한 채 지나갔다.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구성주의도 마찬가 지다. 데스틸이나 구성주의와 견주어 바우하우스는 왜 압도적으로 유명하고 더 각광 받을까?
첫째, 바우하우스를 주도한 교수와 학생들의 숫자는 훨씬 더 많다. 그들 중 많은 수가 나치의 박해를 피해 또는 일거리의 상실에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뿌리를 내렸다. 이로써 바우하우스의 정신이 더 널리 퍼질 수 있었다. 둘째, 바우 하우스를 탄생시킨 독일은 모던 건축과 디자인 운동이 활발했던 1920년대에 데 스틸의 네덜란드나 구성주의의 러시아보다 훨씬 더 발달된 제조업 국가였다. 바 우하우스의 생산물은 가구부터 조명, 도자기, 금속 테이블웨어, 직물, 글꼴, 포스 터와 책, 패션, 무대 의상, 건축에 이르기까지 종합 선물 세트다. 반면에 당시 러 시아는 유럽에서 산업이 가장 덜 발달한 농업 국가였다. 따 라서 구성주의의 생산물은 대 부분 포스터 류의 그래픽 디 자인, 또는 블라디미르 타틀 린의 제3인터내셔널 기념탑 처럼 모형에 머물렀다. 셋째, 결정적으로 데사우에 건설된 바우하우스 빌딩은 이 학교를 모더니즘의 성지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운동을 하 나의 분명한 이미지로 떠올리게 하는 구심점이 있는 셈이다. 반면 에 데스틸은 슈뢰더 주택처럼 건 축물이 대부분 개인 주택이고 여기 저기 흩어져 있어서 임 팩트가 크지 않다.
그렇다면 바우하우스는 이들 보다 확실히 앞선 모던 디자인 운동인가? 사실 그것을 따지는 건 커다란 의미가 없다. 여러 모던 운 동들은 독립적으로 발달했다기보다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특히 먼저 시작된 데스틸과 구성주의는 바우하우스에 엄청 난 자양분을 마련해주었다. 1919년에 바우하우스가 설립되었을 때, 교장인 발터 그로피우스는 학교가 나아갈 방향을 분명히 했다. 예술가와 공예가가 힘을 합쳐 아름다운 건축과 내부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건축 과 그 내부를 채울 제품 디자인의 방향까지 결정한 것은 아 니었다. 초기 바우하우스의 건축 프로젝트와 제품을 보 면 표현주의 성향이 강했다. 표현주의는 기능주의와 합리주의를 지향하는 모 더니즘과 어울리지 않는다. 발터 그로피우스의 좀머펠트 주택(1920-22년)과 마르셀 브로이어의 아프리카 의자 (1921년) 같은 초기 프로젝 트를 보면 그런 경향이 자명해 보인다. 1919년에 디자 인된 학교 로고(1919년)가 더욱 이 학교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하지만 1920년대 초, 데스틸의 설립 자인 테오 판 두스부르흐와 게리 트 리트벨트 같은 건축사들이 바 우하우스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 다. 데스틸의 신조형주의는 기본 적으로 환원주의를 지향한다. 복 잡하고 다양한 세계를 형태는 단 순한 기하학적 도형으로, 색은 원 색과 흰색, 검정 같은 몇 가지 색 만으로 단축하는 것이다. 그 결과 아프리카 의자를 디자인했던 브로이어는 리 트벨트의 적청 의자를 본 뒤 아프리카 의자와 는 형식이 완전히 다른 기하학적 이고 구조적인 의자를 디자인하 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또 한번 도약하는데, 바로 혁신적인 B3 의자를 디자인한다. 이 의자 는 처음으로 강철 파이프를 의자 의 재료로 썼다.
데스틸과 구성주의는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 큰 진보를 이루었다. 데스틸은 산 세리프체를 주로 사용했고, 검정색의 굵은 띠로 주목도를 높였다. 구성주의는 역 동적인 대각선 구도를 애용했다. 바우하우스의 헤르베르트 바이어가 디자인한 칸딘스키 전시회 포스터는 데스틸과 구성주의의 스타일을 받아들여 발전시킨 것 이다. 1922년에 새롭게 디자인한 로고 역시 데스틸의 환원주의를 따르고 있다.
데사우에 건설된 바 우하우스 빌딩 역시 20세기 초반에 일어 난 모더니즘으로부 터 영감을 받았다. 그것은 건축이 아닌 회화 분야로부터 얻 은 것이다. 1907년 부터 시작된 큐비즘 은 서양 회화에서 오랫동안 지켜졌던 원칙인 원근법을 파괴했다. 이로써 여러 시점에서 바라본 그림이 탄생했다. 이런 혁신은 건축사들에게도 영감 을 주었다. 건축 역사가 지그 프리트 기디온은 바우하우스 빌딩이 큐비즘을 적용한 건 축이라고 평가했다. 좌우대칭 의 기존 건물과 달리 자유롭 게 구성된 이 건물은 여러 각 도에서 보아야 비로소 전체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바우하우스는 같은 시대 유럽에서 일어난 여러 모더니즘 운동으로부터 양식을 취하고 발전시켰다. 따라서 바우하우스를 유럽의 다른 모더니즘 운동과 견주어 우열을 가리는 일은 큰 의미가 없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폐허가 된 도시를 살리고 더 많은 이들에게 저렴하지만 미학적으로 뒤떨어지지 않은 제품 을 공급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을 따른 결과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 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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