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메이드, 반항인가, 순응인가?” 2019.2

2022. 12. 14. 09:07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Ready-Made, Rebellious, or Compliant?"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마르셀 뒤샹 전시가 대규모로 열리고 있다. 책으로 만 봤던 마르셀 뒤샹의 저 유명한 ‘샘(Fountain)’을 드디어 보았다. 촬영금지여 서 나는 지킴이가 없는 곳에서 몰래 사진을 찍었다.(사진 1) 천정에서 내려다보 는 각도다. 샘은 2차원의 회화가 아니라 일종의 조각이어서 위에서 찍어도 문제 없다. 워낙 위대한(?) 작품이다 보니 샘은 특별 대우를 받고 있었다. 전시장 중앙 에 놓여 있고 아주 널찍한 전시대 위에 유리의 보호를 받으며 올려져 있다. 만지 는 것은 물론 가까이 접근하는 것조차 막고 있다. 그 태도가 흡사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을 경건하게 숭배하는 마음으로 다루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것은 마르셀 뒤샹의 의도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뒤샹은 그 변기가 정말 위대한 예술작품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뛰어나서 전시장에 놓은 것이 아니다. 그는 기존 예술이 갖고 있는 젠체하는 모습, 우상으로서 그 우쭐대는 꼴, 그것을 확대 재생 산하는 제도인 미술관과 갤러리를 망가뜨리고 싶었다. 그리하여 예술가인 자신이 직접 만들지도 않고 게다가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변 기를 갖다 놓은 것이다. 이는 분명히 예술이라는 우상의 파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예술의 개념에 대한 그의 태도이지 그가 선택한 물질적 대상이 아니다.

 

사진 1. 현대미술관의 마르셀 뒤샹 전시장. 뒤샹이 선택한 변기 ‘샘(Fountain)’은 우상이 된 듯 거대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예술 작품의 존재 가 치는 희소성으로 증 명된다. ‘진본’이어 야 하고 ‘유일무이’ 해야 한다. 이번에 온 ‘샘’은 복제품이 다. 뒤샹이 1917년 에 전시장에 갖다 놓 은 오리지널 변기는 당시 주최측으로부터 거부 당하고 방치되어 사라졌다. 오직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찍은 사진(사 진 2)만으로 그 모습을 알 수 있다. 그 뒤 샘은 20개 정도 복제되었다. 이번에 서 울에 온 것도 그 중 하나다.(사진 3) 그래서 두 개의 변기가 다른 걸 확인할 수 있 다. 디자인도 다르고 그 표면 에 쓰인 ‘R. Mutt’라는 서명 도 다르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차피 우 상을 파괴하고자 대량 복제된 변기를 갖다 놓은 게 목적이 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국 뒤샹의 의도는 전복되고 미술 관이라는 제도가 승리했다. 그 복제품조차 우상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사진 2. 1917년에 발표한 뒤샹의 샘을 알프레드 스티글 리츠가 찍은 사진. 이 오리지널 변기는 사라지고 없다.

 

아무튼 변기를 신성한 전시장 에 갖다 놓은 것은 현대미술사 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 중 하 나로 평가 받는다. 기존의 예 술 개념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엄청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창 조의 개념이 바뀌었다. ‘선택’ 만으로 예술작품이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익명의 ‘레디메이 드(ready-made)’가 도도한 미술관의 문턱을 넘어섰다.

 

사진 3. 오리지널 변기가 사라진 뒤 선택된 또 다른 변기. 이런 변기가 20여 개 정도 있다고 한다

 

예술계의 레디-메이드는 디자인에도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이탈리 아의 아킬레 카스틸리오니가 디자인한 메차드로(mezzadro)가 있다. 이 의자의 좌석은 대량 생산된 트렉터 좌석이다. 카스틸리오니가 디자인한 것이 아니라 기 성품을 선택한 것이다. 그의 의도를 알아내려면 이 의자가 생산된 연도와 상황을 조사해야 한다. 이 의자가 처음 선보인 건 1954년에 열린 밀라노 트리엔날레 중 ‘아트 앤 프로덕션’이라는 주제의 섹션이었다. ‘아트’라는 단어가 들어간 범주에 있다는 건 어떤 뜻이 있다는 거다. 그것은 이 의자가 현대 예술의 중요한 개념인 ‘저항’을 담고 있다는 게 아닐까. 카스틸리오니는 뒤샹이 선택한 변기처럼 익명 의 트랙터 좌석을 채용함으로써 모더니즘의 엄격한 기능주의와 합리주의에 반기 를 들고 싶었던 것이다. 농부(mezzadro는 소작인이라는 뜻)의 거친 노동용 차 량에 사용되는 시트는 점잖지도 않고 더구나 편안할 것 같지도 않다.

 

뒤샹의 레디메이드는 기존 예술에 상처를 내고 조롱했다. 그리고 영구적으로 예 술의 개념을 바꿔놓았다. 카스틸리오니의 메차드로도 굿 디자인에 발목 잡힌 모 더니즘을 조롱하고자 했다. 1940년대 중반 뉴욕의 현대미술관이 주도한 ‘굿 디 자인’이라는 개념은 기능과 아름다움, 만듦새에 충실한 생산품, 즉 엄격한 모던 디자인에 부합한다. 자유로운 이탈리아인 카스틸리오니는 바로 이 굿 디자인이 좀 밥맛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디자인은 ‘실용성’이라는 그 존립 근거까지 전 복시킬 수는 없다. 이 의자는 기능적이다. 튼튼하고 게다가 앉으면 예상 밖으로 편안하기까지 하다. 형태는 전위적이어서 남다른 개성을 추구하는 소비자층에게 더없이 만족스럽다. 그러니까 거칠게 저항하려다가 중도에 저항을 포기하고 디 자인의 본질로 돌아간 셈이다.

 

예술은 소수의 전문가 집단과 미술관이 인정해주면 되지만, 디자인된 사물은 시 장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판매되어야 한다. 그 것이 저항에 제동을 건다. 결국 불온한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얌 전해져서 제도권의 질서로 편입 된다. 학생 때 투사가 되어 격렬하게 데모하다가 가족이 생긴 뒤 보수 꼴통이 된 정치인 같다고나 할까.

 

사진 4. 아킬레 카스틸리오니가 1954년에 처음 발 표한 메차드로(Mezzadro)는 좌석이 트랙터 의자, 즉 레디메이드를 그대로 가져왔다.

 

또 다른 유명한 레디메이 드 의자로 론 아라드가 1981년에 디자인한 ‘로버 Rover’가 있다. 이 의자는 ‘로버 2000’이라는 자동차의 시트를 그대로 가져와 금속 철제 프레임 위에 올려 놓았다. 이 의자에 대한 평 가를 보면 1980년대 포스트모던 디자인에 영향 아래 있으며 리사이클링의 개념 도 들어갔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 의자에서 정말 중요한 가치는 미학적 취 향이라고 생각한다. 일종의 ‘폐허 취향’이라고 할까? 세상에 나온 지 오래 되어서 거칠어지고 낡아지고 흠집이 난 표면에서 묘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 또 한 마르셀 뒤샹의 예술적 레디메이드와 차원이 전혀 다르다. 마르셀 뒤샹은 변기 라는 레디메이드를 선택했을 때 미학적 고려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예술이라 는 기존의 개념에 저항하고자 미학적 무관심, 무취향으로 그것을 선택했다. 변기 의 미학을 발견한 것은 후대의 비평가들이다. 하지만 론 아라드의 레디메이드는 분명한 미학적 선택이다. 

 

사진 5. 론 아라드가 1981년에 발표한 로버(Rover)는 로버 자 동차의 시트를 그대로 재활용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종류의 레디메이드를 흔하게 본다. 인테리어를 할 때 유럽의 아주 오래된 낡은 문짝을 활용하고 빈티지 가구를 들여놓는 것. 용도가 폐기된 옛 공장 건물 같은 것을 그 거친 벽의 질감을 그대로 노출시켜서 재활용한 것 등 말이다. 이런 것들이 디자인에서 용해된 레디 메이드다. 하지만 이 레디메이드는 뒤샹 이 했던 우상에 대한 저항과 조 롱으로서의 레디메이 드와는 전혀 다른 길이다. 디자인 은 혁신을 추 구 할 수 는 있지만, 체 제에 저항하 기란 참으로 어려운 장르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 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