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 | Article/에세이 | Essay(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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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 그 아련한 시작과 끝 2021.8
A hallway, its dim beginning and end 영화 를 시청하던 중, 평소 선도부장에게 불만이 있던 학생이 위층 복도에 있다가, 마침 아래 지상에 모여 있던 선도부와 선도부장에게 마시던 우유갑을 내던져 그 우유갑이 선도부장 몸에 명중하면서 흰 우유가 검정 교복에 쏟아지는 장면을 보았다. 선도부와 부장은 잔뜩 화가 난 채 위층 교실로 함께 몰려와 우유갑 던진 학생을 찾다가, 그 행위를 말리는 햄벅(햄버거) 학우를 대신 냅다 팬다. 주연배우는 같은 반 학우들이 선도부장에게 늘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는 걸 보고, 그걸 빌미로 선도부장에게 옥상에서 한 판 맞짱을 뜨자고 큰소리로 욕하며 소리친다. 그 장면에서 나의 중학 시절이 생각났다. 나는 청소시간에 물을 1층 배수구에 버려야 되는데, 귀찮아..
2023.02.08 -
건축물의 활력소 ‘계단’ 2021.6
‘Stairs’, the vitality of buildings 계단을 생각하면 먼저 우리 시대의 명가수 조용필 님의 “베고니아~ 화―분이~ 놓인~ 우체국 계단, 어딘가에 엽서를 쓰던 그―녀의 고운 손~”으로 시작되는 ‘서울 서울 서울(1991)’의 노랫말이 생각난다. 일반적으로 우체국으로 진입하는 출입구 앞에는 계단이 조성되어 있다. 그 계단은 우편 화물차의 짐 싣는 공간과 차 바닥판의 높이를 맞춘 것으로부터 기인하는데, 화물 트럭 짐칸에서 내리는 우편물을 수평으로 힘 덜 들이고 올리고 내리려 하다 보니 1층 바닥은 도로보다 높아지게 되고 그래서 우체국 앞은 자연스레 계단이 조성되곤 했던 것이다. 그 계단 양측에는 환경미화를 위해 봄에는 사르비아(샐비어), 가을에는 들국화 등 화초류가 화분에 정갈히 담..
2023.02.06 -
불씨 2021.5
Embers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신세계로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요즘, 인공지능의 창출도 대단하지만, 불(火)의 발견은 우리 인류역사에서 실로 획기적인 일대 사건이라고 되뇌지 않을 수 없다. 불(火)을 다루는 지혜는, 신석기 혁명이 일어나기 훨씬 이전인 약 40만 년 전 구석기시대 어느 한 시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따금 산불이나 벼락을 맞은 덤불과 나무에서 자연적으로 발화(發火)가 일어나긴 했겠지만, 불을 삶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이면서부터 우리 인류의 생활은 급변하기 시작하였다. 불씨를 어느 한 곳에 모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즉각 꺼내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덕분에 몸의 아랫도리나 겨우 가리고 살 정도였던 구석기인들이 우선 당장 추위를 견딜 수 있게 되었으며, 맹수의 접근도 효과..
2023.02.03 -
다락방의 추억 2021.2
Memories of attic 다락방에 대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다양하다. 어릴 때 다락방에서 체험했던 여러 가지 일이 있으므로 추억을 반추하면 그 재미가 쏠쏠하다. 건축법에서 정의하는 다락은 지붕과 천장 사이 공간을 조성하여 물건을 저장·보관하는 공간이며,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으로서의 개념이 아니기에 그 다락의 높이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경사진 지붕 형태 아래에 천정에 있을 경우에는 평균 높이가 1.8미터 이하여야 하고, 지붕 형태가 평 슬라브일 경우는 1.5미터 이하일 경우에만 다락으로 인정된다. 기껏해야 1.5미터 높이기에 성인은 머리를 숙여가며 그곳을 드나들어야 한다. 이렇게, 다락은 공간개념과 높이 규정에서 그 의미가 일반 방과는 확연히 구분되기에 공간에서 느끼는 맛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2023.01.31 -
이음과 맞춤 2020.11
Joint and fit 사랑은, 서로 맞춰나가는 일이다. 방향을 맞추고, 높이를 맞추고, 또 생각을 맞추다가 마침내 마음마저 맞춰내는 숭고한 작업(?), 그게 사랑이란다. 그게 만만했더라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렇게 사랑타령이 요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굳이 사랑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서로 다른 존재끼리 ‘잇고 맞추는’ 것 자체가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인가 보다. 우리 한옥에도 그 흔적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본디 한옥은 톱으로 잘리고, 자귀로 깎이고, 끌로 도려내지다가, 또 때가 되면 메로 흠씬 두들겨 맞는 과정을 거쳐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 참으로 기구한 팔자를 지녔다지만, 그 구성 부재들의 결구부(結構)를 볼 때마다 적잖은 전율이 느껴지곤 한다. 결구(結構) 무엇이든 완전체 ..
2023.01.26 -
마당, 그 아름다움에 관하여 2020.10
About the yard, its beauty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고 어머니의 부지런함이 고스란히 배여 있던 갈색 툇마루에서 내려 보았던 마당에 관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 때 그 날은 햇살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이었고 백색의 마당은 더욱 눈을 부시게 한 날이었다. 우리 한옥은 처마가 깊다. 앞산의 둥그런 실루엣을 닮은 듯, 한복 소매의 공 굴린 듯, 그리고 여인의 버선코를 닮은 듯한 지붕 선은 서까래와 부연을 타고 내려와 숫, 암막새 기와로 마감된다. 처마 선은 길게 이어짐으로써 여름철 직사광선과 길게 늘어지는 서향 빛을 차단하는 기능을 가진다. 반면 그 처마 깊이로 인해 겨울철 실내는 빛이 상대적으로 작게 들어온다. 그래서 그 점을 보완한 장치가 바로 마당에 백색 마사토를 까는 일이었던 것이다. 백색..
2023.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