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10. 14:08ㆍ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Is the molding functionally sellected?
지난 연재에서 인류 문명에서는 늘 낯선 것들의 직접적인 충돌을 부드럽게 해주는 완충제가 디자인된다고 말했다. 사회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지점, 건축에서는 보와 기둥이 만나는 지점, 가구에서는 다리와 지면이 만나는 지점에는 언제나 완충제가 디자인되었다. 마치 뼈와 뼈가 부딪히는 것을 막아주는 연골과 같다고나 할까. 건축의 내부에도 연골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몰딩이다.
사전에서 정의하는 몰딩(molding)은 건축 표면에서 돌출되거나 함몰된 연속적인 띠를 말한다.<사진 1> 기능적으로 몰딩은 어떤 요소가 다른 것으로 바뀌는 중간단계(transition)를 덮으려는 목적을 갖는다. 몰딩은 건축의 외관에서 시작되었다. 예를 들어 고전 건축의 기둥에서 주초(base)는 상단 토루스(upper torus)와 하단 토루스(lower torus)로 구성되어 있고, 그 사이에는 ‘스코티아(scotia)’라는 전환점이 있다.<사진 2> 스코티아는 오목 몰딩에 해당한다. 스코티아는 위로는 상단 토루스와 만나고, 밑으로는 하단 토루스와 만난다. 스코티아가 토루스와 만나는 지점에도 전환점으로서 돌출된 몰딩이 있다. 이 몰딩을 ‘필레(fillet)’라고 한다. 스코티아도 몰딩이지만, 스코티아가 토루스와 만나는 지점 역시도 몰딩인 것이다.
이렇게 유럽의 고전 건축에서는 엔타블라처의 맨 윗부분인 코니스부터 기둥의 맨 밑인 베이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몰딩들이 반복해서 나타난다.<사진 3> 이 이오니아식 오더(order)에서 코니스, 프리즈, 아키트레이브는 각각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나뉘는 부위마다 몰딩이 있다. 긴 기둥의 반복적인 세로 줄무늬인 플루팅 역시도 몰딩 장식의 일종이다. 유럽의 고전 건축은 몰딩의 건축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많은 몰딩이 전부 기능성을 갖고 있을까? 건축의 표면에 그렇게 수많은 경계를 만들어 표면의 공간을 빈번하게 나누는 일이 정말 기능적으로 필요할까? 그런 의문을 갖게 된다. 몰딩이 실내로 들어왔을 때 그 부분을 더욱 크게 느낀다. 예를 들어 벽과 천정이 만나는 경계에는 몰딩 장식이 들어간다.<사진 4> 이것을 ‘크라운 몰딩(crown molding)’, 또는 ‘코니스 몰딩(cornice molding)’이라고 부른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건축의 코니스를 실내로 끌어들인 것이다. 벽과 천정이 만나는 지점을 덮는다는 것은 기능에 해당한다. 그렇게 기능적인 물질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은 장식에 해당한다. 코니스 몰딩은 성질이 다른 두 가지(벽과 천정)가 만나는 지점의 충돌을 완화하는 완충제로서 기능을 갖는다.
코니스 몰딩 밑에 있는 픽처 레일 몰딩(picture rail molding)은 어떨까? 이것은 분명한 기능을 갖는다. 그림을 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사진 5> 픽처 레일 몰딩은 그림을 벽에 거는 과정에서 못을 박아 벽에 흠집을 내는 것을 방지하고자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기능만을 하기에는 몰딩이 벽에서 차지하고 있는 영역이 너무 과하지 않은가? 픽처 레일 몰딩은 그림이 걸린 벽에만 설치하는 것이 아니다. 벽에 통일성을 주려면 그림이 걸리지 않은 벽에도 설치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낭비가 아닐까? 또 다른 몰딩을 살펴보자. 벽의 중간보다 약간 아래에 설치하는 체어 레일 몰딩(chair rail molding)이 있다.<사진 6> 이 몰딩의 기능은 의자나 가구가 벽에 밀착되어 벽에 상처를 내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체어 레일 몰딩은 벽에서 좀 더 두껍게 돌출되어 있다. 하지만 체어 레일 몰딩 역시도 가구가 벽에 부딪히는 것을 방지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그 영역이 지나치게 넓고 두껍다. 사진에서는 복도 벽에도 체어 레일 몰딩이 부착되어 있다. 이곳은 가구가 놓일 일이 거의 없어 보인다. 하지만 역시 몰딩이 부착되었다. 한 곳에 몰딩을 부착하면 다른 곳에도 부착해야 공평하다. 그것이 기능적 필요와 관계없이 집의 미적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디자인은 통일성을 지향한다.
벽과 바닥이 만나는 지점에 부착되는 베이스보드 몰딩(baseboard molding)은 어떨까?<사진 7> 이 몰딩은 뚜렷한 기능을 갖고 있다. 벽과 바닥이 만나는 지점에는 틈이 있을 수 있다. 물걸레로 바닥 청소를 할 때 그 틈으로 오염 물질이 스며들 수 있다. 이것을 막고자 덮은 것이 베이스보드 몰딩이다. 베이스보드 몰딩은 한국어로 ‘걸레받이’다. 이 이름은 확실히 베이스보드 몰딩이 기능적 목적으로 탄생했음을 증명하는 듯하다.
실내의 몰딩들은 뭔가 그럴 듯한 기능적 필요성으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변호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몰딩들은 고전적 아름다움을 위해 채택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주장하는 기능에 비해 이 몰딩이 벽에서 갖는 시각적 효과가 너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사실 몰딩을 기능적인 역할로만 한정한다면 시각적으로 최소화해야 한다. 하지만 그 반대다. 결국 몰딩이란 기능을 변명 삼아 만든 ‘장식’인 셈이다. 특히 실내의 몰딩은 고전 건축의 오더를 실내로 끌어들인 것이다. 물론 기능성을 갖는 특수한 부위를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디자인의 큰 역할이다. 한국의 고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식은 경첩과 손잡이 같은 기능적 하드웨어에 부여된다.
하지만 실내의 몰딩은 경첩이나 손잡이보다 다른 차원의 쓸모에 봉사한다. 그것은 실용적인 쓸모보다는 장식적 쓸모에 훨씬 더 몰두한다. 또 하나의 쓸모가 있는데, 그것은 역시 완충제라는 점이다. 코니스 몰딩과 베이스보드 몰딩이 완충제인 것은 그것이 벽과 천정, 벽과 바닥이 만나는 지점의 전환점을 덮고 있기 때문이다. 문과 벽, 또는 창문과 벽이 만나는 지점에 적용되는 케이싱 몰딩(casing molding)<사진 8> 역시 전환점의 완충제라고 할 수 있다. 모던 건축에서는 이 수많은 몰딩들을 전부 몰아냈다. 모더니스트들에게는 완충제라는 그런 기능조차도 진정한 기능이 아닌 장식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몰딩 장식은 쉽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장식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
'아티클 | Article > 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레디메이드, 반항인가, 순응인가?” 2019.2 (0) | 2022.12.14 |
---|---|
통제 불능의 선을 제거하라 2019.1 (0) | 2022.12.12 |
색을 짓다, 첫번째 이야기 2018.9 (0) | 2022.12.07 |
바이센호프 지들룽 2018.07 (0) | 2022.12.05 |
낯선 것들의 충돌을 완화해 주는 디자인 2022.10 (0) | 2022.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