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1. 21:07ㆍ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Design that mitigates the collision of strange things
사람은 대개 처음 만나는 것에 대해서는 약간의 두려움을 갖고 긴장하기 마련이다. 낯선 것은 언제나 나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경계심이 본능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미팅을 가든 면접을 보든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이 편안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늘날처럼 문명화된 세계에서는 그나마 낯선 사람이 자신을 해칠 것이라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치안이 발달하지 않은 근대 이전에는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다. 따라서 한 평생을 한 지역에서만 살아가는 시대에 낯선 이방인은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문명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 만날 때 예의를 갖추는 것은 경계를 느슨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당신을 해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곧 예의다. 손은 사람이 사용하는 가장 원초적인 무기다. 그 손을 무기로 사용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악수다. 이때 악수하는 손은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만남을 부드럽게 해주는 도구가 된다. 낯설고 긴장되는 만남의 ‘완충제’ 같은 것이다.
문명이란 이런 부드러운 완충제로 가득하다.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 아니더라도 서로 아는 사람, 심지어는 가족 사이에서도 인사는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이미 아는 사람과의 만남도 긴장의 국면이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은가? 학교에 가서 선생님을 만날 때, 회사에 가서 상사나 직장 동료를 만날 때 반가운 경우도 있지만, 늘 편안한 것은 아니며 때로는 긴장되기도 한다. 이때 서로 인사말을 주고받는 것은 그러한 긴장을 풀어주는 수단이 된다. 그러니까 고개를 숙이는 행위나 인사말을 건네는 것 역시 일종의 긴장되는 만남의 완충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문명화가 이루어지기 전, 낯선 사람과의 만남은 서로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경계심으로 가득한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문명화란 그런 위험한 상황을 다양한 예절로 안전하고 부드러운 것으로 바꿔놓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특히 계급이 높아질수록 그러한 완충제, 즉 예절은 복잡하고 정교해진다.
이러한 일이 인공의 사물에서도 똑같이 이루어진다. 인공의 사물이란 필연적으로 낯선 것들이 만날 수밖에 없다. 면과 면이 만나는 것, 서로 다른 재료들이 만나는 것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의자는 다리가 좌석과 만난다. 좌석은 등받이와 만난다. 또한 의자 다리는 지면과 만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재료, 서로 다른 성질의 것들이 만나는 지점은 일종의 충돌 지점이다. 이런 지점에 충돌 방지용 완충제를 만드는 것은 디자인의 아주 중요한 구실 중 하나다.
로코코 시대에 프랑스에서는 의자와 테이블의 다리가 S자로 휘어지는 카브리올 레그(cabriole leg)가 유행했다.<사진 1> 카브리올 레그는 마치 네 발 달린 짐승의 다리와 비슷하다. 짐승의 발을 보면 발바닥에 부드러운 패드가 있다. 고양이의 경우 ‘핑크 젤리’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이 짐승의 패드는 다리가 지면에 닿을 때 받는 충격을 완화시킨다. 의자나 테이블의 카브리올 레그에도 패드가 있다. 이것을 ‘패드 풋(pad foot)’이라고 부른다. 늘 지면에 붙어 있는 가구가 무슨 충격을 받겠는가? 하지만 가구와 지면은 서로 이질적인 것이므로 그 사이에 충돌 방지용 완충제로서 패드가 그 구실을 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로코코 시대에 영국에서는 치펜데일 양식이 유행했다. 치펜데일 의자 역시 당당하게 카브리올 레그를 달고 있다. 치펜데일 다리의 패드는 훨씬 묵직하다.<사진 2> 짐승의 날카로운 발톱이 공을 쥔 모양이다. 이것을 ‘클로 앤드 볼 풋(claw-and-ball foot)’이라고 한다. 클로 앤드 볼 풋에서는 공이 완충제 역할을 한다.
유럽의 가구 양식에서 가장 큰 변화는 다리에서 일어난다. 로코코 양식의 카브리올 레그는 신고전주의 시대에 들어와 인기를 잃고 만다. 신고전주의 양식에서는 플루티드 레그(fluted leg)가 그것을 대체한다.<사진 3> 신고전주의 양식은 고대 그리스 시대 신전 건축의 원형을 되찾으려는 운동이다. 이에 따라 가구의 다리가 신전의 기둥, 즉 칼럼(column)을 모방한다. 칼럼은 수직적이므로 휘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한 칼럼이 세로로 홈을 파는 플루팅(fluting) 기법을 쓰는 것처럼 가구의 다리도 세로로 홈이 파져 있다. 플루팅이 기둥을 더욱 수직적이고 세련되게 만드는 것처럼, 가구에 적용된 플루팅은 다리를 더욱 길고 날씬하고 세련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가구의 다리와 건물의 기둥은 다른 점이 있다. 가구의 다리는 건물의 기둥보다 지지해야 하는 하중이 훨씬 가볍다. 게다가 가구 다리는 가늘수록 세련돼 보이므로 비례 측면에서 가구의 다리는 훨씬 가늘다. 또한 밑으로 갈수록 굵기가 더 가늘어진다. 인간의 다리는 허벅지는 굵지만 종아리는 그보다 얇고 발목이 가장 가늘다. 신고전주의 가구의 다리도 맨 밑이 가장 가늘다. 이렇게 밑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다리를 ‘테이퍼링(tapering) 레그’라고 한다.<사진 4> 그리고 마지막 단계, 즉 지면과 만나는 지점에는 로코코의 패드 풋처럼 완충제의 역할을 하는 풋이 존재해야 한다. 테이퍼링 레그의 풋은 가장 가늘어져서 마치 화살촉 모양이다.<사진 5> 이것을 ‘애로우 풋(arrow foot)’이라고 한다.
이렇게 유럽인들이 다리를 여러 부위로 나누고 이질적인 것과 만나는 지점에 완충제의 요소를 반드시 추가하려는 태도는 고대 그리스 신전 건축에서 유래한 것이다. 신전의 칼럼도 세 부위로 나뉜다. 맨 위는 캐피털(capital)이고, 중심은 샤프트(shaft), 맨 밑은 베이스(base)다. 실질적인 기둥은 샤프트다.<사진 6> 캐피털은 기둥과, 그것이 받치고 있는 엔타블라처(entablature) 사이의 완충제다. 그렇다면 베이스는 기둥과 기단이 만나는 지점의 완충제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기둥은 보와 만날 때 캐피털을 통해, 기단과 만날 때는 베이스를 통해 인사를 하는 셈이다. 기단 역시도 완충제다. 기단은 신전의 기둥이 땅과 직접 만나는 것을 막아 충돌을 완화해 준다. 다음 연재에서는 인테리어에 적용된 완충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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