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을 잘 가고 있나? 2024.12

2024. 12. 31. 09:40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m I on the right path?

 

 

 

 

오늘도 아침에 사무실에 출근해서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켜놓고 습관적으로 계획해야 할 대지 위에 옐로우페이퍼를 펼쳐놓고 스케치를 해본다. 계획은 잘 풀리지 않고 머리는 복잡하다. 이번 달은 또 어떻게 월급을 맞춰야 할까. 어떻게 해야 직원들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 설계비는 어떻게 해야 잘 받을 수 있을까. 건축심의를 앞둔 프로젝트는 어떻게 해야 심의를 통과할 수 있을까. 안 좋은 경기는 언제부터 풀리게 될까. 이런저런 생각에 집중은 되지 않고 다시 집중하기 위해 차를 한잔 마시며 생각해 본다. 나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건축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나의 길을 잘 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느덧 건축설계를 시작한 지 3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그림에 소질이 있어 공업고등학교의 디자인과에 지원했지만 떨어지고 2지망의 건축과에 합격을 해서 시작한 건축설계가 적성에 맞아 지금까지 건축설계를 하고 있다. 2011년부터는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나만의 건축을 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해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처음에는 후배의 사무실 한편에 책상 두 개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빌려 미약하게 시작했지만, 계단을 한단 한단 올라가듯 조금씩 회사를 키워 왔는데, 요즘은 정말 만만치 않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과거 IMF 때에도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때는 직원이었고, 결혼을 하기 전이었기에 월급이 조금 밀려도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 회사의 대표로서 직원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고 한 달 한 달을 버텨내고 있다. 50명 가까이 되는 직원들과 함께 지금까지 온 것도 기적이라고 말 할 수 있지만, 속히 경기가 회복이 되어서 좀 더 여유롭게 내가 원하는 건축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30년 동안 수없이 많은 건축물을 계획하고 설계를 해왔는데, 그중 대부분은 주택이다. 건축은 사람들의 삶을 담는 그릇이라고 했는데, 주택은 삶을 담는 그릇 중에도 가장 아름다운 그릇이라고 할 수 있다. 집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공간이다. 가족들과 행복을 만들어가는 공간이고, 부부간에, 또 부모와 자녀 간에 사랑을 만들어 가는 공간이기도 하며, 아이들이 꿈을 키워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지친 몸을 편하게 쉬기도 하고, 슬픔도 기쁨도 함께하는 공간이다. 이처럼 집은 어떤 사람이 사느냐에 따라 수많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래서 단독주택과 공동주택은 설계를 할 때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단독주택은 가족 구성원과 그들이 원하는 특징들을 잘 듣고 공간을 만들어 가는 맞춤형 설계이지만, 공동주택은 거주자가 불특정 다수이기 때문에 시행사, 시공사, 분양대행사 등의 의견을 통해 좋은 상품을 만들어 분양을 잘할 수 있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주택에는 단독주택, 다가구주택, 다세대주택, 연립주택, 아파트, 주상복합 등이 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운이 좋게도 다양한 주택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었다. 2011년에 사무소를 시작하며 처음에는 주로 단독주택, 상가주택, 다세대주택 등을 설계하면서 사무소를 운영해 왔다. 개업 후 처음 계약한 건도 용인 흥덕지구에 있는 3층짜리 상가 주택이었다. 건축주는 수지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사장님이었다. 1층은 근린상가로 하고, 2층은 주택을 세를 줄 수 있게 하고, 3층은 주인집으로 사용하는 프로젝트였다. 대지 주변에 레벨차가 있어서 레벨 활용을 위해 고민했던 기억과 3층 집의 계획을 수차례 했던 기억들이 있다. 그 이후에도 용인 청덕동, 수원 광교, 수지 등에서 주택 설계를 계속할 수 있었다. 처음 개업한 사무실이 송파에 있어서 주로 송파에서 다세대주택 설계를 주로 하는 사무실이 되었다. 

다세대주택은 토지를 매입해서 분양을 하는 설계 건도 있었지만, 대부분 낡은 구옥을 다세대주택으로 신축해서 아래층은 세를 주고 최상층은 주인이 살기 위한 용도의 주택이 많았다. 이 경우 대부분은 집 주인이 토지만 있고, 돈이 없다 보니 시공사에게 의지해서 신축을 하고, 시공사는 아래층에 누군가 세를 들면 공사 금액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시공되는 게 일반적이다. 이렇다 보니 건축주가 아니라 시공사가 갑이 되어 버리는 경우도 많고, 시공의 품질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 이러한 건축물의 설계를 수차례 반복하다 보니, 이건 내가 원하는 건축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 차츰 다세대주택 일을 줄이고 아파트 설계를 위해 뛰어다녔다. 때마침 「빈집 및 소규모주택정비에 관한 특례법」이 만들어지고, 대규모 재개발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가로주택정비사업과 소규모재건축사업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처음 논현동에 기존 30세대의 연립주택을 가로주택정비사업으로 추진하는 사업장에 설명회를 통해 설계업체로 선정돼 큰 규모는 아니지만 수주를 하게 되었다. 재건축이다 보니 좀 더 좋은 평면계획과 조금 높은 층을 만들기 위해 수차례 심의를 받았던 기억도 있다. 현재는 한참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때부터 조합 사업에 뛰어들어 그 이후에도 주로 서울과 경기도의 여러 현장에 설계자로 선정되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아파트 설계를 하다 보니 직원도 충원하고, 매년 공채로 신입사원도 2~3명씩 늘려 나갔다. 그러다 보니 좀더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기회들이 찾아와 시행사와도 일을 하게 되어 속초주상복합, 울산주상복합, 포항, 경산, 경주 등에 아파트단지 설계 등을 하게 됐다. 준공되어 입주한 현장도 있고, 현재 공사가 한참 진행 중인 현장들도 있다. 포항의 아파트는 1,400세대가 넘는 단지인데 교통영향평가를 받고 사업승인을 접수하고 1년 안에 분양까지 하는 일정으로 경관심의, 도시계획심의, 건축심의 등의 절차를 거쳐 착공신고에 분양까지 정말 정신없이 명절 연휴까지도 일을 했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지금 한참 공사 중인 포항의 아파트는 완공되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되는 현장 중에 한 곳이다. 또 속초의 주상복합은 속초 시청 앞에 있는 현장으로 바닷가 바로 앞에 지어졌다. 심의 과정에서 층수 때문에 여러 이슈가 있었지만, 36층으로 고층의 주상복합이다. 최상층에 펜트하우스가 있는데, 준공 후에 가족들과 함께 펜트하우스에서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이때 아들들에게 아빠가 설계한 건물을 소개하고 함께 최상층에서 속초 앞바다의 야경을 본 적이 있다. 나에게는 아버지로서, 건축사로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나라의 건설 시장은 다세대주택이나 조합아파트나 시행사업의 아파트 모두 대부분 시공사 위주로 사업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 속에서 건축사의 위상을 높이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모두가 편한 것을 찾고 돈을 따라가다 보니, 모든 분야에서 진정한 전문가가 사라지고 있다. 현장도 기술자가 없다 보니 시공력도 많이 떨어지고 있다. 이럴 때 우리 건축사들은 각자의 기술력을 키우고 기술력을 후배들에게 잘 전수해야 한다. 그래야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건축사의 위상이 높아지는 날이 올 것이다.

전국에 직접 계획하고 설계한 건축물들이 많은데, 어떤 건물은 바라보면 뿌듯한 건물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건물들도 있다. 그러나 모든 건물이 내 자식인 것을 어쩌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앞으로 나에게 주어질 일을 기대하며 더 나은 건축을 위해 고민하고 생각하며 나만의 건축의 길을 가야겠다. 

 

 

 

 

 

글·사진. 정태영 Jeong, Taeyeong (주)디자인그룹이루건축사사무소

 

 

정태영 건축사·(주)디자인그룹이루건축사사무소

 

(주)AI종합건축사사무소, (주)나우동인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으며, 현재 (주)디자인그룹이루건축사사무소 대표로 활동 중이다. 재개발, 재건축의 공동주택과 민간 시행사의 공동주택, 주상복합 업무 등을 주로 수행하고 있으며, ‘다세대·다가구주택지 과밀개선을 위한 연계형가로주택정비사업 제도화 방안’에 대해 서울연구원 외부연구진으로 참여한 바 있다. ‘도심형드론 이착륙 및 주차시스템’에 대한 특허로 미래 주택에 대한 연구도 이어가고 있다.

eruarch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