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유니폼의 다양성 2020.7

2023. 1. 17. 09:03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Diversity of Baseball Uniforms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 스포츠가 중단되었다가 한국 프로야구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경기를 시작했고, 최근에는 유럽의 축구 리그가 시작되었다. 라이브 스포츠가 사라지자 비로소 사람들은 그것의 소중함을 느낀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사냥꾼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데, 현대인에게 사냥꾼의 본능을 일깨워주는 것이 바로 스포츠다. 전 세계인들이 그토록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도 그들이 모두 사냥꾼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냥은 혼자 사냥하는 호랑이나 곰 같은 맹수와 달리 집단의 조직적인 팀워크라는 점에서 더욱 스포츠와 닮아 있다. 팀워크를 중시하기 때문에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 바로 유니폼이다. 

 

끈으로 셔츠를 묶었던 시절의 유니폼. 19세기에는 셔츠에 칼라가 있었다.


여러 종목의 유니폼 중에서도 야구 유니폼은 참으로 독특하고 복잡하다. 일반 스포츠가 티셔츠와 반바지, 스타킹으로 단순하게 구성된 것에 반해 야구는 단추가 달린 셔츠, 그 안에 입는 언더셔츠, 벨트가 달린 긴 바지, 스타킹, 모자로 구성돼 복잡한 편이다. 다른 스포츠가 땀에 젖는 것을 배려해 반팔 소매와 반바지를 입는 것과 달리 야구는 긴 소매가 있는 언더셔츠와 긴 바지를 입는 것은 참으로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아마도 모든 스포츠 가운데 매우 가장 정적인 경기라는 점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축구와 농구, 테니스는 선수들이 끊임없이 뛰어다닌다. 반면에 야구는 대부분 서 있다. 게다가 공격수들은 벤치에 앉아 있다. 그러니 날씨가 쌀쌀한 봄과 가을을 생각하면 긴 소매의 언더셔츠와 긴 바지가 요청될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야구의 유니폼은 더위보다 추위에 대비한 것처럼 보인다. 

 

칼라 없이 단추가 달린 셔츠가 1910년대에 나타나 1920년대에 정착했다.


이렇게 복잡한 구성을 하다 보니 야구 유니폼은 변화의 가능성이 그 어떤 종목의 유니폼보다 크다. 셔츠(정확한 표현은 ‘저지jersey’)를 예로 들어보자. 야구의 셔츠는 초창기에는 방패 형태가 나타나기도 하고, 단추를 대신해 끈으로 옷을 여미기도 하다가 20세기부터는 단추로 여미는 셔츠가 일반화되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는 단추가 없이 입는 풀오버pullover 상의가 유행을 했다가 1990년대부터는 다시 셔츠 타입이 정착했다. 풀오버 타입 셔츠를 입었을 때는 바지도 벨트 대신 밴드가 대신하기도 했다. 19세기에는 칼라가 있었고, 때때로 칼라에 보타이를 하기도 했으나 1920년대에는 칼라 없는 셔츠가 정착되었다. 셔츠의 소매도 19세기와 20세기 전반기에는 상당히 길었다. 점점 짧아지다가 1960년대에는 소매 없는 셔츠가 등장했다. 소매 없는 셔츠는 한 여름에 입는 대안적인 유니폼이기도 했다. 

 

단추가 없는 풀오버 타입의 셔츠가 1970년대에 대유행을 했다. 이때 바지에서 벨트가 사라지고 밴드가 도입되었다.
소매 없는 셔츠가 1950년대에 등장했다. 테드 클루주스키는 언더셔츠의 소매마저 잘라내 우람한 팔뚝을 자랑했다.



스타킹의 길이와 무늬 역시 시대마다 조금씩 변화가 있다. 단일한 색의 스타킹이 있고, 줄무늬 스타킹이 있다. 또 흰색 스타킹 위에 다른 색의 고리스타킹(stirrup stocking)을 덧입는 것이 20세기 전반기에 나타나기 시작해 20세기 중반에 일반화되었다가 최근에 사라졌다. 1980년대까지 스타킹은 눈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가 1990년대부터 바지를 길게 입기 시작해 완전히 사라지기도 했다. 최근에는 두 가지 스타일이 공존한다. 

상의와 바지의 통은 19세기부터 20세기 전반기까지는 헐렁하다가 나일론과 면을 합성한 옷이 나온 1970년대부터 몸에 착 달라 붙어 타이트해졌다. 그러다가 힙합 패션의 유행에 따라 1990년대부터는 다시 헐렁해졌다. 

이렇게 야구의 유니폼은 다른 종목의 유니폼과 비교했을 때 복잡한 편이어서 그만큼 다양한 변수를 낳을 수 있다. 그것이 곧 시대마다 큰 유행을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야구팬들은 이제 유니폼만 봐도 그것이 어느 시대의 것인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턴백더클라 이벤트의 휴스턴 애스트로스 유니폼. 화려한 컬러의 1970년대 스타일을 보여준다.

반면에 메이저리그의 야구팀들은 패션에 관한 한 보수적인 편이다. 한번 정해진 자기 팀의 아이덴티티를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 줄무늬를 특징으로 하는 뉴욕 양키스나 시카고 컵스는 거의 100년이 넘도록 유니폼의 변화가 없다. LA 다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같은 역사가 오래된 팀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시대마다 옷이 헐렁해지고 타이트해진다든지 스타킹과 고리스타킹이 변하는 것은 유행을 따르지만, 기본적인 아이덴티티는 매우 견고하게 유지된다. 한국의 롯데 자이언츠는 불과 40년 동안 수십 번의 변화가 있고, 한 시즌에도 여러 타입의 유니폼을 번갈아 입는 것과 비교하면 이 부분이 좀 지루할 수 있다. 이에 따른 대안이 있다. 바로 ‘과거 유니폼(throwback uniform)’을 입는 이벤트다. 

 

뛰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발달한 스타킹은 야구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고, 일종의 액세서리처럼 유행에 따라 큰 변화가 일어났다. 20세기 전반기에는 줄무늬 스타킹이 유행했다.
턴백더클라(Turn Back the Clock)’ 이벤트 경기에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가 20세기 전반기에 활약한 흑인 리그의 홈스테드 그레이스 유니폼을 입었다.



메이저리그 중계를 보면 특정한 날, 모든 팀이 엉뚱한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이날은 각 팀이 때 과거에 입었던 유니폼을 입고 나온다. 어떤 팀은 19세기 유니폼을 입기도 하고, 어떤 팀은 풀오버 상의를 입었던 1970년대를 재현하기도 한다. 특히 1970년대는 팝 문화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색상을 차분하게 입는 메이저리그에도 생생한 컬러 유니폼의 시대가 찾아왔다.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무지개 컬러를 유니폼에 도입하기도 했고,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는 노랑색과 검정색을 혼합해 마치 벌을 연상시키는 유니폼을 입기도 했다. 아무튼 스로우백 유니폼 입는 이벤트(이 이벤트를 ‘Turn Back the Clock’이라는 부른다)는 경기 이외에 유니폼 디자인을 통해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특별한 날이다. 한국의 프로야구도 이것을 도입했는데, 가장 재미있는 건 삼성이라는 레터링을 한자로 박은 1980년대 유니폼이다. 다양한 유니폼 디자인은 가장 정적인 스포츠인 야구가 주는 특별한 매력이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