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30. 11:40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_ House of River Thoughts
Between Survival and Existence

낭만과 순수
집을 짓는 과정은 여러모로 낭만에 기댈 가능성이 크다. 물 맑고 경치 좋은 곳의 단독주택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그림 같은 창, 장작 소리 깊어가는 가을, 도란도란 군밤 익는 벽난로, 별 헤는 여름밤, 우리만의 마당...... 자연을 닮고 싶은 소망은 ‘나무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어진다. 한편, 박진택 건축사에게 나무는, 군더더기 없이 내외부를 관통하는, 그리고 “겉과 속이 같은” 재료였다. 그래서 나무라야 했다. 골조, 내장, 외장 마감까지, 몸 전체를 하나의 물성으로 완성하려는 순수성을 그는 꿈꿨다. 집주인이 일상의 낭만을 품고, 설계자가 건축적 순수를 꿈꾸는 사이, 이들의 교집합에서 집이 여럿 탄생했다.
손수 지은 첫 주택인 <국수리 주택>에서 박진택 건축사는 중목구조를 택했고, 삼나무 패널을 외장재로, 편백 합판을 내장재로 취했다. 뼈대와 피부와 속살까지, 나무로 육화 된 집. 집안은 울창한 숲 속을 거닐 듯, 외부는 출정 준비를 마친 배가 돛을 한껏 펼친 듯, 숲과 바다를 모두 국수리로 불러들이고 있었다. 이어지는 작업에서도 다른 이유가 없는 한, 되도록 모두 나무여야 했다. 더불어 나무를 대하는 그의 미감과 심성은 점점 섬세해졌다. <게으른 송골매>에서는 미세하게 다른 여러 나무의 질감으로 공간의 온기에 깊이를 더하고, <곧은 마음 집>에서는 긴 처마를 내밀어 목구조 텍토닉의 멋을 거침없이 발산했다.
뉴노멀 강사유
우연히 강사유 앞을 지나게 된다면, 그리고 눈썰미가 빼어나다면, 외벽의 세라믹 사이딩이 머금은 고아한 순백의 깊이감을 눈여겨볼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겠다는 듯 다분히 의도된 묵묵한 외관 앞에서 괜스레 관심을 보이는 것은, 어쩐지 규정을 위반하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백색 마스크를 둘러쓴 무표정한 집.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될 수 있다.
박 건축사가 강사유 설계를 시작한 때는 2022년 초였다. 팬데믹의 봉인이 해제된 직후, 세상과 마주한 그의 작업은 이전과 같은 듯 달라져 있었다. 중목(重木)구조와 직교체계라는 동일한 재료와 구법을 고수했는데도 다른 질서가 엿보였다. 조형미를 배제한 수수한 외관, 그 위에 덧씌운 위장막 같은 세라믹 사이딩. 봉쇄의 감각을 체화한 듯 내외부 질감과 제스처는 이 막을 경계로 단절되어 있었고, 창의 위치와 각도는 외부의 관심과 시선이 들이칠 수 없도록 단단히 조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질서는, 왠지 몰라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팬데믹 이후 도래한 뉴노멀(비정상의 정상화)처럼.
이때껏 박 건축사에게 창은, 공간을 운동하게 만드는 기계 장치였다. 적재적소의 풍경창, 고측창 그리고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직사광, 간접광, 확산광은 벽과 바닥, 그리고 모서리를 만나 시시각각 영역의 경계를 흐리고 뒤섞는다. 그러다 보면 공간은 정지해 있되 공간 속 시선은 미로 속처럼 방에서 방으로, 붙잡을 수 없이 빠져나간다. 운동의 효과를 키우기 위해 그는 물리적 영역의 경계인 구석(의 그림자)을 아예 제거하는 시도를 곳곳에서 보여주었다. 각 방을 구획하는 벽의 일부를 개방하고, 카를로 스카르파가 설계한 카노바 박물관의 코너창처럼 외벽 모서리에 ㄱ자 코너창을 삽입했다. 이 작법은 <국수리 주택>, <게으른 송골매>, <곧은 마음 집>으로 이어졌다. 박진텍 건축사의 전매특허라 할 만한 “빛을 타고 운동하는 내부 공간”은, 사방의 창을 통해 결과적으로, 외부로도 자연스레 이어지는 듯했다. 이와 함께, <곧은 마음 집>의 1층처럼 전망 좋은 곳에는 탁 트인 여러 벌의 풍경창을 설치해 내부를 외부로 치환했다. 외부의 잠재적 시선은? 필요하다면 커튼이나 블라인드로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골조-마감의 순수성만큼이나, 내부-외부 공간은 서로 비추고 모방하며, 내외 없이 하나 되기를 갈망하는 듯했다.
강사유에도 풍경창과 고측창 그리고 천창이 있다. 그런데 그것들은 절제되고 축소되었으며 코너를 따라 확장하지 않는다. 이곳의 천창은 빛보다 먼저 어둠을 포착한다. 중목의 육중한 크로스 보(cross beam)가 바닥에 십자가를 떨구면, 우리의 시선도 속도를 늦추며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강사유(江思留). 강을 사유하며 여기 머문다. 강을 보되 애써 강으로 내닫지 않는다. 그러니 거실 전면의 강 풍경 또한 집 밖에 원경으로 머문다. 방과 방 사이의 시선도 애써 운동하지 않는다. 거실 바닥의 십자가 위에, 계단의 발 디딤판 위에, 몸 누인 침대의 수평면 위에, 고요한 책상면 위에, 조각난 하늘에 고정된다. 정지하고 머물며 안으로 또 안으로 파고들려 한다. 박 건축사는 강사유를 계획하며 방 속의 방을 상상했다고 한다. 마트료시카처럼, 현관에서 계단으로, 거실로, 다시 계단으로, 아이방으로, 침실로..... 그 끝엔 몸을 담글 욕조가 전부인 욕실 그리고 작은 책상이 전부인 ‘고요한 방(quiet room)’이 있다.
생존과 실존 사이에 붙잡힌 불안한 영혼의 안식처를 상상했을까? 그랬다면 성공했을까?
답이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자기 꼬리를 무는 동물처럼 언택트와 컨택트의 힘이 물고 물릴 따름이다. 외부와 동떨어진 채 평면의 중심에 깊이 박힌 침실은? 역설적이게도 아래층 거실의 소음과 기척을 늘 의식한다. 눈감아 불러도 언제든 달려와 주길 바라며 거실과 같은 공기로 호흡한다. 가장 깊고 내밀한 욕실은? 배를 닮은 욕조가 거대한 창, 아니 문을 마주한다. 그곳을 통해 우연히 마주칠 잠재적 시선을 의식하며, 물을 따라 세계로 떠나고픈 마음이 다시 열린다.
가족은 강사유에서 일상을 꾸릴 것이다. 각자 따로 하늘을 보다가도 함께 모여 바비큐를 구울 것이고, 고요히 강을 보다가도 금세 또 배가 고파올 것이다. 아이는 자라고 시간이 흐르고 다른 뉴노멀이 올 것이다. 어쩌면 순수의 시대가 다시 올지 모른다. 어찌 됐건, 나무 온기 충만한 빛의 처소를 박진택 건축사는 지켜냈다. 그때나 지금이나 늘.
글. 나인혜 Na In Hye 공이림 건축사사무소

나인혜 건축사·공이림 건축사사무소
나인혜는 공이림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사이자 독립연구자로 건축 실무와 연구를 병행한다.
계간지 <건축평단>의 편집위원, 대진대학교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며, 건축사의 사회적 역할을 반추하고, 건축을 통한 문화적 개입을 실천하고자 노력 중이다.
nanaanna4404@gmail.com
'아티클 | Article > 칼럼 | 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프로젝트 복기(復棋) : 제대로 된 고민의 시작 2026.6 (0) | 2026.06.30 |
|---|---|
| [책 속의 건축] 재료에 대한 깊이있는 접근 :감 2026.6 (0) | 2026.06.30 |
| [건축비평] 호운, 아이처럼 유희하는 건축사 2026.5 (0) | 2026.05.31 |
| 공간의 최적화를 넘어, 인간의 숨결을 설계하다 인간공학의 철학으로 바라본 AI 시대의 건축 2026.5 (0) | 2026.05.31 |
| [책 속의 건축] 건축평단 2026.5 (0) | 2026.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