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보여주지 않아 더 강렬해지는 존재, ‘강사유(江思留)’에서 만나다_박진택 건축사 2026.6

2026. 6. 30. 11:35아티클 | Article/인터뷰 | Interview

‘House of River Thoughts’, 
which becomes more intense because it is intensely private

 

 

 

“메덩골정원이라는 현장에서 느끼고 배우고 싶었습니다. 덕분에 건축철학을 밝힐 수 있는 정도의 건축사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깨닫게 됐습니다." 최근 그의 일상이 주목하는 현장에서 제2의 도약을 준비하는 박진택 건축사(빛의건축 건축사사무소)의 솔직함이 묻어있는 인사이다.그는 사유하고 머무르는 목구조 건축인 ‘강사유’를 통해 그의 작품세계를 보여주게 됐다. “늘 확신이 없었는데, 다시 이끌어주고 새로운 꿈을 꾸게 해 준 계기가 됐다”며 스스로에게도 의미가 있었던 프로젝트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아늑한 쉼을 통해 재충천하고, 이를 동력으로 일상으로 나아가는 ‘강사유’의 이모저모를 듣기 위해 5월 어느 날 박진택 건축사를 만났다.

 

 

월간 <건축사> 6월호 표지를 장식한 ‘강사유(江思寓)’의 설계자 박진택 건축사(빛의건축 건축사사무소)

 

# 설계와 시공 그리고 글쓰기,
‘경험이 곧 자산 된다’는 원칙으로 일상의 범주 넓히기


박정연_ 인터뷰를 위해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박진택_ 빛의건축 건축사사무소의 박진택 건축사입니다. 영국과 한국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AA스쿨에서 건축의 실험적 가능성을 탐구했습니다.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대학교에서 출강하며 건축 이론을 다듬었고, 설계 작업과 함께 건축 관련 글쓰기, 다큐멘터리 작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건축을 이야기해오고 있습니다. 2년 동안 집을 혼자 짓기도 했었는데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시공 업무에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연장선상에서 현재는 메덩골정원에서 PM업무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고요. 아울러 앙상블스튜디오와 페소 본 에릭사우센의 작업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많이 배우고 동시에 고민에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박정연_ ‘빛의건축’이란 작명을 보며,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작명 과정에서 어떤 점을 주목한 것인가요?


박진택_ 당초 계획은 제 이름을 사용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다 ‘파타고니아’라는 책을 읽고 브랜드 가치나 철학이 반영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건축사사무소 이름을 바꾸게 됐습니다. 영국에서 공부할 때 ‘영화적 건축’에 대해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요. 영화라는 매체가 빛을 쏘고 움직임을 담고 있는 특징을 갖고 있고, 빛이라는 것은 존재하고 살아가는 시작점이 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볼 때 ‘빛’을 활용해 보자는 취지에서 ‘빛의 건축’이라고 작명하게 되었습니다.

 

# 건축주와의 협업을 통한 ‘모두의 만족’,
그에 앞서 현장에 대한 이해가 결과물의 성패 좌우


박정연_ ‘강사유’라는 이름, ‘강사유’를 작업하게 된 계기를 포함, 작품에 대한 설명을 부탁합니다


박진택_ ‘강사유(江思留)’는 강을 보며 사유하고 머무른다는 뜻입니다. 머무를 ‘유(留)’, 그 한 글자가 이 집의 본질을 담고 있다고 하겠는데요. 어떻게 쉬고 재충전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강사유라는 이름으로 담고자 했습니다.

최초 건축주는 ‘건축탐구 집’의 방송을 보고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하시고, 목수를 경험하셨던 분인데, 요구 조건은 단 하나였습니다. 강을 보게 해 달라는 것이었죠. 목수가 목구조 집에 살면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중목구조로 만들어낼 수 있는 건축적인 장치와 요소를 담으려 했습니다.

그렇게 진행하면서 건축주의 역량이 발휘되기도 합니다. 설계자인 제가 뼈대를 그렸다면 살을 붙이거나 톤을 마무리하는 역할을 건축주가 해준 것이죠.

집은 단순한 거처가 아니라 은신처이자 휴식, 나아가 성장의 장소입니다. 그런 면에서 건축주가 강사유에 머무르며 재충전하고 다시 나아가는 힘을 얻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박정연_ 과정을 들어보니 한옥이나 목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대목장 또는 목수와의 협업도 중요하겠는데요.


박진택_ 물론 그렇습니다만 그에 앞서 설계자의 이해가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양평군에 있는 자택이 2층짜리 목조주택입니다. 그 집을 설계하고, 시공을 해봤더니 그제야 보이는 것들이 많더라고요. 설계자가 목구조나 한옥 시공과정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저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재 선택에서부터, 중목구조인지 경량목구조인지에 따른 차이 등 세세한 부분들이 온전히 설계에 반영되기 위해서는 설계자의 경험과 이해가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한편, 설계자와 시공자의 뇌는 작동방식이 다르다는 사실도 이해했습니다. 시공현장은 경제성에 주목하고 있으니까요.

 

<국수리 주택> © 빛의건축 건축사사무소
<국수리 주택> © 빛의건축 건축사사무소

 

# 재료와 구조는 언제나
상황과 조건에 따른 것, ‘특정 재료를 고집하지 않아’


박정연_ 한옥건축에 대한 다큐멘터리, 목조를 설계하고 거주하고 있으며, 강사유 역시 목구조인데요. 특별히 목조를 주목한 동기가 있을까요?

 

박진택_ 한옥 다큐멘터리를 찍고자 했던 것은 한국건축의 원류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누군가에게 집을 지어달라고 의뢰하기보다는 온전히 내가 설계한 대로 집을 짓고 싶어 직접 목수 역할을 하며 집을 짓게 됐고, 그것이 계속 목구조로 작업하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다만, 나무라는 재료는 돌이나 모래, 시멘트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건축재료일 뿐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구조로도 작업해보고 싶습니다. 건축이라는 직종은 본인이 하고 싶다고 해서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니까요. 재료와 구조는 언제나 그 집이 놓인 상황과 조건 속에서 선택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정연_ 작업과정에서 ‘운동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강사유가 표현한 운동성은 무엇인가요?

박진택_ 운동성은 앞서 밝힌 바 있는 ‘영화적 건축’에서 기인합니다. 영화적 건축은 AA스쿨에서 학습한 내용입니다. 영화는 본질적으로 키네틱(kinetic), 즉 움직임과 관련이 있습니다. 건축이 정지된 오브제가 아니라 시간과 움직임 속에서 경험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출발점이 됩니다. 이후 피라네시의 상상 감옥, 콜린 로(Colin Rowe)의 투명성(Transparency) 개념으로 이어지며 고정되어 있지만 확장하고 운동하는 공간에 대한 탐구가 깊어졌습니다.

운동성은 스스로 아직 진행 중인 탐구영역이기도 합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운동성의 끝에는 반드시 정적인 부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익스트림 스포츠 선수가 극한의 속도와 긴장 속에서 오히려 완전한 고요와 집중을 경험하듯이, 심리학에서 말하는 ‘몰입(Flow)’, 다른 모든 것이 사라지는 상태가 그것입니다. 격렬한 운동성의 끝에 도달하는 깊은 평화, 그것이 제가 건축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입니다.
강사유는 사실 운동성의 탐구에서 조금 벗어나고자 했던 집입니다. 그런데 작업을 마치고 돌아보니, 결국 다른 종류의 운동성을 탐구하게 된 것 같습니다. 강을 바라보며 머무르는 집, 그 고요함 속에서도 무언가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박정연_ 그와 같은 탐구정신이 오늘의 건축 철학으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박진택_ AA스쿨이 디자인보다 가치를 중요시합니다. 자세를 가르친다고 할까요. 어떤 결과물에 집착하기보다 그 프로세스에 집중하면서 학습이 이뤄진다고 하면 되겠습니다. 그렇게 배우고 한국에 왔는데 실무를 하려고 보니 적응이 쉽지 않았습니다. 현실이 배워 오던 것과 달랐고, 기존 체계와 타협하고 받아들이는 것 역시 쉽지 않았던 것이죠. 시간이 흘러 돌아보니 너무 뒤처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앞서 말씀드렸던 PM 등 다양한 업무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깨우고, 치열한 경쟁도 이겨낼 수 있는 과정에 있는 셈입니다.

 

<대심리 주택(곧은마음집)> © 빛의건축 건축사사무소
<대심리 주택(곧은마음집)> © 빛의건축 건축사사무소

 

# 때로는 의도적으로 차단된 공간이
더 큰 만족 제공할 수 있어


박정연_ 이번 작업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박진택_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건축주께서 ‘강이 보이는 집을 설계해 달라’는 것이 유일한 요구사항이었기 때문에, 설계 초기에는 튜브 모양으로 내부 공간 전체가 강을 향해 열려 있는 구조를 계획했습니다. 극장처럼 큰 스크린이 있고, 튜브의 안면은 유리로 된 형태이죠. 거주공간인 2, 3층을 그렇게 큰 유리로 디자인하고 보니 진부하다는 생각도 들고,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3층에서 강으로의 시선을 막기로 결정한 순간이 있는데요. 그 대목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처음에는 건축주가 이를 수용할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결단을 내린 것은 건축주가 일과 후 느끼는 정적인 시간을 위함입니다. 시선을 막는 대신 천장에서 빛이 쏟아지는 느낌을 주고자 했습니다. 그래야 침실이 마치 우주에 떠 있는 듯 아늑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익스트림 스포츠 선수가 극한의 운동 속에서 오히려 고요를 경험하듯, 광활함 속에서 오히려 깊은 아늑함이 생겨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강을 보여주는 집에서 강을 의도적으로 차단하는 결정이었으니, 건축주의 눈치를 살피게 됐는데, 건축주께서는 예상외로 흔쾌히 승낙해 주었습니다. 그 순간 저 스스로도 믿기 어려울 만큼 기뻤고, 그 결정 덕분에 정말 멋진 ‘강사유’가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박정연_ 계획 당시와 비교해 완공 후 건축사님이 꼽는 가장 매력적인 공간은 어디인가요?


박진택_ 쉽게 답할 수 있겠네요. 앞서 말한 침실입니다. 이 집에서 강이 전혀 보이지 않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죠. 침실에서 강을 절제했기 때문에 오히려 거실에서, 혹은 욕실에서 마주치는 강의 풍경이 더 강렬해집니다.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더 강하게 존재하는 것인 셈입니다. 특히 완공 후 그 역설이 이 집의 가장 큰 매력이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창성동주택(게으른송골매)> © 빛의건축 건축사사무소

 

# “달리는 것만이 능사 아냐”,
때로 머물고 ‘쉼’이라는 과정 통해 완성에 가까워질 수 있어

 

박정연_ 건축사님의 향후 목표는 무엇인가요?


박진택_ 솔직히 말씀드리면, 나이가 지천명을 넘으면서 건축사로서 도약할 수 있는 디딤판을 놓쳤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그래서 거창한 목표를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시장에서는 극소수의 건축사만 살아남게 되고, 제가 봐도 반할 만큼의 역량이 있는 건축사들과의 경쟁을 통해 제가 원하는 작품세계를 구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기회가 생긴다면 철근콘크리트 구로 집을 직접 지어보고 싶습니다. 목구조는 한옥이라는 훌륭한 선례가 있어 참고할 수 있지만, 철근콘크리트는 양생 되기 전에는 물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어렵고 두렵습니다. 그래서 더 해보고 싶습니다. 그것이 지금 제가 품고 있는 가장 솔직한 목표입니다.


박정연_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박진택_ 집은 완성되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완공된 날이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좋은 건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집니다. 강사유도 그런 집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도 어디에 계시든, 잠시 멈추고 머무르는 시간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 머묾 속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이 보이고 흐르기 시작할 테니까요. 

 



 

대담 박정연 편집국장
글 박관희 기자

사진 홍민기 기자

 

박진택 건축사 Park Jean Taek
빛의건축 건축사사무소
<서울특별시건축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