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공간은 어디서부터…? 파리 올림픽을 보며 2024.9

2024. 9. 30. 09:35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Where does a good space come from…? Watching the Paris Olympics

 

다양한 시점

 

 

이 글을 작성하는 지금 파리에서는 올림픽이 한창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최소 규모의 선수단이 최다 금메달이라는 목표치를 훨씬 넘어서는 성과를 만들어 냈다. 4년간의 피나는 노력과 훈련의 결과로 메달을 거머쥔 선수들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였고, 비록 메달을 들지 못한 선수라 할지라도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모습에서 경외심이 들었다.
건축사지에 이 무슨 뜬금없는 이야기일까? 올림픽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걸까 싶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 파리올림픽은 나에게 다시금 좋은 공간은 무엇일까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졌기에 이를 공유해 보고자 한다.



시간이 담긴 공간의 힘
평소에 스포츠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1년이란 길지 않은 시간을 교환학생 신분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지냈던 나에게 이번 파리올림픽은 너무나 즐거운 이벤트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운영이었지만, 파리이기에 가능한 새로운 시도들이 넘쳐났고 그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파리올림픽을 더욱 특별하게 느꼈던 이유는 역사와 상징성을 가지는 도시의 여러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경기장들이었다. 그간 올림픽이든 월드컵이든 항상 새로운 스포츠 대회를 앞두게 되면 우리 건축인들에게 또 하나의 관심사는 새로 지어지는 경기장의 건축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이번 파리 올림픽은 달랐다. 파리라는 도시를 완전히 이해하고 활용했다. 따스한 햇살, 산뜻한 바람. 흐르는 빗방울, 도시의 소음들과 사람들의 함성들. 모든 것이 파리이기에 아름다웠다. 주 경기장이 아닌 센강 주변-도시의 상징이 되는 여러 공간에서 치러진 개막식.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금메달을 안겨준 양궁 경기를 치렀던 앵발리드. 펜싱과 태권도 경기장으로 활용된 그랑팔레. 이 밖에도 베르사유궁, 에펠탑 마르스 광장, 콩코르드 광장 등 무구한 역사 속에서 그 자리를 오랜 시간 지켜온 도시 랜드마크 공간을 활용하여 경기장으로 사용했고, 이렇다 할 새로운 디자인이 아닌 그저 기존의 공간에 관람석을 조금 만들었을 뿐인데 너무나도 멋진 경기장이 되었다.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도시에 녹아들었고, 도시 전체가 올림픽 축제의 장이 되었다. 기대 이상으로 매력적이었다. 물리적 시간이 만들어낸 도시의 충만함은 감정적 영역까지 울리게 하는 힘이 있었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공간과 배경이 되는 건축
이번 파리 올림픽을 보며, 한편으로 정말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도시의 컨텍스트를 활용해 이 정도의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과, 어떤 용도로 사용되든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배경이 된다는 점에서다. 100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 없는 도시에서 다양한 세대가 같은 도시에서의 기억을 공유하며 현재를 즐길 수 있다는 것. 서울에서는 가능할까? 이 정도의 매력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도시의 역사와 건축물의 상징성을 따라갈 수는 없을 것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난다고 파리와 같은 도시가 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느낀 중요한 시사점은 사람이 공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올림픽과 같은 위대한 이벤트가 아니더라도 조금씩 사람들이 소통하고 행동하는 공간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 혼자의 힘으로, 하루아침에 좋은 공간이 넘쳐나는 도시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원대한 비전을 제시하며 세상을 바꿀 위인이 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현재 우리를 찾아주는 클라이언트와 함께 한발 나아가기 위해 최선의 설계를 할 뿐이고, 이런 노력이 누적되면 언젠가 우리도 이상적인 도시에 가까워 있을 것이다.

파리의 도시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듯, 우리 도시도 시간이 필요하다. 도시를 만들어가는 하나의 건축사로서 노력하고, 보다 다양한 시선에서 도시의 좋은 공간을 탐구해야겠다. 부러움은 뒤로 하고,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대사로 마무리한다.

 

“If you stay here, it becomes your present then pretty soon you will start imaging another time was really your golden time.
That's what the present is.
It's a little unsatisfying because life is so a little unsatisfying.”


“당신이 여기 살면 여기가 현실이 되는 겁니다.
그럼 당신은 또 다른 세계를 동경하게 돼요. 진짜 황금기를요.
현실은 그런 거죠. 인생은 좀 불만족스럽고 그런 거니까요.”


나의 건축도 그렇다. 과거의 시대, 선배 건축사들의 건축. 동경의 대상이 너무 많다. 가끔 부딪히는 한계에 힘들고 불만족스러울 때도 있지만,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올림픽 선수들처럼 다시 정신 차리고 현실에 최선을 다해보겠다.

 

 

 

 

글·그림. 윤종호 Yoon, Jongho (주)인에이 건축사사무소

 

 

윤종호 건축사 · (주)인에이 건축사사무소

 

인에이는 ‘사람(人)’과 ‘건축(Architecture)’의 관계를 탐구하고, 각자의 가치를 인정하며, 끊임없는 대화를 이어가는 이야기꾼들로 이루어진 건축사사무소이다. 윤종호 건축사는 4명의 대표 중 노란색을 담당하고 있다. 평범함과 지루함, 무료하고 반복된 삶이 싫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을 벌이고 다닌다. 견고한 나슨함에 가치를 두고, 다음에 도착할 곳이 어딘지 알 수 없더라도 눈과 귀를 있는 힘껏 열고 일상 속에서 새로운 의문을 통해 새로운 디자인을 찾으려는 트레이싱지 위의 나그네이고 싶다.

youn180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