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14. 16:51ㆍ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Creating architecture, environment, and the future ⑤ Why is architecture in cities considered public?
많은 클라이언트와 이야기하다 보면 건축법의 각종 규제가 불편하다. 내 돈으로 내가 산 땅에 내 맘대로 건물을 짓지도 못하다니. 뭐가 이리 복잡한가?
일견 동의하면서도, 오랜 시간 건축을 도시에 만들어내면서 서로 적절히 배려하는 것이 건축의 필수적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매너와도 같은 것이다. 지하철에서 나 편하자고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있거나,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은 주변 사람 모두에게 피해가 된다. 도시에서 건축은 이런 상황에 있는 셈이다. 인접한 건물을 살펴야 하고, 길 건너의 모습도 신경 써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건축은 기본적으로 공동체 속에서 적절한 양보와 배려를 배워야 하고, 다양한 관계 속에 형성되어야 한다. 물론 그 안에서 특출나게 두드러지는 것도 있을 수 있다. 이른바 랜드마크적 이미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일찍이 케빈 린치라는 도시계획학자는 일찍이 이를 도시의 필요 요소로 언급하기도 했다. 요즘엔 비즈니스나 정치적으로 과소비되는 듯한 이 단어는 흥미로운 여러 가지 상징이자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역사적 건물이 되었든, 주변과 달리 독특하게 주목받는 생김새의 건물이 되었든 하나의 시그널처럼 자리한 건축을 랜드마크라 한다. 파리의 에펠탑이 대표적이다. 이런 랜드마크는 드라마의 주연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주연 혼자로는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고 조연과 엑스트라들과 함께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처럼 도시의 건축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랜드마크는 전체와 있을 때 돋보인다. 전체와 조화를 이루든, 하이라이트가 되었든 전체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개별적 건축과 전체, 즉 도시 속의 하나로 관계가 형성된다. 이런 전체 도시에서 건축들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전체 이미지, 우리는 이를 경관이라고 한다. 위키피디아를 인용하면 경관은 일정 지역 고유의 외관을 말하며, 숲·가옥·농지·도로·하천·수로 등 개개의 요소로 분리된 것이 아니고 결합되어 일체성이 있는 외관으로 풍경과 비슷한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다. 법으로는 경관법 제2조에서 “‘경관’이란 자연, 인공 요소 및 주민의 생활상등으로 이루어진 일단의 지역 환경적 특징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고 정의한다. 결국 도시에서 건축은 ‘어울림’이라는 우리 전통 표현처럼 여러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사진 1>
결국 도시에서 건축은 기본적으로 공공적 시각의 대상인 것이다. 도시에서의 건축은 이런 시각적 측면뿐 아니라 여러 가지 물리적 환경을 만들어내면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격자형의 가로체계에 초고층 건물이 즐비한 대도시에 빌딩으로 인해 가속화된 바람이 불어 유리창이 깨지고 사람이 날아가는 현상이 있다. 이 ‘빌딩풍(Building wind)’은 가속이 붙어 초속 20~30미터에 가까운 바람이 불기도 한다. 또한 건축의 외장재인 유리로 인해 주차된 차가 녹거나, 눈부심으로 교통사고를 유발하기도 한다. 건축이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셈이다. 굳이 이런 설명을 하지 않아도 건축이 도시에서 위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두 인지하고 있다. 아무리 사유재산이고 사적 결과물이라 할지라도, 불특정 다수에게 영향을 주고, 피할 수 없는 대상인 건축은 도시에서 커지면 커질수록 공공적 시각에서 바라봐야 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그런 건축을 디자인할 때는 주변과 함께 고려해야 한다. 바로 건축이 도시에 위치하는 순간부터 공공성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다.<사진 2>
건축이 점령하는 도시에서의 딜레마
건축은 대지 위에 존재한다. 그런 대지가 도시에 있을 때, 건축 자체에 대한 고민은 주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크든 작든 건축은 도시에서 영역을 가진다. 문제는 건축이 들어서는 영역이 커질수록 공간 독점에 대한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하며, 심지어 경관의 독점까지 언급될 수 있다. 이는 도시 환경, 커뮤니티와 도시의 전반적인 거주 가능성에 미칠 수 있는 잠재적인 부정적인 영향에서 비롯된다. 특정 건축 프로젝트나 개발이 더 넓은 맥락이나 커뮤니티의 요구를 고려하지 않고 도시 경관을 독점할 때 여러 가지 우려가 나타나는 것이다.
과다한 도시공간의 소수 독점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이러한 도시에서의 과독점 공간 문제는 장기적으로 도시의 순환 기능을 마비시키고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이런 문제는 대체로 사회·정치적으로 독재화된 국가에서 나타나지만, 부분적으로 불평등한 경제적 독점으로 발생되기도 한다. 도시의 대규모 공간 사유화로 인한 ‘공간 독점’의 개념은 하나의 지배적인 민간 주체 또는 소수의 강력한 기업이 도시 내에서 공간 관련 자원, 인프라나 서비스의 상당 부분을 독점하는 것이다. 이는 전체 도시의 순환 기능 마비, 차단 등에서 더 나아가 공공장소에 대한 접근 제한, 도시 디자인의 다양성 감소, 경제적 불평등 증가와 같은 다양한 문제로 이어져 사회·경제적인 분리까지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사유화로 인한 과독점 주체는 도시 지역의 개발과 관리를 지배할 때 지역 사회의 필요와 선호도보다 이익을 우선시할 수 있다. 이로 인해 특성이 결여되고, 거주하는 도시의 고유한 정체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마치 쿠키 커터(Cookie-cutter, 쿠키 틀)로 과자를 찍어낸 것처럼 독창성이 부족하고 개성 없는 도시 공간이 생길 수 있다. 더욱이 공공장소의 사유화는 비용을 지불할 여유가 없거나 과독점 조직이 정한 특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필수 서비스나 편의 시설에 대한 접근을 제한할 수 있다. 이는 사회적, 경제적 격차를 악화시켜 도시 내에서 자원과 기회의 불평등한 분배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처럼 도시 내 공간의 과독점을 제도적으로 불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대도시에는 우리나라 대단지 아파트처럼 울타리 쳐진 대규모 게이티드 커뮤니티 건축이 불가능하다. 게이티드 커뮤니티를 제도적으로 승인하지 않는 도시들은 많다. 이는 도시 기능을 현저히 저하시키고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나라 도시에서도 그런 우려가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쿠키 커터처럼 유니폼화 되어 있는 아파트 단지로 인한 경관 획일화다. 최근 가격으로 차별화를 이루려는 마케팅 목적으로 다소 다른 모양을 하고 있지만, ‘다양성 부족’이라는 근본적 문제는 해소되지 않는다. 크고 균질한 구조의 공간을 독점하면 건축적 다양성이 부족해진다. 다양한 건물 크기, 여러 스타일과 기능이 혼합된 도시는 보다 활기차고 흥미로운 환경을 만든다. 그런데 우리나라 신도시 풍경은 얼마나 지루한가?
그러나 현실적으로 오늘날 수많은 나라의 도시 건축은 국가나 공공의 영역보다는 민간 자본에 의한 집행이 크다. 민간 자본은 철저한 경제적 사이클에서 가능하며, 기본적으로 개발 이익의 관점이 있다. 이미 대부분 토지는 사유지이기에 거대 자본이 개별 사유지를 사들여 대규모 개발을 하게 되면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와 시장경제 구조를 선택한 이상, 이런 과독점 공간에 대한 현명하면서도 창의적인 대안과 해법이 필요하다.<사진 3>
도시 재개발·재건축의 대단지화는 비인간적 도시 공간을 만든다
특히 도시의 과독점 공간 문제는 신도시보다는 기존 도시의 건축물이 재구축될 때 더 커진다. 대규모 재개발·재건축은 진행상 경제적 효율성이 우선 고려되며, 투자의 범위와 효과가 중요하다. 자연스럽게 기존의 경관 독점이나 유니폼 건축은 경제성에서 의사결정의 첫 시작으로 계획된다. 자연스럽게 유니폼 건축의 반복적인 생산성 극대화로 경관의 획일화가 만들어진다.
또한 기존 도시가 재개발·재건축될 때 축적된 인문·사회학적 가치가 훼손된다. 역사적이든 사회적 관계든 맥락이 끊어지면 정체성 훼손까지 이어진다. 특히 오래된 건물이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의 철거와 관련된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는 기존 커뮤니티의 붕괴로도 이어진다. 이로 인해 문화유산과 지역 사회 유대가 상실된다. 을지로 일대의 재개발이나 종로의 재개발이 그렇다. 우리 모두가 열광하는 아파트 재건축으로 인한 변화는 경제적 계급이 바뀌면서 기존의 지역민 자체가 교체되어 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피맛골처럼 상가 이름으로만 남는 것이다.
상업지구에서 주로 일어나지만, 주거지역에서도 나타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고급 개발에 초점을 맞춘 건축 프로젝트는 부유한 주민들을 끌어들여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키고 저소득 커뮤니티를 몰아낸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알려진 이 과정은 사회 경제적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는데, 심지어 산업생태계 몰락까지도 야기할 수 있다. 서울의 자연발생적 도심제조산업 생태계로 성장해온 을지로부터 황학동 일대에 이르는 수조원 가치의 도심산업 생태계는 단순한 재개발이라는 방식으로 파괴될 것이 분명하다. 새로운 방식의 창조적 칵테일 아이디어가 절실한 대상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우려들이 존재한다.
- 기반 시설에 대한 영향 : 대규모 구조물로 공간을 독점하면 운송, 유틸리티 및 서비스와 같은 기존 기반 시설에 부담을 줄 수 있다. 기존 인프라에 대한 수요 증가는 혼잡과 효율성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 공용 공간 축소 :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가 공용 공간보다 개인 공간을 우선시하는 경우 거주자를 위한 개방이나 레크리에이션 공간에 대한 접근이 제한될 수 있다. 공공장소의 부족은 지역 사회 복지와 사회적 상호 작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환경 영향 : 대형 구조물은 종종 건설 또는 운영에 상당한 자원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여 탄소 배출량과 생태 발자국(Ecological Footprint, 자연자본에 대한 인간의 수요, 즉 사람과 그들의 경제를 지원하는 데 필요한 자연의 양을 측정하기 위해 글로벌 생태발자국 네트워크[Global Footprint Network]에서 추진하는 방법)을 증가시킨다.
- 장소 감각의 상실 : 건축이 기존의 도시 조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도시 고유의 특성과 정체성이 잠식당할 수 있다. 사려 깊은 디자인을 통해 도시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는 것은 강한 장소성을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 미적 고려 사항 : 거대한 구조물로 공간을 독점하면 시각적 혼란과 도시 경관의 부조화로 이어질 수 있다. 기능적 건축과 심미적 건축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사진 4>
이러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 개발계획 시 지역 사회의 요구와 열망을 고려하는 지속 가능하고 포괄적인 디자인을 우선시해야 한다. 이 접근 방식은 공간의 균형 잡힌 분배를 촉진하고, 복합용도 개발을 장려하며, 역사적 중요성을 보존하고, 사회적 결속을 촉진한다. 또 건축이 도시에 미치는 환경적 영향을 최소화한다. 건축사와 시 공무원, 주민 간의 협업은 모두를 위한, 풍요로운 도시 경험 공간을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치가와 행정가들이 이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창의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민해야 한다.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과 모델은 이미 충분하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는 맨해튼의 남부 재개발 지역인 배터리 파크 시티가 대표적이다. 맨해튼의 부촌 중 하나인 거주지역으로, 우리나라식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며 인접한 월가 금융맨 등 고소득자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집값이 비싼 거야 말할 것도 없다. 흥미로운 점은 배터리 파크 지역을 누구나 지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어느 나라건 고소득자들은 안전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쓴다. 월가 맞은편의 이 지역은 오래된 항구산업 지역이었고, 맨해튼의 초고층 마천루의 지하 굴토로 나온 흙 등으로 매립된 지역이다. 이 지역 역시 동일 유형의 대단지 시설로도 고려되었지만, 이들은 매우 다양하고 개방된 여러 건물로 구성된 도시의 부분으로 건축을 유도했다. 디자인 코드를 만들고 건축사들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섞인 개별 주거 건축들이 들어섰다. 맨해튼의 일부로 ‘열린 블록’인 배터리 파크 시티는 약 30여 개의 독립된 주거동으로 시저 펠리를 비롯한 당대의 건축사들이 설계했다.<사진 5>
일본의 3대 부동산 개발회사인 모리부동산이 시행한 도쿄 록본기 힐즈 역시 도시 공간의 독점과 경관 등의 문제를 극복한 사례다. 개발 주체인 모리부동산은 블록 전체를 불특정 다수에게 개방하는 ‘도로와 보행로’ 체계로 구성했다. 단지 안의 건물들은 제각기 다른 건축사들의 설계로 다양한 형태와 디자인으로 구성되어 도쿄라는 도시의 일부분으로 느껴진다. 거대한 울타리를 경계로 분리된 ‘누군가의’ 공간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영역으로 구성돼 있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열린 공간으로, 도시의 일환으로 구성된 배터리 파크 시티나 록본기 힐즈가 오히려 더 많은 유동인구를 만들어내고 사람들의 접근으로 알려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부동산에서 말하는 유동성을 스스로 만들어내 스스로 입지를 구축한 셈이다. 이익을 중시하는 민간 개발임에도, 공공적 도시와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역설적이게도 ‘지속 가능한 수익 공간’을 만든 것이다.<사진6, 7>
왜 우리는 이런 사례들을 활용해 적용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
글. 홍성용 Hong, Sungyong 건축사사무소 NCS lab
홍성용 건축사·건축사사무소 NCS lab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영화속 건축이야기(1999)』, 건축사가 쓴 최초의 경영서적 『스페이스마케팅(2007)』, 『하트마크(2016)』 등의 저서가 있다. 1998년 부터 다수의 건축 및 인테리어 설계작업 활동 중이다.
ncslab@ncsarchite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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