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17. 20:14ㆍ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Sensibility of kitsche
가족여행으로 강릉에 갔다. 경포 해변을 걷다가 재미있는 벤치를 발견했다. <사진 1> 함께 간 가족 한 명이 거기에 앉더니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그 벤치에 앉아서 사진을 찍고 싶은 모양이다. 벤치 위의 하트 장식은 그곳을 포토존으로 만들려는 의도를 분명히 보여준다. 저곳에 앉아 사진을 찍으면, 분명 바다의 수평선과 모래사장, 파란 하늘이 멋진 배경을 만들어줄 것이다. 벤치는 마치 관광지의 호객꾼처럼 그런 사진을 찍어보라고 아주 노골적으로 호소하고 있다. 벤치를 기획한 주최 측은 아마도 ‘포토존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어떤 디자인이 사람들로 하여금 기꺼이 촬영하도록 만들까? 평범한 벤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호소할 수 있는 디자인이 필요하다. 거부감이 없어야 하고, 누구나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모양이어야 할 것이다. 대체로 동물이나 식물 같은 자연의 대상은 누구나 좋아하지만, 디자인하기도 힘들고 제작비도 많이 들 것이다.
그리하여 상징적 기호이고 비교적 단순한 하트 모양으로 결정하지 않았을까? 21세기 한국인들만큼 하트를 좋아하는 국민이 또 있을까? 연예인이나 고객센터 직원들은 모르는 사람에게도 ‘사랑한다’고 쉽게 말하는 세상이니 그것의 시각적 상징인 하트도 남발한다. 한국만큼 하트 모양 만들기가 인기 있는 곳이 있을까. 손가락 두 개로도 만들고, 양손으로도 만들고, 두 팔로도 만든다. 심지어는 손가락으로 만드는 하트는 한국이 원조라고 한다. 마침내 사진의 전형적인 포즈인 브이를 밀어낼 기세다. 그렇게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하트로 후광과도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기능적인 벤치를 촬영용 무대장치로 업그레이드했다. 하트 모양에 맞추려고 좌석까지 볼록한 곡선이 되었다. 이런 좌석은 전혀 기능적이지 않다. 어차피 이 벤치의 기능은 앉아 쉬는 것이 아니라 촬영을 위한 무대이니 그 정도는 희생해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대중의 보편적인 취향을 저격할 수 있느냐다. 이렇게 오직 대중의 취향에만 영합하려는 태도, 하지만 결과물은 미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조잡한 것이 바로 키치다.
아브라함 몰르의 『키치란 무엇인가?』에 따르면, 키치(kitsch)는 19세기 중반 독일 남부에서 발생한 단어다. 키치는 ‘긁어모으다, 아무렇게 주워모으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그 의미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윤리적으로 부정함’, ‘진품이 아님’을 뜻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른바 ‘이발소 그림’은 키치의 개념과 가장 비슷한 우리 식 표현일 것이다. 이발소 그림은 한 마디로 모조품이다. 그것이 간절하게 닮고 싶어 하는 것은 17세기 화가 클로드 로랭의 풍경화 같은 그림이다.<사진 2> 로랭의 그림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은 울창한 나무, 고전 양식의 건축물, 그리스와 로마 같은 고대 도시의 폐허, 강과 폭포, 연못 위의 백조, 저 멀리 보이는 섬이나 산의 봉우리, 햇빛을 받아 드라마틱해진 구름, 그리고 신화에 나올 법한 인물들 또는 목가적인 가축과 목동, 농부 같은 시골 사람들이다. 로랭이 그린 풍경은 이 세상에 절대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이다. 하지만 자연과 인물에 대한 치밀한 연구를 바탕으로 그런 풍경이 실제로 있을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사람들은 흔히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그림처럼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림은 실제 자연을 모방하지만, 화가가 자기 마음대로 보기 싫은 것은 제거하고 더 아름답게 더 극적으로 꾸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런 곳에서 한번 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로랭의 영향을 받은 18세기 영국의 픽처레스크 양식은 그의 그림에 나올 법한 건축과 조경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발소 그림은 자연에 대한 연구나 성찰 없이, 게다가 솜씨도 없이 바로 로랭풍의 그림을 모방한다.<사진 3> 여기서 로랭풍이라는 것은 이상향의 자연이다. 한국의 이발소 그림이 로랭풍의 그림(로랭풍의 키치는 서양에도 많다)과 다른 것은 한국적 요소를 추가했다는 사실이다. 정자, 초가집, 물레방아, 섶다리, 소나무, 나룻배 같은 것들이다. 여기에 한국의 산수화나 민화 양식을 슬쩍 섞어놓는다. 자연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어서 그림 속 정자나 다리, 폭포 같은 요소들의 등장이 뜬금없고 부자연스럽다. 각 요소들 사이의 비례와 원근법도 엉망이다. 로랭은 자연을 모방하지만 이발소 그림들은 자연을 모방한 그림을 모방한다. 이렇듯 이발소 그림, 즉 키치의 태도는 모방의 모방이다. 따라서 대상에 대한 본질에 다가갈 수 없다. 지방의 어느 조각공원에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를 흉내 낸 조각이 있다.<사진 4> 이 조각 역시 실제 인체를 보고 그것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이미 인체를 모방한 대가의 조각을 모방한 것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모방의 모방인 인체는 진실성이 사라지고 가짜 몸이 만들어져 우스꽝스럽기 이를 데 없다.
이제 이발소는 구경하기 힘들어졌지만, 이발소 그림과 같은 태도, 즉 키치의 감성은 여전히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공중 화장실 벽에서 키치 그림을 어렵지 않게 마주친다.<사진 5> 그림보다 더 압도적으로 우리 삶의 풍경을 구성하고 있는 키치는 건축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특히 웨딩홀, 모텔, 백화점, 교회, 연립주택 등이 종종 유럽 고전양식 또는 고딕양식으로 어설프게 꾸며진다.<사진 6> 이런 키치 현상은 시각 예술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시와 소설 같은 문학에서도 키치는 넘쳐난다. 요즘 천편일률적인 자기소개서도 키치의 감성으로 가득하다. 어디서 본 듯한 문장과 형식을 모방함으로써 진실성이 사라지고 진부해진 글이라면, 키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맨션, 캐슬, 팰리스, 하이츠 같은 이름으로 아파트 브랜드 이름을 짓지만, 그 어디에도 진짜 맨션, 진짜 캐슬, 진짜 팰리스, 진짜 하이츠가 없는 것과 똑같다.
사실 그림을 그리든 글을 쓰든 자기가 본 것, 직접 경험한 것을 솜씨가 부족해도 솔직하게 묘사한다면 결코 키치로 빠질 일이 없다. 흔히 키치를 아마추어 감성이라고도 말한다. 키치는 훈련과 솜씨 부족의 산물이 아니다. 태도의 문제다. 키치의 태도는 대상을 묘사하는 테크닉에만 관심을 가질 뿐 대상 자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림과 글짓기의 본질은 창작 과정에서 묘사하는 대상을 새롭게 발견하고 대상의 본성을 깨닫는 데 있다. 그 대상이 인체든, 나무든, 꽃이든, 그림을 그림으로써 그전에는 몰랐거나 대충 알았던 그 대상의 본질에 다가가는 즐거움이 있다. 반면에 키치는 쉽고 빠르게, 그럴듯하게 대상을 묘사했다는 성취감만을 주려고 한다. “참 쉽죠”로 유명한 미국 화가 밥 로스의 그림이 대표적이다.
창조적인 측면에서 우리는 키치를 멀리할 수 있다. 그냥 다른 이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그저 내 방식대로 표현하면 된다. 하지만 소비의 측면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키치를 피하기 힘들다. 현대사회의 키치 현상은 주로 이 소비로부터 창궐하는 것이다. 근대 이전에는 많은 물건을 소유할 수 없으므로 쓰고 버리고 낭비한다는 의미를 지니는 소비라는 개념은 존재할 수 없었다. 물건이 저렴해진 현대 소비사회에서 사람들은 물건의 소비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신분과 가치를 증명받고 싶어 한다. 그 신분은 때로는 허세인 경우도 많다. 실제로 돈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명품을 입고 비싼 차를 구입해서 돌아다니면 부자가 된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 명품을 구입하는 것이 분수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저렴한 ‘짝퉁’, 즉 키치로 집안을 장식하면 된다. 이때 집안의 키치 물건은 그 소유자에게 심리적 편안함과 안정감, 행복감을 준다. 그런 물건에 둘러싸여 스스로가 이 사회에서 존재할 만한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소비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끊임없이 소비를 이끌어내야 생존할 수 있다. 아주 극소수의 기업을 뺀 대부분의 제조업체들은 혁신 같은 것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어떻게 소비자들에게 편안함과 안정감, 행복감을 줄지 고민하며 제품을 디자인한다. 혁신보다 대중에게 편안함을 선사하는 것이 더 쉽고 안정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리하여 디즈니풍으로 웨딩홀을 짓고, 로코코풍으로 침대 헤드를 디자인하고, 고전 양식으로 아파트 입구를 세우는 것이다.<사진 7> 요즘 같은 휴가철, 지방으로 놀러 가다 보면 더욱 키치로 가득한 세상을 만날 수 있다. 동양화풍 그림을 표면에 장식한 전세버스, 한옥 지붕의 일부만 입구에 부착한 식당, 고전적 칼럼으로 벽을 장식한 호텔, 그리고 지역 특산품을 형상화한 조형물까지….<사진 8> 이동하고 먹고 잠자고 사진 찍는 그 모든 곳에서 키치를 만난다. 키치는 결코 수준 높은 창조물은 아니지만, 익숙함과 편안함을 제공하고 저렴한 욕망과 동경을 충족시켜주기에 소비사회가 지속되는 한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그러니 수준 낮다고 경멸하기보다는 즐기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하트 벤치에 앉아 촌스러운 사진을 찍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시대를 느낄 수 있는 증언이 되겠지.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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