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지상의 모든 물을 다 받아준다’ 2018.05

2022. 12. 1. 11:06아티클 | Article/에세이 | Essay

'The sea receives all the water on earth'

 

바다는 끼니만큼 가까이 있었다. 눈을 뜨면 언제든 시야 가득 들어오는 바다를 볼 수 있었고, 눈을 감아도 마음을 다 차지해 버린 그 사람처럼 바다는 쉽사리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친밀하게 내밀하게 이 거대한 물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한 사람의 일생 내내 그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바다는 그에게 숙명이자 운명이며 그는 바다의 후예인 것이다. 그는 얼마나 오랜 세월 무작정 바다에 다가가기를 염원했으며 적극적으로 상기하였던가. 바다는 마당의 개만큼 곁에 있었고 잠자리에 누우면 그 바다는 곧잘 파도소리를 실어다 동침하게 해줬다. 십 분만 걸어가면 방파제나 백사장에 닿을 수 있었고, 지치지 않는 파도의 리듬과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의 현실인 파도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자주 바닷가로 갔으며 사심과 욕심 없이 그곳을 배회했다. 그 시절엔 그게 그의 일상이었고 그게 그의 일 중의 일이었다. 바다는 그의 동무, 그의 절친, 생성과 상상력의 베이스캠프, 서정과 격정의 야전 사령부였다. 타지에서 생활하시던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그는 대체로 그리워하지 않았으며, 그는 혈육보다 바다와 사귀는데 더 열심이었으며, 바다와 사랑했으며, 바다는 봐도 봐도 싫증나지 않는 텔레비전이었다.

 

소문은 끼니만큼 가까이 있었다. 어느 날 그 바다에서 건져 올린 무장공비의 시체에는 문어가 들러붙어 있어서 사람들이 한동안 문어를 먹지 않았다. 어느 날 고기잡이 나갔던 배가 난파했을 때, 그가 다니던 초등학교 교실에는 학년을 달리해 여러 학생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생일은 달랐어도 기일이 한날인 날이 벌어진 것이다. 맘에 두고 있던 여학생의 이름을 백사장 위에 쓰자마자 파도가 달려 나와 순식간에 지워버리던 바다. 어느 날의 바다는 두께를 알 수 없는 구름을 덮어쓰고 묵중하게 다가왔고, 어느 날의 겨울바다는 더 이상 파랄 수 없을 만치 시퍼렇게 파래서 이 세상에 저것보다 더 파랄 수 있는 공간은 없다며 그의 눈이 감동했고, 그 눈의 감동을 받아서 그의 심장이 감격했다. 잘 손질되어 있는 물결과 평등의 대해원, 해일을 장착하고 있는 잔잔한 수면과 무한을 선사하는 수평선, 파도에 밀리는 파도와 파도를 밀고 가는 파도가 시작과 끝을 반복하는 그 바다에서 그는 지친 삶을 늘 다시 시작하고 싶어 했으며 최초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했다. 지상의 물은 가지 말라고 해도 바다로 갔으며 오지 말라고 해도 하염없이 파도가 되어 해변을 향해 나아갔다. 비바람이 세찼던 여름 폭풍우의 밤이 지나고 서광이 하늘바다를 열고 아침의 거센 파도 위를 비추기라도 할 때면, 창세기란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왜 이 세상의 바닷가는 거의 언제나 창세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걸까. 그리고 왜 우리는 여전히 해 뜨는 새해의 바닷가를 찾아가는 것에 그리도 열광하는 걸까. 우리는, 우리의 의식은 우리가 태양계에 살고 있다고 인식할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감각은, 우리의 육체는 여전히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지구계에 속해 있다. 해가 뜨고 진다고 말하지 지구가 한 바퀴 돌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여전히 인간은 태양계가 아닌 지구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문학의 시초에는 동해가 있었고, 있고, 있을 것이다. 그는 대체로 사람보다 자연과 더 친밀했다. 바다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자주 말을 걸어왔다고 그는 느꼈고, 그 역시 바다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었다고 생각했다. 그가 바다를 떠나 있을 때조차 바다가 그의 생활 속으로 흐르고 있다고 상상했다. 바다는 그에게 이 삶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다른 언어로 늘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일깨웠다. 나만의 바다가 어디 있고, 나만의 하늘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는 그 바다를나의 바다라 이름 붙였으며, 바다는 어딜 가나 한 바다이거늘여기는 바다가 많은 곳이라 노래 불렀다. 바다 위에는 언제나 바다보다 넓은, 바다보다 깊은 또 하나의 하늘바다가 바다를 온통 덮고 있었다. 그가 무한이란 말의 육체성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건 바닷가에서 수평선을 바라볼 때였으며 수평선 위의 하늘을 올려다 볼 때였다. 그의 피는 바다와 내통했고, 그의 피부는 해풍과 긴밀했으며, 그의 눈동자는 거대한 물의 수평을 받아들여 평정심을 되찾곤 했다. 어떤 원초적인 공간은 일생을 따라다닌다. 시간 없는 공간이 인간에게 가능할까. 인간에게 공간은 살았던, 살고 있는, 앞으로 살아야 할 그리고 죽어야 할 시간이기도 해서 언제나 공간은 시공간이 함께 한다.

 

그는 그 바다에서 무한을 배웠다.

 

바다는 자신이 그렇게 시퍼런 줄 몰랐고 하늘은 자신이 그렇게 새파란 줄 몰랐다. 바다는 모든 물을 다 받아줬다. 그러고도 넘치지 않았고 지나치지 않았다. 하늘은 모든 굴곡을 다 받아줬다. 그러고도 모나지 않았고 일그러지지 않았다. 하늘은 바다를 덮고 지상을 다 덮었다. 그러고도 짓누르지 않았고 무겁지 않았다. 바다는 자신이 그렇게 깊은 줄 몰랐고 하늘은 자신이 그렇게 넓은 줄 몰랐다. 하늘바다는 깊고도 넓고도 높았다.

 

. 박용하  Park, Yongha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