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16. 17:00ㆍ아티클 | Article/에세이 | Essay
Settled on free spirit architecture
늦은 나이에 내가 건축사가 될 줄이야… 나는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사사무소에서 4년 정도 근무했다.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학원 생활을 하기도 했고,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배워 보겠다며 커피 공부를 하고 관련 직업으로 10여 년을 일했다. 그때는 그게 너무 재미있었고, 시간이 그렇게 흘러간 줄도 몰랐다. 커피를 만드는 것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여행자가 되어 가보고 싶었던 나라들을 여행하며 또 몇 년의 시간을 보냈다. 여행을 준비하며 항상 그 나라의 건축물을 먼저 살펴보며 어쩔 수 없이 난 건축인이구나 생각했다. 다시 건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무작정 지인의 건축사사무소에 취업을 부탁하고 폐가 되지 않기 위해 감리업무와 설계공모 계획 업무 등 할 수 있는 일이면 열심히 참여하며 다시 먼 길을 돌아 건축인이 되었다. 하지만 경력단절과 변해버린 건축 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아 야근을 하거나 주말에도 자주 출근하며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려고 애썼다. 몇 개의 계획안이 당선되며 신선한 콘셉트라는 칭찬도 듣곤 했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과 더불어 그동안 너무 베짱이같이 살아온 내 인생의 전환점이 필요했던 것 같다. 건축사 공부를 해야겠다. 다시 회사를 그만두고 고시원에 입성…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쉽지 않은 공부! 그즈음 다시 상주감리를 하게 되어 일을 하며 틈틈이 다시 공부! 몇 번의 낙방 끝에 건축사자격 취득을 해서 바로 건축사사무소를 오픈하게 되었다.
두 번째 인생, 건축사로 좌충우돌
뭐든지 결정하면 바로 저질러 버리는 좀 이상한(?) 나의 성격 탓에 가족도 이젠 포기한 걸까? 처음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해야겠다는 폭탄 발언에 근심 어린 표정들을 마주했지만, 크게 말리지는 않았다. 혼자 인터넷을 뒤져가며 사무실 개업 과정과 필요한 절차들을 검색하고, 집기류를 하나하나 들이면서 나의 사무실을 만들어갔다. 수주능력도 별로 없고, 업무 프로세스도 잘 모르면서 일단 저질러버린 나는 지금도 수습 중이다. 다행히 타고난 긍정 마인드,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이것도 다 선택이며 그 과정에서 발생되는 수많은 일들이 나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늦은 나이에 돌고 돌아 정착한 나를 아직 주변에서는 걱정 중이다. 내놓을 만한 포트폴리오가 아직 없기에 그런 것일 테지만, 자그마한 일에도 감사하며 열일 중이다.
건축사 동료애를 느끼다
어릴 때 자라고 살았던 동네 가까이 사무소를 차렸다. 왠지 낯선 곳보다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지 않을까 해서다. 처음엔 사무실을 내고 뭐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막막했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근처 여성 건축사를 찾아 무턱대고 전화를 걸었고, 만남을 요청했더랬다. 그럼에도 흔쾌히 만나주고, 여러 가지 이야기들과 우리 구의 입회 안내 등을 들려주며 다른 건축사들과의 만남도 주선해 주었다. 초보 건축사인 나는 겸손한 자세로 선배 건축사들의 경험과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일의 세부적인 이야기를 전부 담을 수는 없지만, 초보 건축사로서 업무에 대한 작은 질문에도 나의 일처럼 챙겨주는 동료 건축사들 때문에 난 지금 여기 이곳에 건축사사무소를 차린 것에 감사한다. 그분들의 한결같은 말은 건축사들끼리는 경쟁자가 아니라 서로 함께 가는 동료이며, 내가 받은 도움을 후배에게 돌려주는 거라고…… 모든 건축사들이 다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분명 좋은 영향을 받고 있는 중이다.
배워가며 성장하다
건축사사무소를 개업하고 한 해를 넘기고, 또 한 해를 넘겼다. 이제 나는 작은 일들을 조금씩 해나가고 있고 여전히 배우고 있다. 좀 느리지만 건축사인 나의 직업을 좋아하고, 건축 업무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늦게 시작한 만큼 애정도 더 큰 걸까? 나는 선택적 경력단절자로 살았던 인생이 있다. 그 인생조차도 경험과 이력이 될 것이라고 믿고 건축사사무소를 조금씩 단단히 키워나갈 것이다. 아직 그럴싸한 포트폴리오는 없지만 잘 통하는 건축주를 만나 소통하고 나의 디자인을 덧씌워줄 설계 작업을 신나게 하고 싶다. 계약을 했다가도 돌연 취소가 되는 일도 겪었고, 내 맘처럼 일이 시원시원하게 진행되지 않기도 한다. 건축사 업무 중 다양한 일들이 있다. 아직은 이런저런 경험과 실적을 쌓는 중으로, 조급한 마음을 갖지 않으려 한다. 이따금 건축을 떠나 있었던 시간을 후회하냐고 스스로 묻기도 하지만, 어찌 됐든 내가 선택한 길이고 삶이니까 아주 조금 후회가 들더라도 씩씩하게 흘려버린다. 더 시간이 흘렀을 때 지금의 선택 역시 후회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늦둥이 건축사는 오늘도 배우며 조금씩 성장하는 중이다. 인생이 여행이라면, 나처럼 먼 길을 돌아 조금 느리게 여행하는 여행자도 있으니까.
글. 김서현 Kim, Seohyun 서림 건축사사무소
김서현 건축사·서림 건축사사무소
성균관대학교 건설환경시스템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2021년 서림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했다. “나의 이력은 여행”이라고 말할 만큼 도시를 천천히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런던, 파리, 로마, 피렌체, 베니스,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바르셀로나, 취리히, 뮌헨,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드레스덴, 프라하, 체스키, 델리, 아고라, 바라나시, 자이푸르, 자이살메르, 교토, 오사카, 고베, 도쿄, 싱가포르, 세부, 나트랑, 대만, 홍콩, 방콕, 다낭 등 앞으로 시간과 체력, 자금이 허락하는 한 조금씩 미래의 경험과 추억을 천천히 채워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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