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30. 23:12ㆍ아티클 | Article/에세이 | Essay
Space and Memory
인간의 건축물이 없는, 가도 가도 산과 하늘과 벌판. 나무도 없이 우뚝우뚝 솟은 산들이 마치 하늘을 찢은 것 같은 대비를 이루었다. 히말라야 산맥이 펼쳐져 있었다. 라다크의 높고 건조한 기후가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햇살은 충분히 따가웠고 흙먼지와 건조한 날씨 탓에 콧속이 말랐다. 여행기간 동안 대여한 지프를 타고 산으로 난 위태한 길을 다녔다. 안내자이자 기사로 고용한 현지인 롭산의 차분한 운전 덕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지만, 듣던 대로 길 아래 낭떠러지에서 유골만 남은 사체처럼 앙상한 차량의 잔해를 발견하기도 했다.
시야에는 오로지 높이 솟은 빌딩뿐인 서울에서 산과 하늘이 무심하게 뻗어 있는 곳으로의 이동은 비현실감을 더욱 과장되게 부풀렸다. 그러나 그 스케일이라니. 건축에서 사용하는 스케일 자로 이 풍경을 그린다면 몇 분의 일로 축소를 해야 할까? 서울스카이가 흉물스럽게 서울 한가운데 우뚝 들어서는 중이었지만 완공 높이는 고작 555미터이다. 굳이 비교할 필요야 없겠지만 해발 3천 300미터에서 시작하는 이 여행길은 라다크 왕국의 수도인 레를 베이스캠프로 삼는다. 그 높이를 가늠하고도 남는 것은 희박한 산소 때문이었을 것이다. 탈고를 마친 원고와 새로 들어가야 하는 원고 사이에서 잠시 도망치듯 떠나온 여행길은 아등바등 살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공간은 그렇게 사람의 사고를 뒤집고 흔들고 섞는 힘이 있다. 즐거운 추억이나 끔찍한 사건들을 기억할 때 그 일을 경험한 장소와 공간 없이는 떠올릴 수 없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익숙한 공간으로부터 분리되거나, 어떤 낯선 공간에 들어서는 일은 항상 사고의 전환과 함께 이루어진다. 몸은 낯선 곳을 탐색하고 비교하고 감각을 곤두세워 그곳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없음’으로 점철된 여정이 마음 한가운데를 관통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왜 이곳에 와서 건조한 공기 속에 살갗이 타고 콧속이 말라 찢어지는 이 기후를 견디고 있는 것일까, 하고 보면 저 높은 산맥에 켜켜이 쌓인 만년설이 있었다. 해발 5천 603미터에 달하는 카르둥라는 계절을 거스르는 길이었다. 8월의 한가운데서 높은 고도에 이르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 길을 지나 도착한 ― 멀리 티벳과 연결된 소금호수 판공초는 바다를 뚝 떼 내 하늘로 올려버린 자연의 힘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그런 웅혼함 속에서 여행의 의미를 찾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된 지 이미 오래였다.
여정의 사이사이 라다크인들의 생활과 전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사찰들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승려의 마음이 담긴 따뜻한 차를 대접 받았고, 환한 미소로 인사를 했으며, 현지식 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다. 목조 건물의 단아함을 풍기는 오래된 사찰들은 라다크의 풍경들에 동화되어 어우러졌다.
결국 우리가 여행지에서 들르는 곳은 누군가의 경험들이 쌓인 ‘공간들’이다. 신을 품은 자연들이다. 그것은 오래된 건축물 또는 공간이 지닌 기억들 ―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콜로세움이나 파르테논 신전, 블루모스크와 앙코르 와트 사원 등을 보러 가는 것일 테지만, 반대로 어떤 광기는 민족이나 국가의 상징적인 건물을 파괴하는 것으로 집단이 가진 정체성과 기억을 모조리 무너트리기도 한다.
그런 흔적들을 통해 시대를 기억하고 반추도 해보는 것이겠지만 결국은 새로운 공간에서 마주하는 것은 사고의 전환일 것이다. 라다크에서 마주한 시원의 공간이 계속해서 떠나온 서울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듯, 낯선 공간은 누군가의 기억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글. 신혜정 Shin, Hyejeong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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