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19. 19:24ㆍ아티클 | Article/에세이 | Essay
Light
우리는 빛이 있는 곳에서만 형태를 볼 수 있다. 지금 우리 눈앞에 현란하게 펼쳐져 있는 바로 이 삼라만상도, 사실 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인식되지 않는 허상(虛像)이라고 한다. 싫든 좋든 인간은 태초부터 빛에 의지해서 세상과 사물을 인식해온 것이다. 그만큼 다른 누구보다도 형태와 공간을 창출해나가는 프로세스(process)에서 자주 번민하게 되는 우리 건축사(建築士)들에게 빛은 더 각별한 대상일 수밖에 없다.
만일 빛이 없다고 가정해 보자.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바로 여기 이 공간과 저 자리, 또 거기에 보란 듯이 떡 버티고 서있는 저 벽과 뻥 뚫린 창, 그로 인해 점차 차이를 드러내게 되는 내·외부 공간감(空間感)……. 그 어느 것 하나인들 우리가 제대로 분별해낼 수 있었을까? 때로는 심 봉사처럼 모든 걸 손으로 직접 더듬어봐야 하고, 때로는 저 바다 깊은 곳에 사는 심해어(深海魚)처럼 퇴화한 눈은 어디에 붙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본능적으로 아가리만 쩍쩍 벌리면서 이리저리 쏘다녔을지도 모른다. 거기에서 무슨 매스(mass)의 분절(分節)과 조화, 그리고 그 비례를 통한 심미(審美)의 세계가 가당키나 했을까?
그러한 측면에서 보면 ‘루이스 칸(Louis Kahn, 1901~1974)’은 참으로 탁월했다. 온 누리에 걸쳐 어느 한 곳 하나 차별 없이 무변광대(無邊廣大)하게 쏟아지고 있는 빛을 창호라는 프레임을 통해 내부로 끌어들였다가, 그 공간에 걸맞은 건축 소재로 재창출해냈으니 말이다. 그것은 자연의 빛에 따라 색채가 일으키는 미묘한 변화 속에서 순간적으로 사물의 인상(印象)을 포착해 내고 그걸 작품에 담아내던 마네(Edouard Manet), 모네(Claude Monet), 르누아르(Auguste Renoir) 등의 ‘인상파’ 화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요즘 나는 다시 ‘빛’을 건축물의 배치에 대입시켜 삼원이차(三元二次) 연립방정식을 풀고 있다. 해마다 여름 하지(夏至) 때는 기고만장하게 중천(中天)으로 높이 치솟았다가도, 이번에 다시 맞이하게 된 동지(冬至) 때는 저절로 자세를 낮춘 채 방 안 구석구석까지 속살거리듯 찾아들곤 하는 빛!
우리 한반도가 북위도 지역에 있는 탓에, 대부분의 건축사들은 남향으로 집을 배치하고 또 남쪽에 창을 내는 것을 일종의 의무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건축사로서 직분에 충실했던 지난 세월 동안, 나 역시 그 범주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건축물을 배치할 때마다 본능적으로 남향이나 남동향을 우선시하는 것은 물론, 건축법의 일부 제약조건을 해결한답시고 건축물을 다른 방향으로 호기롭게 배치했다가도, 추후 작업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숱한 고민과 망설임 끝에 결국 다시 ‘남향’으로 되돌려놓곤 했다. 그 강한 고정관념으로 현장을 둘러보니, 주변 산세와 지형이 제대로 시야에 들어올 리 만무했을 것이다.
그런데 건축에 풍수지리를 대입한답시고 나름대로 꾸준히 빛과 기류(氣流)를 찾아다니다 보니, 어느 때부턴가 빛의 실체가 희끄무레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종전에 익히 알고 있던 일반상식과는 상당히 달랐다. 이른바 북향 명당3)이란 데가 따로 있고, 되레 서향집에서 더 많은 일조(日照)와 일사(日射)를 받을 수도 있으며, 또 북동쪽으로 돌아앉게 건물을 배치해야만 기류가 더 원활해지는 경우도 적잖았기 때문이다. 건물 배치에서는 남향만이 지고지순한 가치를 지닌 게 아니라, 모두 다 주변 지형지세 속에서 자연스레 설정되는 일종의 ‘관계 맺기’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새삼스러워졌다. 돌이켜보니 아찔하기까지 했다. 그동안 나는 나의 건축에, 참으로 도타운 나의 고정관념부터 심어놓고 설계 작업을 진행했던 것 같다. 그것은 어찌 보면 나의 신념을 위한 해원(解寃)의 실험실이었을지도 모른다. 분명 내가 살 집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타인의 생활을 옥죄고 강요했을까? 루이스 칸(Louis Kahn)처럼 빛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당시 그들의 간절한 요구조건부터 서슴없이 담아내 줄 것을!
분명 오도(誤導)된 신념은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한다. 어디 건축만이 그러하랴? 기실 아무 준비 없이 갑작스레 근대문물을 맞이했던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지금 그 증상이 곧잘 목도(目睹)되곤 한다. 자연스레 흘러가는 물길이 법(法)이라고 하던 강론(講論)은 어느새 슬그머니 사라지고, 마침내 령(令)이 법(法)을 겁박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함포사격을 하며 무지막지하게 밀려드는 서구문물에 마지못해 개항(開港)을 당한 뒤, 단발령에 이리저리 쫓겨 다니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반민특위(反民特委) 마저 공중분해된 채 지난 수십 년을 친일부역자들이 버젓이 활보하도록 놔뒀던, 그래서 지금까지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오롯이 지니고 살 수밖에 없었던 과거 우리의 불편한 이력에서, 그 신념이 발아(發芽)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매년 겨울 동지(冬至) 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마치 포복을 하듯 내 방 안으로 속살거리며 파고드는 겨울 햇빛을 몇 번 맞이하며 아쉽게 배웅도 해보고, 또 여름 하지(夏至) 때는 중천에 높이 떠서 작열하듯 이글거리던 햇빛을 차광(遮光)하느라 몇 번 골머리를 앓다 보니, 이제야 내 곁에 찾아드는 ‘빛의 의미’를 어느 정도 체감할 수 있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빛은 입자(粒子)로서 직진만 하다가도 매질(媒質)이 바뀌면 그 경계면에서 순간적으로 반사되거나 굴절되기도 하고, 때로 장애물이 제 앞을 가로막는다 싶으면 손쉽게 파동(波動)으로 돌변하여 휘돌아나가는 등 입자와 파동의 속성을 동시에 지닌, 참으로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우리 건축사는 그 빛을 건축의 주요 소재로 다뤄야 하는 숙명을 걸머지고 있다. 그런데 이제 겨우 그 임무 하나를 깨닫는데 벌써 사반세기(四半世紀)를 허비하였으니, 이를 어쩌랴? 본디 천학비재(淺學菲才)한 데다가 지금까지의 그 기나긴 여정에서조차 해찰만 일삼아 온 탓인 것 같다. 오호, 통재(痛哉)라!
글. 최상철 Choi Sangcheol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최상철 건축사 ·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최상철은 전북대학교 건축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대표건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 동안의 건축설계 작업과정에서 현대건축의 병리현상에 주목하고, 산 따라 물 따라 다니며 체득한 풍수지리 등의 ‘온새미 사상’과 문화재 실측설계 현장에서 마주친 수많은 과거와의 대화를 통하여 우리의 살터를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건축’에 담겨있는 우리들의 생각과 마음을 알기 쉬운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저서로는 ‘내가 살던 집 그곳에서 만난 사랑’, ‘전주한옥마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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