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19. 19:15ㆍ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The semiotics of pornography
최근 한국 사회에서 ‘빈곤 포르노’라는 말이 화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포르노’라는 단어 자체의 자극성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포르노라는 말은 기호에 불과하다. 포르노라는 기호가 지시하는 대상은 보지 않고, 그 대상을 지시하는 기호만을 문제 삼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나는 ‘푸드 포르노’라는 단어로 온라인 공간에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의 요지는 한국의 식당들이 건물 입면에 지나치게 음식 사진을 전시하여 식욕을 자극한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랬더니 글쓴이가 오히려 ‘포르노’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해 관심을 끌려고 한다고 비난받았다. 나는 사람들을 자극하려는 의도가 없고, 그 식당 입면의 사진들이 대개 ‘푸드 포르노’의 개념에 적합하기 때문에 사용한 것이었다.
푸드 포르노(food porn)는 음식 광고, 음식 화보, 먹방 등에서 음식을 최대한 먹음직스럽게 강조하고 자극한 사진을 말한다. 식당 입면 또는 식당 앞 배너의 음식 사진은 마치 그 사진이 음식 정보를 알려주는 일을 하는 거 같다.<사진 1>
특히 외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동네는 더욱 그런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굴국밥 사진 사진이 있고 사진 아래 영어, 한자, 일어 등으로 굴국밥이라는 캡션이 있다. 횟집에 가면 맛있게 썰어놓은 생선회 사진이 있고, 사진 아래 광어회라는 캡션이 있는 식이다. 하지만 이 사진들은 음식 정보의 전달보다는 역시 식욕 자극이 더 큰 목적이라고 봐야 한다. 정말 메뉴 정보를 알려주고 싶다면, 백화점에 입점한 음식점처럼 메뉴 책자를 입구에 비치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또는 유리 쇼케이스 안에 음식모형을 만들어 진열하는 것이 사진보다는 더욱 메뉴 전달에 적절한 방법으로 보인다.<사진 2> 그 식당이 만들어 판매하는 음식을 한눈에 다 구경할 수 있고, 가격 정보까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더 효과적인 방법을 놔두고 사진을 쓰는 걸까? 메뉴 책자를 비치하면 작은 공간에 모든 메뉴 정보를 다 전달할 수 있다. 제작비도 사진을 입구에 붙이는 것보다 덜 들 거 같다. 이런 효과적인 방법을 활용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거리를 지나가는 행인의 식욕을 자극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요즘 많은 식당이 배너를 사용하는 걸 보면 그들이 얼마나 필사적으로 행인의 눈길을 끌려는지 알 수 있다.<사진 3> 식당의 입면은 지나가는 행인이 얼굴을 옆으로 돌려야 볼 수 있다. 반면에 배너는 식당 앞 거리에 놓음으로써 지나가는 행인의 정면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눈길을 피할 도리가 없다. 이런 배너에는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 TV 먹방 장면을 삽입해 더욱 노골적으로 식욕을 자극한다.<사진 4>
상품을 시각적으로 자극하는 것이 상품 정보를 알리는 것보다 우선한다. 마치 식당가를 지나가는 행인들이 모두 먹을 음식을 결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전제하는 듯하다. 경쟁적으로 음식 사진 전시투쟁을 하는 것이다. 그럴수록 사진은 더욱 먹음직스럽게 식욕을 자극하는 것을 목표로 연출되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인 음식모형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음식모형을 진열하려면 음식모형도 제작해야 하고 쇼케이스도 사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식당 앞에 적당한 면적의 공간도 있어야 한다. 그런 비용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또 하나 문제가 있다. 음식모형은 사진보다 식욕을 자극하는 힘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입체적인 음식모형은 사진보다 실제 음식을 더욱 사실적으로 모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사진 5> 요즘 음식모형 기술은 과거보다 더욱 발전해 정말 진짜 같은 느낌을 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음식모형은 음식사진이 갖고 있는 표현력을 따라가지 못한다. 사진의 표현력이란 음식의 온기와 색감, 질감, 그리고 침이 돌게 만드는 이미지 재현력이다. 음식 사진의 재현력은 음식의 단순한 모방이나 재현에 그치지 않는다. 사진은 때로는 실제 음식보다 더 맛있어 보이는 이미지를 창조한다. 이것이 사진의 재능이다.
회화는 일찍이 그것이 모방하는 자연이나 인물을 실제보다 더욱 아름답고 드라마틱하게 이상화해 왔다. 회화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 사진 역시 그 길을 걷고 있다. 그리하여 음식 사진은 실제 음식보다 더 달고 더 얼큰하고 더 바삭하고 더 기름지고 더 따뜻해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사진 속 음식은 영원히 김이 모락모락 나서 식지 않은 채 그 맛을 유지할 것 같지 않은가. 반면에 음식모형은 음식의 형태와 색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지만, 마치 파티가 끝난 뒤 남은 식은 음식처럼 질감과 온기가 증발해버린 듯하다. 사람들은 음식 사진이나 영상을 보고 자극 받아 음식을 주문했다가 실제 음식을 확인한 뒤 실망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는 이미지가 실제보다 더욱 탐스럽다는 것을 증명한다.
메뉴 정보에 더욱 효과적인 모형보다 사진을 선택하는 이유 역시 비용의 문제라기보다 식욕의 자극에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런 종류의 사진을 ‘푸드 포르노’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목적이 오직 식욕만을 자극한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음식이란 늘 함께 나누는 과정의 일부로 여겨져 왔다. 식구가 밥을 먹는 공동체이듯 밥은 나눔의 과정이다. 또한 음식 사진을 통해 음식을 먹는 도구나 가구, 형식 같은 문화적인 것을 제시할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와 문화는 없고, 오직 강렬한 식욕자극만 있다면, 그것이 바로 푸드 포르노인 것이다. 여기서 ‘포르노’라는 기호는 그 목적에 이르는 과정은 생략하고 오로지 최종 목적을 곧장 성취하려는 ‘태도’를 지시한다.
포르노 영상은 벗은 몸의 시각적 전시, 또는 섹스라는 최종 목적으로 직진한다. 섹스란 남녀가 사랑하는 과정의 일부이지만, 포르노그래피에서 이런 사실은 왜곡된다. 때로는 애달프고,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어리석고, 때로는 숭고한, 즉 지난하고 복잡한 사랑의 과정과 사건들은 지루한 것으로 여겨져 사라지거나 최소한으로 축소된다. 마치 하이라이트 영상만 모아놓은 예고편과 비슷하다. 예고편에는 이야기의 이해가 없으며, 오직 충동만 있을 뿐이다. 영화나 소설에서 마지막 결론에 감동하려면 지난한 스토리의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포르노그래피는 그런 스토리가 생략된 셈이다. 포르노그래피가 성적 흥분만을 자극하듯 푸드 포르노 역시 식욕의 흥분을 쥐어짠다.
포르노는 이러한 태도를 지칭하는 기호인 것이다. 따라서 포르노라는 말은 과정은 무시하고 목적만을, 최종 결과만을 강조하고 과시하고 강제하는 모든 태도에 적용해서 사용할 수 있다. 소비를 강력하게 강요하는 현대사회는 어쩌면 포르노로 넘쳐나는지 모른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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