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30. 10:25ㆍ아티클 | Article/에세이 | Essay
Ship of Theseus
옛날 그리스의 아테네에서는, 오래전부터 크테타 섬의 괴물‘미노타우로스’에게 해마다 미소년 일곱 명과 미소녀 일곱 명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폭압적 조공(朝貢)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러한 외환(外患) 속에 어엿한 아테네의 청년으로 성장한 테세우(theseus)가 마침내 크레타섬으로 잠입하여,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희생 직전의 소년 소녀들을 모두 구출한 뒤, 델로스로 항해하는 배를 타고 무사히 탈출하게 된다.
이에 아테네에서는 테세우스를 절대적 영웅으로 추앙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탔던 배(ship)도 소중히 관리하게 되었다. 그렇게 테세우스 배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마치 보물처럼 여겨졌으며,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고자 매년 델로스로 항해하는 기념행사에서나 겨우 친견(親見)할 수 있었다. 플루타르코스의‘영웅전’에 등장하는‘테세우스의 배(Ship of Theseus)’에 얽힌 이야기다.
그렇지만 그렇게 극진하게 관리되던 테세우스의 배도, 세월이 흐르면서 그 배를 구성했던 목재는 순차적으로 교체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래도 배의 형태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으며, 매년 그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는 운항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차츰 사람들은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소중하게 관리해온 배의 구성요소가 모조리 교체된 지금, 저 배가 정말 그때 그 테세우스의 배(Ship of Theseus)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묘하게도 배를 수선할 때마다 창고에 모아둔, 그 ‘버려진 목재’로 어느 날 관리인이 다시 테세우스 배(Ship of Theseus)를 조립하는 일이 벌어졌다. 물론 썩은 목재라서 애초 배의 기능이 발현되지는 않았지만, 형태와 내부공간과 부속품까지도 ‘테세우스 배’ 그대로였다.
그렇다면 수백 년 동안 모든 재료가 완전히 교체된 채 원래 기능이 유지되는 배와, 비록 기능은 모두 상실됐지만 당초 재료와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창고 안의 배, 그리고 이미 사라진 처음 그 배 중에서 과연 어느 배를 테세우스의 배(Ship of Theseus)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 문화유산(문화재)은 ‘원형보존(原形保存)’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 조항은 국가유산수리법에 처음 명시된 이래로, 마치 대한민국 헌법 제1조처럼 절대적 상징성을 띠고 있다.
“원형보존(原形保存)”
여러 해석이 곁들여지면서 충돌이 난무하는 지점이다. 과연 무엇이 원형(原形)이며, 어디까지를 원형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시대에 따라 각자의 해석과 해설이 부딪히며, 여전히 논쟁이 끊이지 않기도 한다. ‘원형’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보존’의 방법이 달라지고, 또 그 결과에서도 현저한 차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문화유산은 그 특성상 어느 한 시기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남아있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여러 시기의 층위(層位)를 동시에 지니게 된다. 이러한 속성 때문에 ‘원형’을 보존한다고 할 때도 도자기 등의 단일형태에서 거론되는 개념과는 달리, 건조물에 대해서는 얽히고설킨 실마리부터 차분하게 풀어낼 줄 아는 지혜와 거시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1990년대 경복궁 중건과정에서도 원형의 논란은 비껴가지 못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그 전각(殿閣)들이 정말 경복궁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경복궁의 중건(重建) 역사를 살펴볼수록 그 답변은 더 아리송해지게 된다. 예기치 못한 화재로 거의 소실되다시피 했다가 가까스로 재건된, 지금의 숭례문을 원형이라고 하는데도 정말 다들 아무런 이의가 없을까? 몇 년 전, 완전해체되었다가 다시 그 위용을 드러낸 여수 진남관(鎭南館)도 일부 부재가 신재료로 교체되었는데, 그것도 원형 그대로라고 믿어도 좋을까?
우리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어제의 나, 또 6개월 전의 나, 더 나아가 몇 년 전의 내가 과연 ‘지금의 나’와 한 치도 다름없이 동일한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세포와 미세균들은 그 안에서 생멸이 거듭되는데, 대략 6개월 정도가 지나면 우리 몸의 세포는 전부 교체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는 그렇게 완전히 탈바꿈한 ‘현재의 나(my present self)’를 ‘과거의 나(my past self)’와 동일하다고 믿고 있다. 하긴 그래야 우리들의 이 존재의식 자체가 성립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내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와 미생물이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살다 보면 생각, 감정, 종교, 게다가 인생관까지 뒤바뀐 경우도 허다한데, 우리는 여전히 나의 존재를 한 치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른바 ‘나의 원형’이 죽을 때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PC로 예를 들어보자. 수차례 수리를 거듭한 끝에 CPU는 물론, 메모리와 그래픽 카드, 메인보드 등을 하나씩 교체하다가, 마침내 운용 프로그램과 케이스까지 모두 바꿨다고 치자. 물론, 물리적인 부품들이 그렇게 차례로 바뀐 그 PC에는 처음 저장된 내용에 추가된 작업내용까지 축적되어 있다고 가정할 때, 내 책상 한구석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PC를, 예전에 처음 구입할 당시의 그 PC와 동일한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상영된 봉준호 감독의 영화 ‘미키(Mickey)17’에서도 그런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수없이 재프린팅(reprinting) 된 ‘미키17’이, 그 후 착오로 또다시 프린팅 된 ‘미키18’의 등장에 자아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장면이 연이어 등장한다. 그때마다 과연 ‘미키17’과 ‘미키18’을 동일인이라고 쉽게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영화를 두 번 세 번 다시 되풀이해서 본다고 해도, 아마 대답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 원형(原形)이라는 문제가 비단 우리 문화유산 분야에서만 직면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첨단 과학기술의 놀라운 발전으로 재사용, 재활용 등이 우리 곁에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한 현대사회에서는, 마침내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우리 인간 사유의 고유영역이라고만 여겨지던 창작과 예술, 사상 분야까지 그만 송두리째 원형의 논란에 휩싸이게 되고 말았다.
대체로 우리 문화유산 분야에서는 원형이 유지되는 것 자체를 기본전제로 깔고 있다. 그러면서도 ‘원형(原形)’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실로 다양한 해석이 병존한다. 그러다가 우리도 최근 세계문화유산 보존의 흐름에 보조를 맞춰, 그 모호한 ‘원형’이라는 개념보다는 ‘원상(原狀, historic state)’이라는 개념으로 점차 대체되기 시작했다.
어쨌든 지금 필자는 책상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이 골머리 아픈 ‘원형(原形)’에 대해서 숙고한답시고 이렇게 PC 자판을 열심히 두드려대고 있다. 그렇지만 이 글을 읽고 있을 즈음의 독자들은 분명 저자의 ‘현재’가 아닌, ‘과거’의 흔적과 만날 것이 분명하다. 마치 지금 내 피부에 와닿는 이 햇빛이, 이미 8분 16초 전에 태양에서 출발한 과거의 빛 입자인 것처럼…….
그래도 이 글의 전개과정에서 지나친 비약과 허물이 발견된다면 가차 없이 질책해 주기 바란다. 비록 필자의 신체를 구성하고 있던 세포도 전부 교체되고, 장내(腸內)의 미생물도 대부분 바뀌진 탓에 한때 나의 몸을 이루었던 물질(세포)의 동일성은 이미 사라졌지만, 지금도 ‘나’라고 하는 이 개체의 연속성은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기에…….
글·사진. 최상철 Choi Sangcheol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최상철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연백당
그동안의 건축설계 작업과정에서 현대건축의 병리현상에 주목하고, 산 따라 물 따라 다니며 체득한 풍수지리 등의 ‘온새미 사상’과 국가유산 실측설계 현장에서 마주친 수많은 ‘과거’와의 대화를 통하여 우리의 삶터를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건축’에 담겨있는 우리들의 생각과 마음을 알기 쉬운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작품으로는 「애일당」, 「마중헌」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내가 살던 집 그곳에서 만난 사랑」, 「전주한옥마을(공저)」 등이 있다.
ybdcs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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