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인가? 아티스트인가? 2026.6

2026. 6. 30. 10:15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Are you a designer?
Or an artist?

 

예술의 포괄적인 개념에 따르면 디자인도 예술임이 틀림없다. 오늘날에도 그런 포괄적인 예술의 개념은 널리 쓰이고 있다. 미국의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완벽함의 최정상은 너무나 오르기 힘들기 때문에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김연아 선수의 빠르고 정확한 트리플 액셀 점프, 마이클 조던의 환상적인 덩크슛은 그 기술적 경지가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고, 바로 그러한 것이 예술이라는 것이다. 고대의 예술 개념인 ‘아르스(ars)’나 ‘테크네(techne)’는 오늘날의 순수 예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오히려 오늘날의 ‘기술’에 가까웠다. 인류 역사 대부분의 시간 동안 예술은 그런 의미로 쓰이고 통용되었다. 고대의 철학자 플라톤이나 근대의 철학자 칸트에게도 예술은 오늘날 사용하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그러니까 고대부터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 시대까지도 오늘날과 같은 순수 예술의 개념은 없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같은 위대한 예술가를 지칭하는 용어는 ‘아르티피초(artificio)’였다. 그것은 오늘날의 기술자에 가깝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돈을 벌려고 루도비코 스포르차 같은 밀라노의 공작에게 자기를 써달라고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에서 다빈치는 무엇보다 기술자로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다. 이는 그가 오늘날의 예술가라기보다 공학자나 디자이너에 가까웠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그가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뜻이다.

 

<사진 1> <암굴의 성모>, 그림: 나르도 다 빈치, 1483-86년

 

다빈치는 1483년에 <암굴의 성모>라는 작품을 완성했다.<사진 1> 작품이 완성된 뒤 다빈치는 의뢰인에게 소송을 걸었다. 제단과 액자를 만들고 장식한 아르티피초가 그림을 그린 자신보다 더 많은 돈을 받은 사실을 뒤늦게 알고 격분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제단과 액자를 만든 아르티피초는 오늘날로 치면 가구 장인일 텐데, 그런 기술자가 어떻게 위대한 예술가인 다빈치보다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오해 없기를 나는 가구 장인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없다. 단지 오늘날 예술가와 공예가의 지위가 다르다는 것을 말한 것임을 양해 바란다.) 소송 결과 다빈치가 1000더컷을, 제단과 액자를 만든 아르티피초는 700더컷을 받았다. 현대인이 볼 때 이 금액 차이 역시 납득하기 힘들 것이다. 다빈치에게 줄 돈에 최소한 0을 하나 더 붙여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그토록 예술이 발전한 르네상스 시대까지만 해도 다빈치와 가구 공예가 모두 동등한 아르티피초, 즉 기술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예술 비평가 조르주 바사리의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평범한 공예가는 물론 오늘날 위대한 예술가로 칭송받는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역시 공정하게(?) ‘아르티피초’라고 지칭하고 있다.


16세기까지도 예술가는 오늘날의 디자이너였다. 구상과 제작의 분리라는 의미의 디자이너가 아니라 자율성이 부족하다는 의미에서 디자이너라는 것이다. 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오늘날의 디자이너도 과거로 돌아가면 예술가다. 하지만 17세기 이후 ‘순수 예술’이라는 개념이 탄생하면서 예술가는 기술과 공예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19세기에 이르러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예술은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된다. 예술가는 정신적 즐거움, 미적 쾌감을 위해서 자의식을 갖고 개성을 최대한 발휘해 작품 세계를 펼치는 사람이다. 그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독립된 창조인이 되었다. 반면에 공예가 또는 디자이너는 실용적인 쓰임을 위해서 뭔가를 만든다. 그것은 정신적 즐거움을 빼고 삶의 다양한 기능에 봉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예술가와 디자이너는 직업의 목적 자체가 판이하게 달라졌다.


유용성을 떠나 정신적 즐거움을 위해 일한다는 새로운 개념으로서 ‘보자르(beaux-arts)’라는 단어가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것을 영어로 번역하면 ‘파인 아츠(fine arts)’, 즉 순수 예술이 된다. 보자르나 파인 아츠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배운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하늘의 영감을 받아 하는 일이라고 여겨졌다. 그런 생각으로부터 ‘외로운 천재’라는 개념도 생겨났다.


뭔가 손재주가 있고 그림 그리기 같은 기술을 배우면 누구나 예술가가 되었을 법하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개념 때문이다. 순수 예술의 탄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자본주의다. 자본주의가 가장 먼저 발달한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최초로 예술 시장이 등장했다. 그 전까지 모든 예술가들은 특정한 귀족으로부터 경제적 후원을 받아 작품을 만들고 제공했다. 이런 일은 안정적이었으나 자율성이 부족했다. 무엇보다 그들의 요구에 타협해야 하는 일, 또 거들먹거리는 그들의 비위를 맞추고 그들을 실제 모습보다 훨씬 우아하고 아름답게 묘사하는 일은 때때로 역겨운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이 요구하는 인물화나 정물화만을 그려야 하는 일도 답답했다.

<사진 2> <마스 강 풍경과 그 너머로 보이는 도르드레흐트>, 그림: 얀 반 고옌, 1640년


하지만 17세기 네덜란드는 부자들이 너무 많아져서 귀족이 아닌 상인이나 일반인들도 그림을 구매했다. 그들은 특정 화가를 지속적으로 후원하는 것이 아니라 화랑과 같은 미술시장에서 그림을 구입했다. 화가들은 특정 후원자의 비위를 맞추지 않고 자기가 그리고 싶은 대상을 그린 뒤 내다 팔았다. 비로소 ‘자율성’을 획득한 것이다. 이때 유래가 없이 많은 풍경화가 그려졌다.<사진 2> 그전까지는 귀족들이 풍경화를 주문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풍경화의 탄생은 새로운 예술 시장의 등장을 알리는 증거였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자율성을 얻은 순수 예술가들은 그 대가로 경제적 안정을 잃었다. 자율적으로 그린 그림이 반드시 팔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그림의 진가를 발견하는 대중은 많지 않았다. 그에 따라 초기 풍경화가들은 배가 고팠다. 결국 풍경화를 포기하고 인물화로 되돌아가기도 했다.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의 인물화를 그려주는 일은 사실 오늘날의 디자인 개념에 더 가깝다. 의뢰인의 주문으로부터 일을 시작하고 그들의 끊임없는 통제와 간섭을 받아들이고 타협해야 했기 때문이다.


같은 화가라고 하더라도 후원자에게 의존하며 경제적 안정을 유지하는 길과 그들의 원조를 벗어나는 대신 자율성을 택한 화가의 길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것은 곧 오늘날의 순수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차이, 바로 그것이다. 자율성의 길, 리스크를 안고 가는 그 길에서는 거대한 성공이 기다리고 있다. 대신 그 성공의 횟수는 극도로 적다. 그렇게 힘들게 이룩한 길이기 때문에 오늘날 아티스트들은 견고한 성을 쌓는다. 분명한 경계를 만들고 높은 담을 쌓았다. 아무나 예술가가 될 순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경제적 안정을 택한 대가로 클라이언트의 끊임없는 수정과 참견에 시달리는 디자이너들은 정신적 고통뿐만 아니라 어떤 박탈감을 느껴야 했다. 예술작품은 시간이 흐를수록 고귀해지는 반면, 디자이너의 작품(?)은 그저 소비될 뿐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끊임없는 소비 촉진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낭비하는 것 같아 미칠 지경이다. 그리하여 몇몇 디자이너들은 아티스트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사진 3> LCM, 디자인: 찰스 임스 & 레이 임스, 1946년. © www.moma.org
<사진 4> 폭스바겐 골프, 디자인: 조르제토 주지아로, 1974년. © www.italdesign.it

 

나는 예술과 공예,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가 허물어졌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그 경계는 아주 확고하다. 그런데도 디자이너, 좀 더 상업적인 조형 작업을 하는 이들은 끊임없이 예술의 길로 들어서려고 한다. 단지 의뢰를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작업을 하면 그것이 예술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술은 그 이상을 요구한다. 자율성만으로 자기 멋대로 작품을 만든다고 예술이 되는 건 아니다. 만약 디자이너가 자신의 작업을 예술로 인정받고자 한다면 오히려 디자인 그 자체의 길로 이르러야 한다. 마치 자율성을 갖고 한 일은 아니지만 다빈치의 <암굴의 섬모>나 <최후의 만찬>,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천장 벽화가 모두 위대한 예술인 것처럼 말이다.


찰스 임스가 디자인한 의자들<사진 3>,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자동차들<사진 4>, 지암바티스타 보도니의 글꼴들<사진 5>은 모두 예술의 되려는 노력 때문이 아니라 유용한 것을 만들고자 한 그 치열한 노력으로 오히려 예술의 경지에 오른 ‘대량생산품’들이다. 정신적 즐거움, 미적 쾌감을 위한 일은 더 고귀하고 우월한 것이고, 육체적 필요에 부응한 것, 실제적으로 쓸모 있는 것은 평범하고 열등한 일이라고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 그러니 디자이너가 아티스트가 되려면, 현대의 순수 예술가들을 흉내 낼 것이 아니라 과거 위대한 아르티피초, 즉 위대한 기술자들이 했던 그 노력으로써 그 길에 다가가야 한다. 그것이 당당한 것이고 위대하기조차 하다. 

 

<사진 5> <타이포그래피 매뉴얼>, 디자인: 지암바티스타 보도니, 1818년. public domain
<사진 6> <스트라빈스키, 베르크, 포트너> 포스터, 요제프 뮐러-브로크만, 1955년
<사진 7> 최정호 서체 원도, 디자인: 최정호, 1988년. 사진출처: 국립한글박물관

 

스위스의 그래픽 디자이너인 요제프 뮐러-브로크만은 예술가는 타고나는 데 반해 디자이너의 길은 노력으로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사진 6> 위대한 예술가와 위대한 디자이너가 이룬 성취는 그 태도와 과정이 전혀 다르다. 하지만 어떤 경지에 이르는 순간 그 모든 것은 극도로 아름답게 된다. 그것을 예술이라고 부르고 미술관에 고이 보관하든, 또는 디자인이라고 부르고 쓰다가 버리든, 그것이 예술의 성취를 차이 나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글꼴 디자이너인 최정호 선생이 디자인한 글자들을 보라.<사진 7> 그것은 정신적 즐거움을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그저 글자가 대량생산될 수 있도록 하고 잘 읽히도록 한 것이지만 미술관의 어떤 예술작품보다 당당하지 않은가.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눈 밝은 사람이라면, 그것을 20세기 한국의 위대한 예술작품이라고 하지 않을 자가 있을까?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고마워 디자인』,『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