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31. 10:30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Looking Forward to Korea's Sagrada Familia: The Mire of Regulations and the Future of Architecture
위대한 건축의 힘
스페인은 가우디로 기억된다. 안토니오 가우디(Antoni Gaudí)는 스페인의 상징이고, 가우디가 남긴 건축물을 보기 위해 매년 수많은 세계인이 스페인을 향한다. 특히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단순한 성당이 아니다. 이 미완의 걸작을 보기 위해 연간 약 5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며, 입장료 수익으로만 연간 1억 2,500만 유로(약 1,800억 원) 이상을 벌어들인다.
스페인의 쇠락해 가던 빌바오 시(市)에서는 건축물 하나로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다. 1970년대 중공업 경제 위기로 실업률이 급증하고 인구가 급감하면서 도시 소멸의 위기를 맞이했다. 이때, 도시재생추진협회는 건축사 프랭크 게리의 창의성이 극대화된 설계로 ‘구겨진 종이 더미’ 형태의 독특한 미술관을 선보였다. 전례 없는 디자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스페인을 넘어 세계적 건축물로 그 유명세를 떨쳤다. 그리고 이 ‘건축학적 신드롬’은 빌바오 시를 세계적 명소로 만들어 4만 명에 불과하던 도시 방문객을 100만 명 이상으로 폭증시키며 공항, 고속철도, 항만, 지하철을 비롯한 각종 기반시설 및 스포츠, 음악, 역사 등 다양한 문화시설들에 재투자되는 선순환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위대한 건축물은 도시를 먹여 살리고, 국가 브랜드 가치를 수직 상승시킨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결국 대한민국 건축 현실에 대한 자각의 순간을 맞이한다. ‘우리나라에는 왜 가우디 같은 파격적이고 창의적인 건축사가 나오지 않는가?’ 물론, 내가 위대한 설계를 하지 못해서가 가장 큰 이유겠지만 오늘은 건축사 역량이 아닌 '시스템의 한계'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오늘날 대한민국 건축 행정 시스템 속에서는 가우디가 살아 돌아와 설계도를 들고 와도 ‘법규 위반’으로 반려당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돈이다, 느려진 행정 시계
건축 현장에서 ‘시간은 곧 돈’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인허가 시스템은 과거에 비해 지나치게 비대하고 느려졌다. 실제로 건축공간연구원(AURI) 등 자료에 따르면, 부동산 개발 사업자 약 80%가 인허가 지연으로 피해를 경험한다고 답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 비용이다. 민간 건축 공사에서 인허가가 한 달만 지연되어도,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이자 등 금융 비용이 약 9,000억 원에서 1조 원에 육박한다는 분석도 있다.
주택건설사업 승인을 받기 위해 협의해야 하는 부서만 25개에 달하고, 최대 44주가 소요되기도 하는 이 복잡한 행정 절차 속에서, 건축사의 창의성은 '신속한 처리'라는 현실적인 목표 앞에 뒷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대한민국 건축의 냉혹한 현실이다.
설계, 인허가 절차, 공사(감리), 준공의 전체 건축 공정 중 건축주 입장에서 줄일 수 있는 부분은 설계 기간이다. 인허가 절차는 나날이 복잡해지면서 길어지고, 공사도 인력난 등으로 비용과 시간이 늘어나고 있으며, 준공도 관련 규정이 정교해지면서 지연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현실 속에서 건축주는 가장 손쉬워 보이는 설계 기간을 되도록 줄이고 비용을 낮추려고 애쓴다. 설계는 건축의 DNA이며, 우리 몸의 DNA가 우리 몸을 규정하듯 설계가 건축물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가장 단순한 진리는 비용과 시간이라는 현실적인 벽 앞에 오늘도 무력하다.
건축사 입장에서는 건축주의 이러한 경향으로 인해, 창의성이 위축되면서 시간의 압박으로 충분한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대한민국 건축의 전체적인 수준을 하향 평준화시키는 ‘악마의 수레바퀴’가 되어 지금도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이거 지키면 저게 불법’, 모순된 규제의 딜레마
더 큰 문제는 서로 상충하는 수많은 법규다. 건축사는 마치 '지뢰밭'을 걷는 심정으로 설계를 해야 한다. 대표적인 예로 건축법과 소방법의 충돌이다. 피난 시설이나 마감재 기준 등에서 두 법이 서로 다른 기준을 제시하여, 건축법을 따르면 소방법에 걸리고 소방법을 따르면 건축법에 저촉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빈번하다.
또한 에너지 절약 설계 기준은 날로 강화되어 이제 건물 창문 크기 하나까지도 '열효율'이라는 잣대로 규제를 받는다. 건물을 에너지 효율 등급이라는 틀에 끼워 맞추는 사이, 도시의 풍경은 획일화된 '성냥갑'으로 채워지고 있다.
실제 필자가 체험한 사례도 있다. 수년 전 학교 설계를 진행하던 중 틀에 박힌 디자인을 벗어나고자 모듈화 된 창문을 새로운 형태로 제안한 적이 있었다. 학창 시절 더 많은 세상과 하늘을 보고 싶었던 바람도 작용했을 터였다. 그러나 결국 이 디자인은 반려됐다. 인허가 과정에서 에너지 절약 계획서를 제출했고, 관련기관 규제로 기존의 모듈화 된 창문으로 돌아간 것이다. 물론 혁신적 디자인과 교육 친화적 설계로 대한민국 우수시설학교 대상을 받긴 했지만, 지금도 그 부분은 아쉬운 내 ‘설계일지’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규제 감시를 넘어 창의성 지원으로, AI 행정의 도입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공무원 인력을 단순히 늘리는 식의 접근으로는 한계가 있다. 필자는 '인공지능(AI) 기반의 건축 행정 시스템' 도입을 제안하고 싶다. 이미 건축공간연구원 등에서는 거대언어모델(LLM)을 활용한 '건축법령 해석 지원 시스템' 등을 연구하고 있다.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법규와 조례를 AI가 사전에 검토하여 상충되는 부분을 조율해 주고, 단순한 법규 확인은 자동화해야 한다.
건축사가 복잡한 법규 해석과 관청 협의에 쏟는 에너지를 '창의적인 디자인'에 쏟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규제가 건축사의 상상력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이 행정을 보조하여 상상력을 실현시켜 주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에서도 언젠가 가우디를 뛰어넘는 거장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 ‘대한민국 가우디’의 위대한 건축을 보기 위해 수많은 세계인이 한반도를 찾게 될 것이다. K-팝, K-푸드, K-드라마, K-방산 등을 이어 K-건축이 대한민국 국격을 높이고 경제, 사회, 문화, 정치 발전에 핵심 원동력이 될 날을 상상해 본다.
글·사진. 최은희 Choi Eun-hee
센 건축사사무소

최은희 건축사·센 건축사사무소
‘대문자 I’ 성향의 인간이 아버지가 건축계에서 일한다는 사실만으로 ‘덜컥’ 건축학과로 진학했다. 건축사사무소에서 성실과 인내로 재능의 빈자리를 메꾸며 근근이 버티다, ‘덜컥’ 건축사가 됐다. 결국 ‘덜컥’ 건축사사무소를 개업하고 건축사 동료와 사무소 직원들의 응원과 지원, 공감과 성원에 힘입어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hello@sen.a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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