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2. 27. 10:35ㆍ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City Odyssey
Suwon, a City Born in Hwaseong and Grows from a Node
역은 마치 터줏대감과도 같았다. 1905년 경부선과 함께 탄생하였으니, 120년간 수원의 성쇠를 지켜본 셈이다. 그동안 변화를 거듭해 선로가 십(十)자로 분기·교차하며 KTX와 도시철도, 민자역사와 환승시설을 품은 거대 역으로 성장했다. 한 지역이 대도시로 성장하기까지 영향을 미친 철도역은 그다지 흔치 않다. 대전과 대구, 부산 정도를 손꼽을 만하다. 수원역도 그중 하나다. 역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확산해 인구 120만의 대도시가 되었으니 말이다.
교통의 3요소는 연결시설(link), 결절점(node), 교통수단(mode)이다. 철도나 도로 등 선(線)으로 나타나는 연결시설은 무릇 지역 변화에 주요 변수임이 분명하다. 교통수단은 종속변수일뿐이다. 그러나 지역 변화를 추동하는 제1의 요소는 정작 결절점이다. 결절점의 우리말은 ‘마디’로, 꺾이거나 변화하는 부위 간 연결을 자연스럽게 매개하는 기능으로 축약할 수 있다. 교통에서 마디는 버스 정류장이나 터미널, 나들목과 분기점, 철도역과 항구, 공항 등이다.
결절점에는 사람과 재화가 모이고 흩어진다. 그 과정 자체가 도시 활동이고, 이런 활동의 빈도를 바탕으로 도시 공간은 변화하며 성장동력을 얻게 된다. 이를 우리는 그간 ‘근대화’라 여겨왔다. 산업혁명 이후 성장한 근대도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외 없이 이런 과정을 밟아왔다.
수원의 결절점
수원의 모태는 화성(華城)이다. 1924년 지도는 화성을 중심으로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수원역과 남문시장을 잇는 매산로 주변도 도시화의 초기에 진입하는 모습을 보인다.
화성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지금의 정조로(正祖路)는 한때 경성 가도이기도, 국도 1호선이기도 했다. 정조로와 교동사거리에서 만나는 매산로가 수원역까지를 잇는다. 수원이 정조로와 매산로 도로축을 따라 확장하기 시작한다. 이때 매산동과 교동이 도시 확산의 중심으로 등장한다. 철도는 지역 변화를 추동하는 동시에 지역을 단절하는 시설이기도 하다. 철도의 이런 양면성으로, 수원역 서쪽으로 도시 확산은 경부선에 막혀 오랜 기간 제약을 받았었다. 화성과 함께 축조한 서호(축만제)와 만석거 주변 드넓은 농경지가 배후지 역할을 담당하는 정도였다.
서울에 있던 경기도청이 1967년 팔달산 남측으로 이전해 온다. 도청 이전은 수원시가 경기도 행정 중심으로 거듭났음을 의미했다. 도청 이전으로 증가한 행정수요는 도시 활동을 배가시켰다. 이는 철도역과 함께 또 다른 성장 기폭제였다. 이의 영향으로 산업화가 뒤따라 밀려온다. 철도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는 수원역을 중심에 두고 매산동과 교동은 물론 세류동과 고등동, 화서동으로 도시가 급속히 팽창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수원 동쪽으로 지나고, 1976년 국도 1호선을 경수산업도로라 부르며 선형을 개량하고 폭을 넓힌다. 같은 해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수원역까지 운행된다. 이러한 제반 교통시설의 발달로 수원은 거대도시로 성장할 동력을 얻는다. 1949년 시 승격 당시 5.3만 인구가 2025년 11월 기준 118.7만으로, 면적은 30㎢에서 121㎢로 확대되었다. 이 모든 것의 시작과 중심에 강압적 근대화 물결을 타고 온 수원역이 있었다.

수원역 앞
우리나라 철도역 앞 공간구성은 유사한 경향성을 띤다. 일제는 군사적인 활용도가 높다는 이유로 주요 거점 역 앞에 넓은 광장을 두었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반원으로 방사형 도로망이 뻗어나갔다. 이런 영향으로 철도역 앞 공간에 사람과 물류가 자연스럽게 몰려들었다. 재화가 모이니 자연스럽게 시장이 섰다. 시장 주변으로 상점과 소비재, 찻집이나 주점 등이 공생하는 공간구조가 형성된다. 이런 기능이 철도역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숙박업이, 이는 연쇄적으로 홍등가와 집창촌을 끌어들였음도 주지의 사실이다. 서울·영등포·용산·청량리역을 비롯하여 경부·호남선의 대도시 철도역이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간선철도가 지나는 주요 철도역마다 비슷한 공간구조를 갖게 된, 아픈 역사의 단면이다.

수원역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 앞은 시장 차지였다. 1948년 출발한 역전시장은, 1985년 현대화 사업에 따라 건물을 신축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역전시장에 잇닿은 매산 시장은, 재래시장 모습을 오롯이 간직한 곳이다. 아직도 시장 특유의 푸근한 정과 온기가 넘쳐나며, 활발한 상거래가 이뤄지는 도심 속 추억의 장소다.
매산로 건너 향교로가 로데오거리다. 역에서 수원 세무서까지 약 6백여 미터 공간이다. 젊은이들 공간으로 무엇보다 이들의 발길이 잦아진 건 무척 고무적이다.
공간의 얼굴이 밝아지고 활기가 돈다. 젊은이 공간은 어디나 그렇듯, 거리는 환한 웃음으로 밤낮없이 분주하고 명랑하다. 그리 높지 않은 건물군에 정감 가는 거리, 특히 차 없는 거리가 된 건 백미 중 백미다. 길을 걸으며, 어떤 위협도 느끼지 않고 자유롭다. 이는 여타 도시에서 본받아야 할 모범 사례로 보인다.
하지만 수원역 앞이라는 단위 공간이 모두 그런 건 아니었다. 독버섯 같은 집창촌이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젊음의 거리는 인접한 집창촌과 오랜 시간 갈등을 겪어야만 했다.

험난했던 공간 찾기
60여 년이다. 집창촌이 자리한 시간이다. 2021년에서야 꼬리를 감췄다. 자진 폐업이란 명분이라지만, 특유의 풍선효과로 더욱 음성화하거나 다른 지방으로 이주했을 개연성이 무척 높다. 나쁘다는 건 다 알고 있었다. 다만, 인식의 깊이나 실천 의지가 없었을 뿐이다. 먹이사슬로 얽히고설킨 생태계 문제였다. 퇴출에 대한 본격 논의는 2004년 ‘성매매특별법’ 제정부터이니, 무려 20여 년을 방치한 셈이다. 도시 공간에서 하나의 기능을 제거하기란, 그 기능의 시시비비를 떠나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이다.
시민단체와 공공이 나서 업주들을 설득한 결과가 자진 철거였는지는 의문이다. 다만, 코로나라 창궐과, 이를 터부시 하는 사회 인식이 마중물로 보인다. 결국 집창촌도 상업(?) 활동이었던 셈이다. 불황을 견디는 장사꾼은 없기 때문이다. 몇년 전 집창촌이던 이곳 숙박업소의 개보수 현장을 보았다. 공간은 하나둘 말끔하게 단장한 상업시설로 채워지고 있다. 공간의 낯빛이 달라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떤 기능으로 이곳을 채워야 할까.
역 앞은 젊음으로 충만하다. 공공이 개입해 청년들이 꿈을 잉태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은 없을까. 아니면 반도체와 화성, 수원역 앞 문화적 특성을 연계하는 건 어떤가.

수원 비행장
도시 공간에서는 탐욕적 개발과 안온한 삶을 지키려는 보존이 끊임없이 경쟁한다. 정치인을 필두로, 토건족은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해 철거·재개발을 추동하려 한다. 수원역을 비롯한 구시가지 일원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현주소다.
그중 ‘수원 비행장 이전’이 화두다. 비행장 주변 소음은 오랜 민원이다. 또한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반경 내 접근표면은 물론 그 주변 지역의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가해지고 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오래전부터 수원시는 비행장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비행장이 이전하면 구시가지 일원이 접근표면, 즉 고도 제한에서 해제되기 때문이다.

수원역 앞은 탐욕스러운 자본과 권력의 손길이 가장 먼저 뻗쳐 올 장소다. 따라서 고도 제한해제가 전가의 보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우후죽순 공간을 파괴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전에 정밀한 도시설계를 통해 도시 미래상을 예비해 두어야 한다.
개발과 보존이라는 해묵은 담론보다,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시민을 최우선에 두어야 한다. 이 시각 수원역 앞에서 추억을 쌓는 젊은이들이 부지기수다. ‘장소의 역사성’은 그런 것이다. 로데오거리는 나지막한 건물군에 정감 넘치는 거리다. 기억의 보물창고다. 화성과 팔달산, 매산로가 잇는 수원역까지 연속된 공간은 그야말로 수원의 얼굴이다. 이를 보존하여 문화적 가치를 높여 갈 방안을 찾는 게 더 미래지향적이고 현명해 보인다.
비행장 이전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욕망을 자극해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의 행위까지 비판하고 싶진 않다. 우리 도시 어디에서건 비일비재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다만, 철학 없는 그들이 그동안 우리 도시를 망쳐온 주범이라는 사실을, 이젠 시민이 더 잘 알고 있다는 것만은 말해두자.
한 공간의 변화와 미래는 그래서 시민 뜻으로 결정해야 한다. 한번 파괴해 버리면 다시 복원해 내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 하나만은 반드시 기억하자.
글·사진. 이영천 Lee, Yeongcheon 자유기고가

이영천 자유기고가
도시공학 학사(홍익대학교), 도시계획 석사(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계획기술사(1999). 엔지니어링사에서 도시계획 업무를 시작으로 건설사에서 오랜 기간 사회간접자본 투자사업에 종사했다. 자유기고가로 한국도로협회 계간지 <도로교통>에 다리 에세이 연재 중이다.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에 다리 및 근대건축 관련 에세이를 연재했고, 현재 도시 관련 에세이 연재 중이다. 저서로 『다시, 오래된 다리를 거닐다』와 『근대가 세운 건축, 건축이 만든 역사』가 있다.
shrenrhw@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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