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짝 2022.10

2022. 11. 2. 14:16아티클 | Article/에세이 | Essay

Gooooooooojjag


제주어 ‘구짝’은 여러 의미가 있는데, 방향을 나타낼 때는 직진이고 행동으로는 초지일관을 말하며, 은유적으로는 한 우물을 판다는 속담과 뜻이 같다. 여러 갈래로 가지 않고 한 길로만 고집스럽게 가는 것을 ‘구짝간다’라고 하며 상황에 따라 긍정과 부정의 뜻이 있다. 구짝가는 사람을 좋게 말하면 한눈팔지 않고 꾸준히 가는 것이라 할 수 있고, 반대로 말하면 돈키호테와 같은 미련 곰탱이다.

필자는 ‘올래와 정낭’을 위하여 구짝 가고 있는 제주도 촌놈이다. 돈키호테와 비슷하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오몽(움직인다는 뜻의 제주어)’할 수 있을 때까지 구짝 갈 생각이다. 지금까지 약 25년 정도 했으니까 앞으로도 잘하면 왔던 시간만큼 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단순히 올래와 정낭을 넘어서 제주도의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을 이해하고 절해고도(絶海孤島) 제주 선인들이 다양한 삶이 흔적을 찾고 공부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건축으로 표현하고 싶은 게 촌놈의 구짝 가는 이유다. 

올래와 올레는 같이 쓰인다
육지 사람들은 올레길은 알아도 올레나 올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긴 제주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필자를 포함한 아주 소수의 제주 사람들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은 ‘올래’는 큰길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 비슷한 길’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올래는 길이 아니다. 올래는 ‘길에서 집안의 마당까지 이어지는 진입공간’이다. 즉 내 땅이다. 건축법적으로 표현하면 길은 지목이 ‘도로’인 공적공간이고, 올래는 지목이 ‘대’인 사적공간이다. ‘집안’은 내 땅 안에 있는 것으로서 건축물과 토지로 구분할 수 있다. 건축물로는 안거리, 밧거리, 모커리, 이문간, 몰막, 쇠막, 통시, 정낭 등이 있고, 토지는 올래, 마당, 우영팟, 안뒤, 눌굽, 장항굽과 같은 땅을 말한다. 올래와 정낭은 집안의 구성요소로서 매우 중요하다.

올래 _ 올래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대개 유선형이고 직선형도 있고 물리적으로 공간이 없는 올래도 있다.
신엄리 도대불 복원 _ 도대불은 전기가 들어오기 전에 어부들을 위한 돌로 만든 등대이다. 어두운 밤바다에서 포구로 인도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주도는 2007년 9월에 올레길이 개장되면서부터 폭발적인 관심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때부터 많은 관광객, 순례객, 중국인들의 들어오면서부터 소위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우리 건축계도 바쁘게 돌아갔다. 그러다 보니 단기간에 건축된 현대건축물들은 제주도의 옛 정서를 빠르게 지워가기 시작했다. 선인들이 남겨놓은 올래가 급격하게 사라져갔다. 제주시나 서귀포시의 도심에도 올래가 꽤 남아있었는데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시골에 있는 올래도 디지털 건축에 점령당해서 많이 없어졌다. 제주도가 발전과 팽창하고 있는 반면에, 올래는 반대로 쇠락을 넘어 소멸해 가고 있다. 제주도민들 삶에 중요한 공간이었던 올래가 이제는 문화유산이 되어가고 있다.

2022년 5월에 책을 펴냈다. 약 25년 만에 얻는 성과다.

그리하여 지금의 사람들은 왜곡된 올레길, 올래길, 올레길을 걷고 있다. 나는 오늘의 이 현상을 올래에 대한 오남용이라고 말한다. 포털사이트에 올레를 검색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KT가 1번으로 점령했고 올레길이 2번이다. 실제로는 올레길이 먼저 쓰기 시작했다. 이후 KT가 오용했고 사단법인올레가 남용했다. 이렇게 오·남용되는 올래를 전 국민에게 알려서 본디 올래가 될 수 있게 하는 게 내가 구짝가야 하는 이유다. 더불어 제주의 정체성이 담겨 있는 건축물을 만들어 내는 것까지도.
그런데 어렵다. 어려워도 한창 어렵다, 올래를 올바르게 알리는 것도 어렵지만, 건축으로 풀어내는 것은 더 어렵다. 그렇다고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앞서간 사람도 없다. 

직진본능, 초지일관, 앞으로 앞으로
지난 1996년 가을에 티베트 동부지역을 탐험했는데 4,000미터가 넘는 산간 오지마을에서 제주도의 정낭과 같은 정낭이 있는 민가를 보았다. “아니 제주도에만 있다고 하는 정낭이 여기에도 있을 줄이야!” 
그 이후부터 올래와 정낭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건축 현장조사 갈 때, 현장감리 갈 때, 노는 날, 심심할 때, 때로는 어린 아들과 등등…… 올래와 정낭을 찾아서 다녔다. 자연스럽게 마을을 공부하게 되고 집안과 집을 공부하게 되었다. 선인들의 삶을 공부하게 되었다. 솔직히 재미도 있었다. 내 체질이었다. 관련된 인문학 강의도 많이 수강했고, 다양한 책도 읽어보면서 조금씩 풀어 갔다. 굼벵이 기어가듯 가서 한 20년 정도 되니 올래가 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낭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낭에 대해서는 거의 다 풀었는데, 올래는 앞으로도 더 공부해야 한다. 제주도는 삼다(三多) 삼무(三無)의 섬이다. 돌 바람 여자가 많고 대문, 도둑, 거지가 없다. 여기서 삼무는 정낭의 기원이라고 보면 된다. 올래에 설치된 정낭으로 인해 도둑도 없고 거지도 없게 된 것이다. 대부분이 사람들은 제주도에서 대문은 올래 입구에 세워진 정낭이라고 알고 있는데(신문·방송의 잘못된 정보전달 영향도 있다.), 대문은 정낭이 아니고 안거리(안채)에 있는 상방마루 문을 말한다. 올래가 왜 만들어졌는가에 대해서는 개괄적으로는 풀었지만, 실체적으로는 아직도 살펴볼 것이 남아있다. 올래의 역할은 바람으로부터 내부를 보호하고, 외부인으로부터 보호받고, 가축을 보호하며 집안의 다른 공간들과 경계를 구분한다. 앞으로는 다양성과 더불어 ‘왜 올래인가?’를 확인하고자 구짝 갈 것이다.

변방건축, 올래건축, 제주다움, 제주다운 건축, 촌티나는 건축
선인들이 남겨놓은 제주의 인문환경을 현대건축으로 풀어보는 것은 대단한 자신감이다(어쩌면 이게 곧 제주다움, 제주다운 건축일지도 모른다.). 나는 풀 수 없다. 풀 방법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감이 없어서 시도하기조차 어렵다. 그런데 자꾸자꾸 내 마음속에 있는 옛 선인들이 끈질기게 부추긴다. 이러니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많은 시간을 두고 고민한 결과 은유가 안 되면 직유로라도 건축화하는 것이라 결론지었다. 지역의 정체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멋진 설계는 실력 부족으로 만들어 내지 못하지만, 형태나 디자인으로 나타나는 직유건축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시도해보고 있다. 태어난 자식들도 몇 있다. 성산포항 여객터미널, 법환동 다세대주택, 신엄리 도대불 복원, 불턱 복원, 책 제주도 올래와 정낭 등.

태어나지 못한 자식은 훨씬 많이 있다. 불행한 놈들이다. 지금까지 오다 보니 두려운 것이 하나 있다. 남들의 평가다. 그동안 ‘뚜럼(바보)’과 ‘귀껏(바보)’ 소리를 많이 들었다. 앞으로도 많이 듣게 될 것 같다.
경해도 누게가 무시거렌 고라도(그렇지만 누가 뭐라고 말해도)  구     짝. 


글. 송일영 Song, ilyoung (주)올래와정낭 건축사사무소

 

송일영  건축사·(주)올래와정낭 건축사사무소
완벽한 제주 원주민. 1962년생
올래와 정낭에 집중하려고 사무실 이름까지 바꿨다.
제주의 정체성에 대한 이론적 탐험을 나름대로 하고 있으며, 이를 건축화하려고 애쓰고 있다.
makhan1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