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바다와 잔잔히 대화를 나누는 공간, ‘파도에게’” 2024.10

2024. 10. 31. 10:30아티클 | Article/인터뷰 | Interview

“‘Dear wave’, a space that calmly communicates with the sea”

 

 

 

<파도에게> 4층 객실 © 윤준환

 

# 바다와 어우러진 공간, ‘파도에게’

강릉의 바다는 언제나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동해의 푸른 물결이 끝없이 밀려오는 그곳에,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새로운 건축물이 생겼다. 이름하여 ‘파도에게(Dear wave)’. 최이선 건축사가 자신의 철학을 담아 만든 이 공간은 바다와 대지가 어우러져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특별한 장소다.

 

 

‘파도에게’를 설계한 최이선 건축사가 사무소 전시공간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최이선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예인)는 “‘파도에게’는 바다와 대지가 서로 대화하는 공간”이라며 “사람들이 이곳에서 자연과 소통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 건축의 시작

‘파도에게’의 시작은 평범했다. 구도심에서 오랫동안 음식점을 운영해오던 건축주가 경포바닷가 근처의 넓은 대지에 풀빌라를 짓고 싶다고 의뢰하면서부터다. 최이선 건축사는 “바닷가의 특성을 살리면서, 자연과 건축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자연과 건축, 그리고 대화

그는 건축에서 자연과의 대화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바다와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건축을 할 때 자연과의 대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 장소가 주는 느낌과 땅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죠. ‘파도에게’에서도 바다, 구릉지, 그리고 바람이 함께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바닷가의 거센 파도 소리를 들으며 그 소리에 맞춰 공간을 설계하는 과정이 참 의미 있었습니다.”

이어 그는 “장소와 풍경 등과 소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지형에 맞는 건축물이 만들어집니다. 억지로 건축을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그에 맞춰 건축을 흘러가게 하는 것이죠. ‘파도에게’도 바다와 대지가 주고받는 이야기에 맞춰 공간을 구성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파도에게> 1층 객실 © 윤준환


# 바다와의 연결을 담은 공간

‘파도에게’는 실내에서도 바다와의 연결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됐다. 그는 “바다와 더 가까워지고, 그곳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수영장을 배치하고 2층 높이로 공간을 열어, 수직적으로 확장된 느낌을 주고자 했죠. 바다와의 대화를 손님들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 돌출 수영장과 일정의 딜레마, 장소·환경과의 타협으로 완성된 ‘파도에게’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큰 도전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돌출된 수영장의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바다를 향해 더 넓은 공간을 내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뒤따랐다. 그는 “바다를 더 품고 싶었지만, 안전성 문제와 구조 심의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건축주의 오픈 일정에 맞추기 위해 제 욕심을 조금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죠”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자연과의 타협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건축을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은 자연 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는 거예요. 더 멋진 공간을 만들고 싶지만, 자연의 한계와 맞서기보다는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야 하죠. ‘파도에게’에서도 그런 타협과 절제를 통해 더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 건축과의 오랜 동행

최이선에게 건축은 오랜 친구처럼 삶의 일부다. 그는 “건축은 저에게 오래 알고 지낸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함께 시간을 쌓을수록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관계죠. 앞으로도 이 관계를 이어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지역에서 건축사로서 역할을 다하며, 꾸준히 좋은 작업을 이어가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그는 최근 건축계를 바라보며 아쉬운 점도 털어놓았다. 설계공모의 과열과 불공정한 경쟁 속에서 후배들이 기회를 얻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건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개인들이 건축을 하기 힘들어졌고, 많은 건축사들이 설계공모에 몰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 공모의 본래 취지가 퇴색되고 경쟁이 과열된 상황이 됐죠. 그럼에도 공정하게 심사하는 선배들이 더 많다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후배 건축사들이 더 좋은 건축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 바다와 건축이 만나는 공간

‘파도에게’는 바다와 건축이 어우러지는 특별한 공간이다. 숙박객들은 이곳에서 동해의 푸른 바다를 마음껏 누리며, 그 속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는 “이 공간이 특별한 이유는, 사람들이 도시에선 느낄 수 없는 개방감과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파도에게’는 바다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바다와 대화하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하길 바랍니다”라고 전했다.

 

 

최이선 건축사의 작업공간. 자연 풍경과 연결된 넓은 창을 통해 채광과 개방감을 살렸으며, 다양한 건축 모형과 자료들이 자리한 공간에서 작업의 깊이를 더한다. 최이선 건축사의 작업공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직원들이 사용하는 공간과 건축사 본인만의 공간이다. 약 100㎡의 공간은 최이선 건축사의 개인 작업실과 회의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혼자 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직원들과 분리된 상태에서 집중할 수 있죠. 또 하나 이 건물의 매력은 창밖으로 보이는 자연경관과 기차입니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열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제 일상의 작은 즐거움입니다.” 그는 건축을 직업이라기보다는 친구처럼 생각하며, 자연 속에서 일을 하며 건축을 즐긴다고 덧붙였다. 건축사사무소는 오랫동안 함께해 온 직원들과 새로운 인턴들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기도 하다. 직원들은 오랜 시간 사무소를 지켜왔고, 인턴들은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최이선 건축사가 박정연 건축사(본지 편집국장)에게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건축사사무소 예인의 전시공간. 다양한 건축 모형과 프로젝트가 전시돼, 방문객들이 건축사의 작업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인터뷰 건축사 최이선 Choi, Yesun 건축사사무소 예인
대담 박정연 편집국장

글·사진 장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