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오딧세이 ③ 소외된 도시의 뒷방, 노년 전유 공간을 찾아서 2023.8

2023. 8. 17. 20:33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City Odyssey ③ With looking for a space exclusively for the elderly where is the alienated back room of a city

 

 

 

이곳에 서면 지나버린 세월이 날 것으로 전해져 온다. 허허로운 일상을 보내는 노년이 점유한 공간은 마치 뒷물에 밀려 하구에 다다른 강물처럼 보인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이 풍경 속 주인공은 분명 우리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시간이 만들어 낼 필연이기 때문이다.
이들 노년이 소비하는 도시공간은 다소 이채롭다. 시간을 거슬러, 어느 한 시점에 멈춰버린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한 세대 전 모습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어서다.
도시에서 지대(地代)는 통상 소비행태 또는 구매력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지대가 구획한 공간조직은 세대별 특성을 드러내려는 경향성이 강하다. 전유 공간의 형성이다. 전유 공간은 강력한 배타성으로, 그곳에 형성된 세대 특유의 감성과 문화로 공간을 소비한다. 홍대 앞이 젊은이들의 공간이듯, 이곳은 시니어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탑골공원을 위시한 낙원동 일대 송해길이라 명명한 곳에 형성된 일종의 ‘회귀 공간’이다. 하지만 이곳도 생성-번영-쇠락이라는 순환과정을 거치며 점차 변해갈 것이다.

 

 

송해길 © 이영천


노년이 채운 공간
언제부턴가 탑골공원에 수천의 노인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노년 문화가 생겨났다.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열띤 목소리로 시국을 강연하는 연사도 있었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직접 그리고 쓴 그림과 붓글씨를 현장에서 판매하는 부류도 있었다. 물론 크고 작은 일탈도 빠지지 않았다. 음주와 다툼은 물론, 빙산의 일각이나 노인을 대상으로 매매춘하던 ‘박카스 아줌마’가 사회적 조명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공간조직은 대체로 평온했고, 한낮의 느슨한 활력이 공원과 주변을 지배하고 있었다. 노인 간에 갈등이나 애로는 없어 보였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처지를 공감하는 보이지 않는 느슨한 관계망이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이곳을 터부시했다. 이들 사이에도 욕망이 작동하는 엄연한 하나의 ‘사회’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자꾸 밀쳐내기 바빴다. 또한 이 공간을 타자화하며 지우려 했다. 집단으로 모인 이들 행태를 곁눈으로 흘겨보며 외면하기 일쑤였다.
이렇듯 이곳은 소외된 도시의 ‘뒷방’ 취급을 받아 왔다. 월드컵 개최를 빌미로 서울시는 운현궁 맞은편에 ‘서울노인복지센터’를 지어 이들을 수용할 의지를 내보인다. 탑골공원 성역화를 명분으로 앞세웠다. 물론 서울노인복지센터 프로그램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무척 훌륭하다. 식생활에서부터 건강, 취미, 교육은 물론 취업 알선까지 이 시대 노인이 당면한 제 분야를 망라한다. 그러함에도 탑골공원에서 밀려난 그들이 자리를 바꿔 종묘공원으로, 하루 2∼3천 명씩 모여든 현상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이들을 관리와 통제대상으로 상정하고 일정 공간에 ‘가두어’ 두려 한 행정이, 시작부터 이미 절반 실패한 건 아니었을까?
이제 탑골공원이건 종묘공원이건 수천이 군집하는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다. 코로나19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두 공원이 갈 곳을 잃은 그 많던 노인을 어디론가 쫓아버린 셈이다. 그러나 두 공원 주변엔 적잖은 수의 노인이 아직도 모여들고 있다.

 

 

탑골공원 일상 © 이영천


설 자리 없는 노년
노인은 누구이며, 노인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딱히 법이나 제도로 정해지진 않았으나 ‘반강제로 경제활동을 끝내야만 하는 연령대’로 규정하는 게 타당해 보인다. 다니던 직장을 내 뜻과 무관하게 그만두어야만 하는, 정년을 맞이하는 시점으로 간주하는 게 사회통념이다. 생물학적 노쇠는 물론 생리·심리적으로 급격한 퇴화가 밀려드는 시점이기도 하다. 만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보고 있다.
현재 구백만 노인 인구가, 2033년 1,400만으로 예측된다. 급격한 노령사회로 진입이다. 대중교통 요금이 면제된다. 나라에서 지급하는 얄팍한 연금에 의존하는 전혀 다른 세계로 생활행태 천이가 강제된다. 노인 빈곤이다. 불과 50여 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나락이 펼쳐진 셈이다.
노인이 핵심이던 대가족체제가 산업화 이후 급격히 해체되고, 그 자리를 핵가족화한 도시형 가구 구성이 차지했다. 이런 변화가 노인의 권위와 경륜은 물론 안락한 노후마저 앗아가 버렸다. 노환이나 병이 찾아들면 요양원이나 병원에서 자식이 부담하는 화폐 단위에, 언제가 끝일지 모르는 여생을 저당 잡혀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잉여 인간으로의 전락이다.
이 길에서 누군들 예외이겠는가? 강의 뒷물은 항상 앞 물을 밀어낸다. 지금의 물은 어제의 그 물이 아니다. 세대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묻는다. 그대는 젊음의 효용가치가 영원한 존재로 남을 것이라 자부하는가?



그래도 작동하는 공간조직
이곳 노인들은 대체로 이중의 존재 의식에 사로잡혀있다. 물리적 신체 나이는 물론 사회·경제적으로 도태된 상황을 심리적으로 거부한다. 이곳에 나와 있어도, 스스로는 철저히 ‘관찰자’라 여긴다. 빈한한 경제 능력에 무료급식소를 기웃거리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화려하던 자신의 과거에 의식의 끈을 묶어 두고 있다. 열정적이던 젊은 시절의 모습을 현재 시공간에 끊임없이 투영시킨다. 분명 현실과 괴리된 몽상임에도, 이런 의식이 이곳을 노인 전유 공간으로 지탱시킨 힘이라 여겨진다.
이곳은 변화하는 도시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나이 듦’은 속도와 반대개념이다. 따라서 이 공간도 사라질 위험성에 항시 노출되어 있다. 그러함에도 이곳에 작동하는 나름의 법칙이 이 공간을 지켜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구매력 한계에 따른 낮은 지대 때문이다. 낮은 지대가 노인 전유 공간으로 살아남게 한 핵심 요소이자 최후 보루인 셈이다.
우선 음식값이 무척 저렴하다. 20세기 말의 가격대가 아직도 지켜지고 있다. 무료급식에 의존하기 싫은, 최소 지불 능력과 자존심을 지키려는 노인이 주로 이용한다. 이발소가 그렇고 목욕탕이 그러하며, 아주 값싼 커피값 또한 그렇다. 술집과 간이주점이 그렇고, 패스트푸드 주 고객마저 이들이다. 낙원상가에 있는 영화관 허리우드클래식이 ‘실버 전용’으로 운영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탑골공원 북측 빈터에선 바둑과 장기 대결이 일상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경운동, 봉익동, 돈의동과 피맛골 등지 골목을 소비하는 걸음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공간조직은 여전히 살아 노년의 몸짓으로 움직인다. 속도와 무관하게 지나간 젊음을 회상하며 느리게 변해가는 철저한 회귀 공간으로 생존해있다.
외부자 시선에 포착된 몇몇 스틸컷은, 이 공간이 오히려 넘쳐나는 활기를 버겁게 껴안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아직도 숨 쉬며 살아있는 존재라는, 감출 수 없는 욕망을 품고 있다는, 다가오는 미래를 내 것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의지를 이들은 결코 숨기려 하지 않는다. 온갖 욕망을 이 공간에 그대로 투영시키고 있다. 모두 한때는 찬란한 시절을 구가했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잉여 인간으로 밀려난 ‘노인’이 점유·소비하는 서글픈 장소기억이다.

 

 

탑골공원 일원 1983년 © 서울역사박물관


‘송해길’이 가진 힘으로
지난해 6월 방송인 ‘송해’ 씨가 타계했다. 1985년 낙원동에 자리한 ‘원로연예인상록회’가 사랑방 역할을 맡게 되면서, 고인은 이곳 주민들과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낙원동 일대에서 일상생활을 펼쳐나간다. 이곳을 활성화하려는 그의 여러 봉사와 노력이 주민 지지를 얻게 되었고, 주민 요청으로 2016년 명예도로명인 ‘송해길’이 탄생했다. 수표로 북쪽 끝 240미터 구간으로 종로2가에서 종로3가역 5번 출구까지다. 이곳이 아슬아슬한 노년의 삶을 보듬어 주며, 이들을 젊은 시절로 회귀시켜주고 있는 공간이다.
공간조직은 대체로 소탈하고 허름하며, 좁은 골목마다 점포가 상당수다. 꼭 노년만을 위한 점포도 아니다. 젊은 세대도 얼마든지 이용할 넉넉한 품을 갖췄다. 젊은이들이 이곳을 찾아 자연스레 지혜와 경륜을 엿보고 익힌다면, 지금보다 더 너른 품의 ‘어른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자본과 도시 권력의 촉수는 현재 진행형으로, 이곳 역시 개발 압력이 상당하다. 최후 보루라 할 수 있는 낙원상가가 한때 존폐위기에 놓이기도 했었다.
‘송해길’은 시민 힘으로 탄생했다. 모두 같이 공존하자는 지혜가 담긴 제안이었고, 한 대중문화예술인의 삶과 헌신에 대한 보답이었다. 송해길이 탐욕스럽고 무자비한 개발 압력으로부터, 이 공간조직을 든든히 지켜내는 힘을 발휘하길 바란다.

 

 

글. 이영천 Lee, Yeongcheon 자유기고가

 

 

이영천  자유기고가

 

도시공학 학사(홍익대학교), 도시계획 석사(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계획기술사(1999). 엔지니어링사에서 도시계획 업무를 시작으로 건설사에서 오랜 기간 사회간접자본 투자사업에 종사했다. 자유기고가로 한국도로협회 계간지 <도로교통>에 다리 에세이 연재 중이다.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에 다리 및 근대건축 관련 에세이를 연재했고, 현재 도시 관련 에세이 연재 중이다. 저서로 『다시, 오래된 다리를 거닐다』와 『근대가 세운 건축, 건축이 만든 역사』가 있다.

shrenrhw@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