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8. 09:07ㆍ아티클 | Article/에세이 | Essay
A hallway, its dim beginning and end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시청하던 중, 평소 선도부장에게 불만이 있던 학생이 위층 복도에 있다가, 마침 아래 지상에 모여 있던 선도부와 선도부장에게 마시던 우유갑을 내던져 그 우유갑이 선도부장 몸에 명중하면서 흰 우유가 검정 교복에 쏟아지는 장면을 보았다.
선도부와 부장은 잔뜩 화가 난 채 위층 교실로 함께 몰려와 우유갑 던진 학생을 찾다가, 그 행위를 말리는 햄벅(햄버거) 학우를 대신 냅다 팬다. 주연배우는 같은 반 학우들이 선도부장에게 늘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는 걸 보고, 그걸 빌미로 선도부장에게 옥상에서 한 판 맞짱을 뜨자고 큰소리로 욕하며 소리친다. 그 장면에서 나의 중학 시절이 생각났다.
나는 청소시간에 물을 1층 배수구에 버려야 되는데, 귀찮아서 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 2층 복도에서 창밖으로 물을 버렸다. 그런데 1층 복도를 순찰하던 학생주임 선생님이 창밖으로 물이 떨어지는 걸 목격하고 곧바로 우리 반으로 찾아 올라와서 수소문하여, 그만 내가 걸려버렸다. 그 당시는 학폭이 만연, 일상이던 때라 학생주임에게 몇 대 얻어맞고 교무실 앞 복도에서 하염없이 꿇어앉아 반성해야만 했던 나의 시절과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는 그다지 연관이 없었지만, 문제의 발단이 복도에서 벌어진 일이고 검정 교복 세대를 다룬 영화여서 그런지 그 시절이 오버랩 되었다.
그때 복도에서 반성해야만 했던 그 시간은 교실에 있던 친구들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다. 단조롭고 길고 길었던 그 복도에서 좌우를 바라보며 학생주임이 나타나 반성 해제를 해주기를 기다려야만 했던 그곳에서, 공간의 막연함과 더디게만 흐르는 시간은 정말 괴로웠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다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아이로 거듭났지만….
그리고 또 한 편의 영화 <여고괴담>에서 한밤의 순찰 중 기이한 사건이 벌어지는 공포스런 복도…
그런 기억들이 있는가?
쓰던 물건을 교실에 놔두고 와서 물건을 찾으러 밤중에 캄캄할 때 오가던 복도, 중앙 현관에서 우리 반 출입문까지의 거리는 또 얼마나 길던가. 뒤에 누군가 따라오는 느낌, 스스로의 발자국 소리에 소스라쳐 놀란 내 모습이 비친 유리창, 그리고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던 헛 청취…….
복도가 거리로서의 길이만 연상되지 않고, 시간적인 길이도 함께 연상되는 것은 정해진 폭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게 조성된 복도의 공간적 형태 특성 때문이리라.
그리고 또 한 편의 검정 교복 세대 영화 <친구>에서는, 학생 동수가 사고를 쳐 학교에서 퇴학당하자 학교에서 나오는 길에 복도 유리창을 몽둥이로 두들겨 깨버리는 행동을 보이면서 복도를 지나간다. 그렇게라도 해야 직성이 풀렸겠지….
여하튼 복도는 이렇게 그냥 지나치는 통과 도로 형태지만, 이곳에도 많은 사연이 담겨있다.
건축 설계에 복도는 학교 외 어디에 있는가?
먼저 갓복도형 아파트에 그 복도가 있다. 그리고 호텔과 오피스텔의 중간 복도, 주상복합 아파트의 복도, 상가의 복도, 또한 단독주택의 거실에서 침실로 오가는 복도 등….
여기에서 복도에 관한 건축적 공간 설계를 무심코 하다 보면, 밋밋한 공간을 구획하게 되어 늘 보아왔고 느껴왔던,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단조롭고 길고 긴 복도가 조성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공간도 다음과 같이 생각을 바꾸어서 부여하면, 이야기가 다양해지고 추억 또한 보다 아름다워질 수 있다.
호텔 로비에서 체크인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직 이동 후 하차하여 배당받은 호실에 수평적으로 이동하는 복도를 설계할 때, 외부 경치를 느낄 수 있는 건축적 공간 조성과 중간중간 포켓형 공간 조성, 또 일자형 복도를 지그재그 형태의 복도로 조성해 주어, 사람들이 복도를 지나다니다가 행여 각 실의 열린 문틈으로 내부를 자세히 볼 수 없도록 하는 것 등이 중요한 복도 설계의 특징이 될 수 있다. 오피스텔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최상층 복도 천정에는 자연채광이 들어오게 하는 건축적 장치와 천창 배치 등을 고려할 수 있다.
나는 현재 미단시티에 ○○오피스텔을 설계 중에 있는데, 위에 열거한 생각들을 복도에 조성하려고 마음먹고 있다. 그리고 실행하려고 한다. 또한 각 실 테라스 배치, 복층형 오피스텔로도 함께 구상 중이다.
그리고 단독주택이나 사무실에도 마찬가지로 복도의 공간에 위 구상을 실현하고자 한다.
그래서 복도에도 단독주택 단지의 골목길처럼 다양한 이야기와 사연이 담긴 추억 나무를 심어주어, 향후 아름답고 맛깔스런 추억의 감동 열매가 열리는 공간을 조성하고 싶다.
글. 조정만 Cho, Jeongman (주)무영씨엠 건축사사무소
조정만 (주)무영씨엠 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건축사·작가
건축사이자 문학작가인 조정만은 남원 성원고, 건국대학교 건 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건설경영과정 금호MCA를 이수하였다. 천일건축, 금호그룹 종합설계실, 아키플랜에서 설 계, 감리 실무 경험을 쌓았으며, 강원청암재, 동교주상헌, 고양 농경문화박물관을 설계하였고, 미단시티 ○○오피스텔, 옥천 Y 주택, 대청호 수연재 등을 설계하고 있다. 2016년 한국수필에 ‘방패연 사랑’과 ‘아버지와 자전거’로 등단하였고, 현재 무영씨 엠건축 대표이사이자, 활발한 에세이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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