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스타킹과 고전 건축 오더의 유사점 2021.3

2023. 2. 1. 09:05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Similarities between Baseball Socks and Classical Architecture Orders

 

<사진 1> 세기 전형적인 야구 스타킹의 모습. 앞에서 보면 고리 스타킹이 아치 모양을 만들고 옆에서 보면 고리 줄이 보인다.
<사진 2> 21세기에 스타킹은 바지에 가려 보이지 않거나 반대로 단색 스타킹 하나만 신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사진 3> 20세기에 들어서 야구 스타킹은 흰색의 위생 스타킹을 신고 그 위에 팀의 상징 컬러를 적용한 고리 스타킹을 신는 형식이 정착했다.

미국의 전설적인 투수인 샌디 코팩스의 사진을 보면 20세기 야구 유니폼에서 스타킹의 전형적인 표현 형식을 잘 볼 수 있다.<사진 1> 21세기에 들어서 야구 스타킹은 자취를 감추거나 아니면 단일한 색의 스타킹 하나만 신는 것이 대부분이다.<사진 2> 하지만 1990년대까지는 반드시 두 개의 스타킹, 흰색의 스타킹 위에 색이 있는 고리 스타킹을 반드시 신었다.<사진 3> 왜 거추장스럽게 2개의 스타킹을 신었을까? 여기에는 분명한 기능적인 이유가 있다. 
19세기까지 야구에서 스타킹의 존재는 매우 중요했는데, 그것은 일종의 팀 아이덴티티 역할을 했다. 최초의 프로야구 팀인 신시내티 베이스볼 클럽은 야구 유니폼에 최초로 스타킹을 도입했다. 품이 넉넉하고 밑단이 무릎 아래에서 끝나는 니커보커스 바지를 입고 붉은색 스타킹을 신은 것이다. 그 강렬한 시각이 눈에 띄었는지, 관객들은 이 팀에게 ‘레드 스타킹스’라는 별명을 지어주었고, 나중에는 이 별명이 공식 이름이 되었다. 다른 팀들도 곧 신시내티의 유니폼을 모방해서 그것이 야구 유니폼의 표준이 되었다. 그리고 각 팀마다 자기 팀의 고유색을 스타킹에 적용했다. 

그런데 이 스타킹에는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20세기 전반기까지만 해도 염색 기술이 부족해서 염료가 천에 제대로 착색이 되지 않아 땀과 범벅이 되면서 피부에 흘러내린 것이다. 문제는 선수들이 슬라이딩을 하는 과정에서 날카로운 스파이크가 정강이 부분을 찢는 부상을 입었을 때다. 상처에 염료의 독성 물질이 스며들어 부상이 악화되는 경우가 생겼다. 이에 따라 염색을 하지 않은 흰색 스타킹을 먼저 신고, 그다음에 팀을 상징하는 색깔이 있는 스타킹을 신은 것이다. 스타킹을 두 개나 신으니 운동화와 맞지 않았다. 그래서 두 번째 스타킹은 발의 두께에 변화가 없는 고리 스타킹으로 신은 것이다. 

20세기 전반기에는 고리 모양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위생 스타킹은 그야말로 기능적인 이유로 신는 것이니 그것을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으로 갈수록 고리 스타킹의 그 고리 모양이 길어지기 시작해 밑에 신은 흰색의 위생 스타킹이 절반쯤 드러났다. 샌디 코팩스의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두 개의 고리가 자연스럽게 아치의 모양을 만들고, 그 밑에 흰색 스타킹이 보이는 것이 바로 야구 유니폼의 전형으로 자리 잡는다. 그 뒤로 고리는 더 가늘고 길어지기도 하고, 또 스타킹에 여러 색의 줄무늬가 번갈아 나타나기도 하는 등의 유행이 생기지만 위생 스타킹과 고리 스타킹의 결합이라는 기본 형식에는 변화가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20세기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염료가 피부로 흘러 들어가는 기술적 낙후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위생 스타킹을 신을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두 개의 스타킹을 신는 이유는 한 마디로 문화적인 보수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눈에 익숙해진 것이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실질적인 요구가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친숙한 것은 그것의 쓸모를 넘어서 더 오래간다. 

<사진 4> 고대 그리스 신전을 지으면서 오더의 형식이 정착했다.


이와 비슷한 현상이 서양 고전 건축의 오더(oder)에서도 나타난다. 오더는 그리스와 로마 건축에서 기둥부터 그것이 떠받치는 엔타블러처(entablature)까지의 일정한 순서와 비례의 형식을 말한다.<사진 4> 기둥(column)은 맨 밑의 주초(base)가 주신(shaft)을 받치고 그 위에 주두(capital)로 마무리된다. 기둥이 떠받치는 엔타블러처는 처마도리(architrave), 장식대(frieze), 처마(cornice)로 구성된다. 이러한 구성은 그리스 시대 목조 신전에서 유래했으며, 각각의 요소는 기능적 요구를 충족시키려는 목적에서 비롯한다. 즉 그것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목조 신전이 석조로 지어지면서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이 생긴다. 바로 들보다. 목조 신전에서 들보는 프리즈의 밖으로 살짝 튀어나와 있었다. 석조 신전을 지을 때는 이것이 필요 없었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익숙한 것이었으므로 그 부분을 없애지 않고 마치 들보가 있는 것처럼 모양만 남겼다. 그것이 프리즈에 연속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트리글리프(triglyph)다.<사진 5> 이처럼 최초의 기능적 요구는 사라졌지만, 친숙함 때문에 형식으로나마 유지하려는 경향을 ‘스큐어모피즘(skeuomorphism)’이라고 한다. 기능성이 없으므로 트리글리프는 장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목조 신전에서 연속되는 들보의 자리인 프리즈는 석조 신전에서 장식대로 변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5> 프리즈 부분에 세 개의 세로줄로 구성된 트리글리프가 연속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사진 6> 지오반니 파올로 파니니가 1692년에 완성한 그림 속 판테온의 내부. 벽을 파내 그리스 신전의 오더 형식을 집어넣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리스 신전에서 오더 전체는 기능성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로마시대에 오면 오더 전체가 하나의 형식이 된다. 예를 들어 판테온 내부의 벽에는 오더가 연속적으로 배열되어 있다.<사진 6> 오더의 일부인 기둥들이 마치 지붕을 받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판테온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무거운 돔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안전하게 받치고자 무려 6미터 두께의 벽을 세웠다. 그 두꺼운 벽을 살짝 파내서 기둥을 만든 것이다. 따라서 이 기둥들은 지붕을 받치는 실질적인 구조가 아니다. 로마시대 사람들에게도 그리스 신전의 오더는 매우 친숙하고 사랑스러운 것이었나 보다. 그리하여 신전이 아닌 공공건물, 개선문, 심지어는 검투사들이 죽고 죽이는 살벌한 콜로세움에까지 고루고루 적용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것은 기능적인 요구가 아닌 형식적인 요구로서 디자인되었다. 로마시대의 건축은 아치 구조가 지배적이라는 점에서 오더가 더욱 불필요하다는 것이 확인된다.  

 

<사진 7> 르네상스 건축가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가 디자인한 팔라초 루첼라이. 이 건물은 세 개 층에 각각 다른 종류의 오더를 적용했다. 벽체가 건물의 실질적인 구조이므로 이러한 오더는 그저 장식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연속된 오더의 수학적 비례와 질서의 아름다움이다.


오더는 로마네스크와 고딕이 지배한 중세에 사라졌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부활했다. 르네상스의 오더는 로마시대보다 더욱 미적 형식으로 수용되었다. 사람들은 아마 그것이 최초로 가졌던 기능적인 요구를 몰랐을 것이다. 심지어는 그것을 배우고 적용하는 건축가들조차 모를 수도 있다. 르네상스 건축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더의 각 요소가 갖는 조화로운 비례다. 구조나 재료와 별개로 작동하는 미적 형식은 초기 르네상스 건축을 정의한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가 누누이 강조한 것이다.<사진 7> 오늘날 우리 삶의 환경에서 그처럼 최초의 기능은 사라진 채 형식만 남은 디자인은 무수히 많다. 쓸모가 사라지고 형식만 남게 되면 그때부터 패션의 성질이 강해진다. 인간의 문화는 이러한 형식적인 패션으로 가득하다. 20세기 초의 모더니스트들이 그토록 경멸하고 몰아내려고 했던, 기능과 무관한 형식은 죽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그러한 형식, 장식, 미적 요구란 사람들에게는 쓸모만큼이나 본질적인 것이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 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